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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풀 Jun 08. 2020

오늘도 안녕하길

ⓒ 바람풀

                                                  


오늘도 도로에서 죽은 고라니를 봤어. 온몸이 찢긴 채 도로에 널브러져 있었지. 그 고운 얼굴은 어디로 날아갔을까? 대체 몇 대의 차가 고라니를 밟고 지나간 걸까? 그래서였나? '크헝크헝 크허헝' 산이 울리도록 밤마다 뒷산에서 그리 서럽게 울던 이유가. 


이야기 하나 들려줄게.

어떤 할머니가 있었어. 할머니 방에는 동물들이 누워있지. 모두 차에 치여 죽은 거야. 할머니는 토막 난 뱀을 꿰매어 잇고 정성스레 붕대를 감아 주었어. 그리고 포근히 이불을 덮어 주었지. 깃털이 다 빠진 부엉이의 상처를 꿰매고 두 손으로 눈을 감겨 줘. 그리고 뱀 옆에 뉘어주지. 자동차 바퀴에 깔려 납작해진 개구리는 후우우우! 바람을 불어주었어. 트럭에 치인 강아지의 상처를 꿰매고 털도 곱게 빗어 주었어. 옆구리가 다 터진 고라니 상처도 꼼꼼하게 꿰매 주었어. 그리고 다음날 새벽, 동물들을 리어카에 싣고 나루터로 갔어. 조각배에 동물들을 눕히고 꽃도 몇 송이 놓아준 다음 강물 위로 띄워 보내지. 오리 떼가 나룻배를 끌고 멀리멀리 동물들을 데리고 가. 


(잘 가, 안녕)이라는 김동수 작가의 그림책 이야기야.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할머니 눈은 하나고 입과 목엔 꿰맨 자국이 가득해. 할머니 몸과 마음에도 상처가 가득한가 봐. 할머니는 다른 생명의 고통을 그냥 지나치지 않아. 정성을 다해 그들의 마지막을 돌봐주지.


시골에 살다 보면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자주 보게 돼. 안개가 많이 낀 날엔 특히 더하단다. 그날도 그랬어. 시월의 어느 날이었지. 아랫집 언니와 아침산책에 나선 길이었어. 버드나무 앞을 지날 때 죽어있는 두더지를 보았지. 내 손바닥만 한 새까만 두더지가 아기 손 같은 허연 손바닥을 하늘로 향한 채 인형처럼 누워 있었어. 아랫집 언니가 나뭇가지를 찾아서 두더지를 풀숲으로 옮겨주었지. 우리는 두더지를 마른풀로 덮어주었단다. 강둑길로 접어들었을 때는 둥글게 몸을 말고 죽어있는 초록뱀을 보았어. 뱀의 뾰족한 머리 밑에 내장을 다 들어낸 개구리 한 마리가 있었지. 개구리를 잡아먹는 도중에 차에 깔려 죽은 것 같았어. 나뭇가지 두 개로 뱀을 집어서 풀숲으로 휙 던져주었어. "잘 가, 안녕." 하고. 뱀의 매끄러운 촉감이 나뭇가지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지. 내 모든 털이 곤두섰어. 난 엄청난 비명을 질렀단다. 같은 날, 읍내 나가는 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도로에 쓰러져 있었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고양이는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지. 집에서 목장갑이랑 삽을 챙겨서 도롯가로 다시 갔어. 통통하게 살찐 큰 얼룩 고양이었지. 자동차 바퀴에 얼굴이 깔렸는지 납작해진 머리 주변이 빨간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더라. 차를 세워 놓고 고양이 곁으로 다가갔어. 길 옆으로 사체를 옮겨야 하는데 쉬이 손이 가지 않는 거야. 한참을 망설인 후에야 장갑 낀 손으로 간신히 두 다리를 붙잡을 수 있었지. 양손으로 고양이를 옮기는 내내 나도 모르게 엄청난 데시벨의 비명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어. 영혼이 빠져나간 굳어버린 사체의 느낌은 너무나 기묘했거든. 마을에 있는 초등학교로 그림 수업을 가던 길이었어.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고양이를 묻어 주려했어. 다시 와보니 고양이를 어디에 두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야. 주변을 몇 번이나 살폈지만 결국엔 찾지 못했어. 아직도 고양이 얼굴이 눈에 선해. 


앞으로도 차에 치여 죽은 동물들을 만나게 될 테고 그때마다 난 그림책 속 할머니를 떠올리겠지. 

어떻게 하면 이 죽음을 막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내일도 모두가 안녕하길 바라는 마음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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