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철장수 외삼촌 이야기
나의 외삼촌은 고철장수입니다. 고철장수. 말 그대로 고철을 사고 파는 사람이지요. 삼촌은 동네를 한 바퀴 돌면서 고철이나 폐지를 모아서 고철상에 내다팝니다. 그러면 고철상에서 삼촌에게 돈을 줍니다. 오늘은 고철 상인이 삼촌에게 돈을 조금 적게 주었습니다.
"이봐 형씨, 오늘 물건은 제 값 받기 힘들겠어. 이거 봐. 상태가 안 좋아."
"알겠으니, 돈이나 줘요."
삼촌은 고철 판 돈으로 담배를 한 갑 사서 피웁니다. 그리고 나머지 돈으로 빵을 사서 집으로 향해 갑니다.
"엄마, 나 왔어."
문을 열고 들어서니, 외할머니가 누워 계십니다. 외할머니는 작년 뇌졸중으로 쓰러지셔서 몸의 반쪽을 못 쓰십니다. 그래서 일어나는 것도 할머니에게는 버겁습니다.
삼촌은 누워 있는 할머니를 일으켜 침대에 기대어 앉게 하고는 빵 봉지를 가져왔습니다.
"엄마 이거 드슈."
"이거 머야아?"
저는 할머니의 말이 알아듣기 어렵지만, 삼촌은 잘 알아듣습니다.
"엄마 드시라고 사 왔어. 잡수셔."
삼촌은 빵 봉지를 열어 부드러운 빵을 찢어서 할머니의 입에 넣어드립니다. 할머니는 아기 새처럼 잘 받아드십니다.
"아~ 마나다(맛나다)."
삼촌은 할머니가 목이 막힐까봐 우유도 사왔습니다. 우유를 조금씩 기울여 할머니가 드실 만큼 우유를 드립니다.
할머니가 빵과 우유를 드시고 나서 모자는 TV를 함께 봅니다. 요즘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가 최고인가 봅니다. 할머니는 여주인공이 시어머니에게 뺨 맞는 것이 웃긴지 연신 웃어댑니다. 삼촌도 할머니를 따라 웃습니다.
웃음 사이로 삼촌의 이빨이 빠진 것이 보입니다. 삼촌은 이빨이 거의 다 빠져서 저희 엄마가 임플란트를 해드렸는데, 아직 치아를 심지 않아서 이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삼촌은 이빨만 없는 게 아니고, 허리도 좋지 않습니다. 무거운 고철을 리어카에 실어 끌고 가다가 허리를 삐긋해서 디스크 수술을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삼촌은 고철 모으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삼촌에게 물어봤습니다. 왜 고철을 모으시냐고요. 삼촌은 말했습니다.
"내가 이 나이에 할 수 있는 게 고철밖에 더 있냐. 몸도 성치 못하고 받아줄 직장도 없는데."
삼촌은 젊었을 때 사기와 도박에 빠져 크게 돈을 잃고 감옥살이도 했습니다. 엄마의 말씀으로는, 삼촌이 어렸을 때 머리가 좋았는데, 그 머리를 안 좋은 쪽으로 써서 이렇게 된 거라 했습니다.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사람은 잘 안 바뀐다고 했던가요. 얼마 전에도 삼촌은 제게 통장 하나 만들어줄 수 있겠냐고 부탁을 해왔습니다. 경마로 돈을 벌어서 통장에다 돈을 맡기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도박에 빠져 있을 거냐며, 어린 제가 삼촌에게 훈계를 했습니다. 삼촌은 제 말에 상처를 받으셨는지 한동안 제게 연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을 엄마에게 얘기하자, 삼촌이 잘못한 건 맞지만, 어른 대우는 해드렸어야 했다고 하시더군요. 제가 생각해도 삼촌께 죄송했습니다.
그 일 이후로 제가 신춘문예를 목표로 글을 쓸 때 삼촌의 도움을 받게 되었답니다. 제가 엄마에게 글을 평가해달라고 하자, 엄마는 글 볼 줄 모른다며 삼촌이 글을 많이 읽었으니 삼촌에게 부탁해보라고 하시더군요. 저는 삼촌에게 연락을 드려 그 전 일에 대해 죄송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글 얘기를 꺼냈습니다.
삼촌은 제 글을 읽어보시고 심리묘사가 부족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러시아 문학, 도스도예프스키, 고리끼, 톨스토이 등을 읽어보면 심리 묘사를 배울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삼촌이 올리고 있는 정치 트위터를 보여주시면서 참 잘 쓰지 않았냐고 자랑했습니다. 그런 삼촌의 자랑을 들으면서 의아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데, 어떤 면에서는 실소가 나왔습니다.
삼촌은 참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어떨 때는 세상 착한 사람 같다가도, 어떨 때는 엄청 한심해 보이기도 합니다. 할머니를 모시는 걸 보면 착한 것 같은데, 경마와 도박 이야기만 하면 거기서 헤어나올 줄을 모릅니다.
한 날은 삼촌에게 물었습니다. 삼촌의 행복은 무엇이냐고. 삼촌이 대답했습니다.
"후회만 남았지. 젊어서 착실하게 열심히 살았어야 하는데, 그걸 놓치고 지금껏 세상에 도전해보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게 한이야. 그래도 엄마 돌아가시지 않고 이렇게 살아계신 게 그나마 나한테는 행복이다."
우리 외삼촌은 고철장수입니다. 고철장수. 말 그대로 고철을 사고 파는 사람이지요. 삼촌은 오늘도 불편한 몸을 이끌고 고철과 폐지를 주우러 다닙니다. 적게 벌어도 삼촌이 쉬는 동안 피울 담배 한 갑과 할머니가 드실 빵 한 봉지면 삼촌에게는 그게 행복인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