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25일 토요일
한국은 유교 문화권 국가이자, 개신교 신자가 주류인 국가이다. 한국은 조선시대부터 유교국가였기에 유교의 근본 이념에 어긋나는 것에는 배타적이다. 또, 한국은 근대 사회 이후로 개신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 개신교의 교리에 어긋나는 것에도 역시 배타적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과학과 기술, 사회는 발전해 왔고, 시대와 패러다임 또한 그 흐름에 맞춰 변화해 왔다. 과학이 그 대표적인 예다. 잘못된 가설이나 주장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나면 새로운 가설과 주장으로 변화하듯이, 시대의 모습도 역사가 진행되면서 변모해 왔다. 그러나 유교와 개신교만은 몇 천 년 전 그 사상에서 그대로 멈춰져서 유일무이한 질서라는 이유로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현대 사회는 민주주의 사회다. 즉, 인권이 가장 중요시되는 사회인 것이다. 천부인권.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권리. 현대 사회는 그 인권을 보장하고, 보장받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 있다. 그 인권 투쟁의 대표적인 예로 여성 인권 운동, 장애인 인권 운동, 노동 인권 운동, 성소수자 인권 운동 등이 있다. 오늘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이기에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느꼈던 성수수자로서의 삶에 대해 말하려고 한다.
일례로, 내가 20살 무렵에 4살 차이 나던 좋아하던 형이 있었는데, 인터넷 채팅방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오프라인에서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와 몇 번 만나다가 그가 좋아진 나는 그의 집에서 함께 영화를 보다가 그에게 키스를 했고, 그는 그런 나의 행동이 싫지 않았는지 나와 관계를 가졌다. 그와의 행복했던 관계가 끝나고 나서 내가 욕실에서 씻고 나오자, 그는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동성애자가 아니야. 나는 크리스천이야. 나는 여자를 만나야 돼."
나는 처음에 개신교 신자였던 그가 하는 말이 교리를 어긴 자신에 대한 자책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개신교에서는 동성애가 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책감에 관계를 하고 나서 그런 얘기를 에둘러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가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의 마음이 진심이 아닐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 뒤로도 그와 자주 만나며 지속적인 관계를 가졌다. 그런데 그때마다 그는 그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잘못된 행동에 빠진 자신을 채찍질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는 자신에게 기준이 유달리 엄격했던 크리스천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실제로 자신이 했던 말처럼 여자친구와 사귀었는데, 나는 그때 나를 만나면서도 여자친구를 동시에 만나고 있다는 사실에 배신감이 들었다. 그랬지만, 그가 여전히 좋았기 때문에 그의 주변을 서성일 수밖에 없었다. 그와 연락이 닿아 만나게 된 날, 그는 펑펑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자신도 눈물을 보였다. 그리고 울다 지쳐 쓰러진 나를 부축해 택시를 태워 보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 뒤로 그는 이사를 가 버렸고, 그와 다시 만날 방법은 없었다.
나는 아직도 그가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감기몸살을 앓아 몹시 아프던 날, 비가 억수같이 왔는데, 그 비를 뚫고 나는 감기약을 사 가지고 그의 집을 방문했다. 그를 만나 그의 안부를 묻고 그를 걱정했다. 안색이 창백하고 입술이 다 터 있던 그는 내가 집에 간다고 하자, 우산을 들고 나를 씌워주며 우리 동네까지 바래다줬다. 몸이 좋지도 않은 상황에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위해 그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나는 그가 나를 좋아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크리스천이야, 여자를 만나야 돼'라는 말이 더 가슴 아프게 마음에 다가왔다.
만약 그가 크리스천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굳이 여자를 만나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의 생각이 조금만 달랐다면 우리의 관계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한국 사회에서는 그런 주입식 사상이 너무나 팽배하게 퍼져 있다. 인간은 태어나기를 만물의 영장으로 태어났는데, 남자든, 여자든, 이성애자든, 성소수자든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는데, 누구는 주류로 인정받고, 누구는 차별받는 것이 온당한 것인가.
