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들의 우주
ⓒ 바람풀
초록이 너울대는 길을 걸었다. 나무는 한껏 팔을 뻗어 서로를 보듬고 있었다.
미루나무 모퉁이를 돌자 비닐하우스 수박밭이 나왔다.
비닐하우스 주변은 버려진 수박들의 무덤이었다.
주인이 원하는 크기만큼 자라지 못한 것들은 가차 없이 수박 세계 밖으로 던져졌다.
터지고 갈라진 어린 수박들은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벌레들 차지가 되었다.
쉰내 풍기며 썩어가다 땅속에 스며들겠지.
내년이면 다시 이 자리에서 크고 잘생긴 수박을 위한 자양분이 되겠지.
동글동글 작고 귀여운 수박.
잘나고 맛난 수박을 위해 버려질 비운의 수박.
비를 맞고 걸으며 쓸모없고 작은 것들이 모이는 우주를 상상했다.
보이지 않는 곳 어딘가에 버려진 것들이 모여든 세계가 있을 거라고.
이 땅을 단단하게 받쳐주는 작고 약한 존재들.
그들이 모인 아름다운 행성을 찾아 떠나는 이야기.
수박밭을 지나다가 떠올린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