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는 넘어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시간, 자전거 타기 딱 좋은 시간이다.
“얘들아, 자전거 타고 달걀 사러 가자.‘
2인용 자전거 트레일러에 딸 둘을 태우고 집을 나섰다. 경사진 길을 가볍게 내려가 마을을 벗어나는 다리를 건넜다. 불어난 물이 흘러가는 소리가 상쾌하게 들려왔다. 양옆으로 논밭이 펼쳐진 길을 달려 양계장에 도착했다. 아이들이 닭장 앞으로 다가가니 철조망 너머 닭들이 환호하며 맞아주었다. ‘꼬꼬오오꼬’ 날갯짓하며 파닥대는 닭들의 모습을 흉내 내며 아이들이 덩실덩실 춤을 춘다. 유정란 한판을 사서 트레일러에 싣고 윗마을을 향해 페달을 밟았다. 짙은 초록이 너울대며 우리를 부르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기엔 너무 아쉽지. 저 노을 속을 달려보는 거야. 숲길로 접어드니 내리막이 나왔다. 가볍게 속도가 붙었다. 바람의 존재를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내 존재가 가장 투명해지는 순간이다. 갑자기 등 뒤에서 나린이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엄마 빨리 브레이크 잡아. 브레이크 잡아!!
천천히 가. 달님이 우릴 못 따라오잖아 “
아이들이 잘 앉아있나 확인하기 위해 앞을 향해 페달을 밟으면서도 간간히 뒤를 돌아보는 게 습관이 되었다. 나처럼 아이도 달리는 내내 달의 존재를 확인했던 것이다. 달님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이라니. 미처 예상하지 못한 나린이 말에 조금 뭉클해졌다.
‘걱정 말렴 얘야. 달님은 어디라도 우릴 따라와 준단다.
그리고 이 지구에 사는 모두의 머리 위에 영롱한 달빛을 뿌려주지.“
붉게 물든 노을 속을 달려 달빛을 등에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자전거 트레일러만 타던 어린 자매는 이제 스스로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빠가 다섯 살 때 사 준 나린이 첫 자전거는 작은 보조 바퀴가 달린 분홍색 헬로키티 자전거.
“언니, 나도 타보면 안 돼?“
”내가 태워 줄게.“
나린이는 지오를 뒤에 태우고 동네 곳곳을 달렸다. 흙길도 오르막도 제법 잘 달렸다. 지오에게 자전거 타는 법도 알려주었다.
”힘내라 힘!“
동생을 응원하고 뒤에서 밀어줄 줄 아는 든든한 언니, 나린이. 이제 이 자전거는 지오에게 물려주기로 했다.
아이들은 바람을 가르며 달리는 자전거 타기의 즐거움을 안다. 자전거를 타면 방귀도 마음대로 뽕뽕 뀔 수 있고, 바람 소리도 잘 들리고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달님이 저 머리 위에서 우리의 등을 어루만져준다는 사실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