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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사태에 대처하기

2025년 10월 3일 금요일

by 제갈해리

드디어 연휴의 시작이건만, 편의점 알바인 나는 쉬지도 못하고, 오늘도 편의점에 출근을 했다. 깐깐한 사장님에게서 업무 지시를 받고(대체적으로 전날 물류 진열을 제대로 못한 것에 대해 질책을 받은 시간이었다), 일을 계속하던 중, 갑작스럽게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그건 바로, 진열대가 완전히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원래 진열대 아래쪽에 선물세트나 병 음료 박스들이 쌓여 있었는데, 진열대가 그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앞으로 넘어져 버린 것이었다. 진열대가 넘어지면서 음료박스들이 엎어지고, 병이 깨지고 난리가 났다. 나는 얼른 현장 사진을 찍어 사장님께 보내고, 엎어져 버린 진열대를 세워놓고, 박스들을 한쪽으로 모아놨다. 이미 깨져버린 병에서 음료들이 새어 나왔는데, 휴지로 흐른 액체들을 닦아내고, 깨진 병과 유리 파편을 빗자루로 쓸어 담거나 휴지로 모아 주웠다.

다행히 깨지지 않은 음료 병에 묻은 유리 파편을 제거하려고 휴지를 하나씩 병을 닦아내고, 큰 종이상자에 병을 하나씩 담았다. 구론산 한 박스, 비타 500 한 박스, 까스활 한 박스, 박카스 두 박스 총 다섯 박스가 팔지 못할 정도로 못 쓰게 됐다. 그래도 안 깨진 병들이 대다수라 다행이었다.

계속해서 치우고 있는데,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AS기사를 불렀으니, (AS기사가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진열대 상태 그대로 두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그리고, 바닥에 흐른 음료들을 닦아내고, 유리 파편들을 치워달라고 하셨다. 이미 그렇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추가로 할 것은 없었다. 유리 파편들은 모아 신문지에 싸서 비닐봉지에 담아 큰 종이박스에 넣어두었다.

1시간이 지났을까. AS기사님이 오셔서 망가진 진열대를 손 보시고는,

"이 매대는 원래 무거운 물건을 올리는 매대가 아니에요. 무거운 물건을 올려놨으니, 당연히 기우는 거죠. 앞으로 또 무거운 물건들을 많이 올려놓으면 매대가 또 쓰러질 거예요."

라고 당부하시고 가셨다. AS기사님이 하신 말씀을 사장님께 전달하니, 사장님께서는,

"진열대 수리를 했으면 물건 올려놓고도 괜찮을 방법을 생각해야지, 무거운 물건을 올리지 말라고 하면 우리는 어떻게 매대에 놓고 물건을 파나요?"

라고 한숨을 쉬며 말씀하셨다.

사장님과 전화 통화를 하고 나서 몇십 분이 지났을 때, 사장님으로부터 다시 전화가 왔다.

"전자레인지 쪽 식사대 위에 음료박스를 올려놔야 되겠어요. 거기가 손님들 눈에 잘 띄고, 올려놔도 무게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예요. 전자레인지 위에 있는 물건들 치우고, 음료박스 전자레인지 위랑 옆에 진열 좀 해줘요. 수고해요."
"네, 알겠습니다."

나는 음료박스를 옮겨 진열했다. 옮겨 놓고 보니, 처음 쓰러졌던 진열대보다 오히려 이 자리가 손님들 눈에 더 잘 띄고, 물건을 놓기도 좋았다. 진작에 여기에 진열했으면 진열대가 쓰러지는 일이 없었을 텐데...

그렇게 음료 박스를 옮기고, 업무를 다 마무리하고 나니, 벌써 퇴근 시간이 다가와 있었다. 나는 마침 출근한 저녁 근무자와 교대를 하면서 그 친구에게 하소연을 했다.

"매대가 무너져서 아주 생쑈를 했어요. 진작에 무거운 음료박스를 안 올려놨으면 매대가 쓰러질 일도 없었을 텐데, 일이 두 번 하게 만들어요, 참. 사장님 일 시키시는 거 이해가 안 갈 때가 많아요."
"저도 그래요, 불필요한 일을 너무 많이 시키시기도 하고..."
"답답한 게 한 두 개가 아니에요. 5시간 내내 쉬지도 못하고 일했다니까요..."
"고생하셨네요. 그럼 퇴근해 보셔요."
"네, 그럼 수고하세요."

저녁 근무자와 인사를 나누고, 매장 문을 나섰다. 집에 오는 버스 안에서 꼬북이에게 오늘 일에 대해 얘기했는데, 꼬북이가 고생했다고 위로를 해줬다. 꼬북이가 위로를 해주니, 그래도 조금은 기분이 풀렸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정말 일하기 싫었지만, 오늘은 그래도 사고가 터진 것에 비해 업무를 완전히 끝내놔서 기분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비상사태에 적절히 대처한 것도 그렇고, 업무를 다 끝내놓은 것도 그랬다. 일을 훌륭히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에게 후한 점수를 주고 싶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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