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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소하일기 02화

의지를 가져 본 적이 없어

2025년 1월 7일 화요일

by 제갈해리
의지를 가져 본 적이 없어

그랬다.

나는 의지를 가져 본 적이 없다. 어떤 삶의 의지도 피력하지 못한 채 인생을 살아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나는 그저 욕구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졸리면 자고, 배고프면 먹고, 섹스하고 싶으면 하고, 담배 피우고 싶으면 피우고, 술 마시고 싶으면 마시고. 그런 순간순간 욕구의 쾌락에 빠져 삶을 피폐하게 살아온 것 같다. 뭔가 삶의 목표도, 이정표도 없이 삶의 주체가 되지 못한 채 곁가지가 되어 살아온 것 같은 느낌. 내가 과연 내 인생의 주인공일까. 지금 현재로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말하는 인생을 살아온 것도 아닌데, 난 왜 내 인생을 살아가지 못할까. 왜 주체적이지 못할까.


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내 인생을 치열하게 살아갈 의지가 부족한 것이다. 그때그때 인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나는 좀 더 쉬운 선택을 해왔을 뿐, 고비를 넘어 고난을 헤쳐나갈 의지를 가지지 않았다. 수능의 실패도, 군대 불명예제대도, 늦은 나이의 대학 졸업도 모두 그와 연관이 되어 있었다. 번번이 내 인생의 험난한 고지 앞에서 나는 좌절했고, 좌절하고서는 다른 쉬운 길로 돌아가기를 선택해 왔다. 쉬운 길 뒤에는 언젠가 또다시 힘든 길이 오리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나는 습관적으로 쉬운 길들 만 골랐다. 그 결과가 어떤가.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 아니 뒷걸음치지 않으면 다행이다.


지금의 내 신세를 보면 어떤가. 빚은 빚대로 쌓여 있고, 알바 인생으로 점철되어 있는 30대 중반의 초라한 남성. 나이는 30대 중반이지만, 고혈압과 당뇨, 비만으로 약을 투약해 가면서 고생 중이지 않은가. 자기 성찰이라도 제대로 하는가 싶으면 그것도 아니다. 매일매일 잠으로 하루를 다 보내기도 하고, 밤새 술을 마시고 아침에 들어온 적도 허다하다. 이런 내 상황을 보는 나도 한심한데, 나의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은 어떠할까. 붙잡아놓고 한참 때려도 속이 풀리지 않을 심정일 텐데, 그들은 애써 가족이라고, 친구라고 나를 위해준다. 언젠가는 바뀔 거라는 기대로. 그러나 그 기대라는 것이 가장 잔인한 환상이다. 기대하면 할수록 나는 나아질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미안한 생각이 든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지인에게 조언을 구했을 때, 지인은 이렇게 말했다. "현실을 부딪혀 나가. 네 삶을 영위할 길은 네 스스로 책임을 지고 현실을 부딪혀 나가는 방법뿐이야." 그래, 지인이 말한 그 방법이 정도일 것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는 없다. 내 인생을 사는 건 나이기에, 내 인생에 대한 책임도 내가 져야 한다. 그리고 인생을 제대로 살아가려면 제대로 현실을 부딪혀야 한다. 어쭙잖게 쉬운 길만 선택하려는 요령도 피해야 한다. 쉬운 길보다는 때로는 어렵고 힘든 길도 걸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면 그것이 언젠가는 내게 경험이 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한 원동력이 될 테니.


앞으로는 삶의 의지를 열렬히 불태워 보자. 내 삶은 이대로 끝낼 수 없어, 하고. 남은 내 삶을 스케치북의 그림을 채워나가듯 하나씩 하나씩 그려나가 보자. 밑그림부터 시작해 채색까지 하다 보면 언젠가 멋진 그림이 완성되어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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