세계 곳곳에서 동성애 결혼 허용 합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에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된 나라로, 미국, 대만, 태국이 그렇다. 위대한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도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고, 동양권 국가인 대만도, 성소수자의 천국인 태국도 합법화되었다. 성진국인 일본도 동성애 결혼에 대해서 부정적이지 않은 입장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유독 한국은 기성 주류인 이성애자 일부와 개신교 신자들, 학부모 연대모임 등에서 기를 쓰고 반대를 하고 나선다. 동성애 관련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기라도 하면 방송사와 영화사에는 항의가 들어오고, 그 앞에 대규모 시위들이 생겨난다.
2019년 6월, 꼬북이, 친구들과 함께 제20회 서울퀴어축제를 보러 간 적이 있었다. 처음 참가하는 퀴어축제라 내 가슴은 두 근 반 세 근 반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과연 어떤 행사들이 있을지 궁금했다. 수십 개의 부스들이 있고, 부스들에서는 각기 행사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서울광장은 굿즈를 판매하고, 자신의 단체를 홍보하러 나온 사람들, 굿즈를 사고,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는 군인권단체에서 군번줄을 사고, 글쓰기 행사에 참여했다.
뒤이어 우리는 서울광장에서 진행하는 축제 공연을 보기 위해 광장의 잔디밭에 앉았다. 축제 공연은 드랙 아티스트들이 나와 선 보였는데, 위대한 쇼맨의 'Never enough'와 'This is me'를 진짜 부르는 것처럼 연기하는 아티스트들에게 감동을 받았다. 특히, 'This is me'는 차별받는 사람들의 용기와 도전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것이 마치 우리 성소수자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주는 것 같아 눈물이 다 났다.
공연을 다 보고 단체들의 트럭 행렬을 따라 대규모 행진을 할 때에는 꼬북이의 손을 잡고 신이 나서 계속 웃어댔다. 주변에 같이 걷는 사람들이 모두 내 편인 것만 같아, 또 나와 비슷한 사람인 것 같아 힘이 났다. 다만, 공연할 때에도, 행진할 때에도 개신교 단체와 반대 단체에서 '동성애는 지옥'이라는 말들을 확성기를 틀어놓고 계속 송출하지만 않았어도 좋았을 것 같았다.
그날, 많은 것이 즐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되기도 했다. 이렇게 꽤 많은 사람들이 성소수자인데도, 더 많은 사람들이 반대를 하고 혐오하고 있으니, 우리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암담하다는 생각이었다. 도무지 유교권 국가이면서도 개신교 신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서는 백 년이 지나도 동반자 보호법은커녕, 동성애 결혼 합법화는 이루어지기 힘들겠다,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고.
성소수자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심했다고, 지금은 많이 나아진 거라고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의 시선은 냉담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내 일 아니니 무관심했으면 좋으련만, 질책하고 비난하고 혐오하고 나서기까지 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할 수가 없다. 우리가 그들에게 무슨 피해를 주었단 말인가. 혐오할 권리도 있어야 한다고? 혐오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그건 맞는 것인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서 그 사람과 연인으로, 부부로, 가족으로 살고 싶은 마음을 다들 알 텐데, 우리 성소수자들에게만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은 인류애로 봐도, 인권 정신으로 봐도 공평하지 못하다. 박애주의는 인류를 사랑하는 신께서 인류 모두를 사랑하고자 하신 뜻이 아닌가. 신이 인류를 사랑한다면 성소수자들 역시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온당한 것이다.
몇 년 전, 천주교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애를 인정한다고 말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천주교 상으로, 동성애의 성교 행위는 죄가 되지만, 동성애자는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므로 동성애자는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황의 발언과 가르침은, 전 세계 모든 천주교의 성당에서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2천 년의 세월을 내려온 천주교가 이렇게 시대와 함께 발전해 나가는데, 개신교는 좀처럼 바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애초에 천주교의 모순과 타락을 깨고 생겨난 것이 개신교이면서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말씀드리고 싶다. 한국에서 성소수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당신과 다르지 않은 한 사람의 평범한 사람으로 봐주시길 바란다고. 불쌍하게 여기지도 않아도 되고, 그렇다고 미워하지도 말고, 그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고. 최근, 박상영 소설 원작 '대도시의 사랑법'이라는 영화와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것만 봐도 세상 사람들의 편견이 갈수록 옅어지고, 성소수자에 대한 시선이 좋아지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래도 차이는 차이일 뿐, 어디에서든지 성소수자가 차별받지 않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