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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그 남자의 흉터

나는 오늘도 손님의 정보를 스캔한다

by 제갈해리


내가 일하는 편의점은 빌라촌 한가운데에 자리해 있어서 단골손님들이 자주 드나든다. 단골손님들이 많다는 건 그만큼 귀찮은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 점포같은 경우에는 술, 담배 손님이 다른 점포에 비해서 월등히 많은 편인데, 술 먹고 꼬장 부리는 손님과 민증을 가져오지 않고 담배를 사려는 손님들로 인해 매번 골치가 아플 지경이다.


그래도 요즘은 일한 지 6개월이 지나 단골손님들의 대체적인 나이나 성향 등을 알고 있어서 손님들과 부딪힐 일이 별로 없다. 손님들에게 인사 잘하고 묻는 말에 대답만 잘 해주면 손님들은 으레 만족하고 돌아간다. 조금 특이한 손님들이라고 해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우리 점포에 자주 오던 청년이 있었다. 그 청년은 생긴 것도 잘생긴 데다 패션 스타일도 댄디한 것이 좋은 회사에 다니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더랬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그가 물건을 사러 올 때마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면 언제나 한쪽 이마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어떤 날은 좀 아물었나 싶다가도 또 어떤 날은 멍이 새로 생겨난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가 뭔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면부지의 사람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알겠냐만, 예의도 바르고 점잖아 보였기에 왜 멍이 들었을까 걱정부터 앞섰던 것 같다. 그렇다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청년의 흉터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오지랖에, 무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여느때처럼 편의점에 물건을 사러 온 그에게 비타500 한 병을 건네면서 남는 건데 드시겠어요, 했다. 처음에는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그는 감사합니다, 하고 내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 뒤로 그와 나는 편의점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곤 했다.


그런데 또다시 며칠이 지나자, 그의 얼굴에 시퍼런 멍이 또 들어 있었다. 그의 표정은 잔뜩 굳어 있었고, 그는 물건만 사 가지고 도망치듯 가게를 나갔다. 나는 그의 멍이 생긴 이유가 무얼까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여친과 다툰 건가? 여친을 편의점에 데리고 온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애인이 없는 것 같기도... 아니면 직장 상사에게 맞기라도 한 걸까? 요즘 때리는 직장 상사가 존재하나? 그건 노동청이나 인권위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 술 먹고 어디 부딪혔나? 점잖게 생긴 사람이 술 먹고 부딪히고 그럴까? 평소에 술도 얼마 안 사가는데...


그에 대한 상상은 도를 넘어서기도 했다. 혹시 맞는 걸 즐기는 건 아니겠지... SM 플레이를 즐기는 걸 수도... 말도 안 돼. 그럴 리 없어.


나는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단골 손님들의 나이대나 성향을 파악하면서 일한다. 극히 일부의 정보로 그 사람들의 소비 스타일을 파악한다. 그러나 손님들이 들춰내지 않은 정보는 내 상상에 의해 재생산되고 확대해석된다. 오늘도 나는 편의점에서 손님의 정보를 스캔하면서 그들의 인생을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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