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하노”
“누워있다.”
“누워서 뭐 하냐고 병신아.”
“아무것도 안 한다.”
예고편도 없이 제 맘대로 추워지는 2021년의 서울. 그 서울의 겨울 바람을 견디며 전화를 걸었건만, 이 자식은 시작부터 맥을 빠지게 한다. 왜냐고? 고향친구 S는 전화를 걸 때마다 누워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또? 침대에 꿀 발라 놨나?”
“어, 달달하네”
아주 그냥 말은 한마디도 안 진다.
“좀! 그냥 아무 때나 원서 쓰면 된다니까? 나 봐라 면접 보러 전국 다 댕기니까. 그냥 취업했잖아. 니도 하면 된다고. 공무원 그거 해서 뭐 할라고.”
“아, 귀찮아. 더 놀거야.”
몇 년째인지, 방구석에 박혀서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는 친구 S. 사실 공무원 준비는 명분일 뿐이고 그는 아무것도 안 한다. 모든 욕구를 상실한 탓일까. 세상에 회의를 느낀 탓일까. 이런 삶이 습관이 돼버린 것일까. 그는 계속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대학교 졸업 이후부터 그냥 방에 있었다.
“놀 거면 밖에서 술을 쳐먹던가. 친구를 만나던가. 놀라면 제대로 놀든가. 그게 노는 기가?”
“어, 나는 이게 노는 건데”
전화하자마자 잔소리를 너무 했나? 갑자기 친구의 목소리에서 귀찮음이 더 짙어졌다. 그래 말은 저렇게 해도 자신의 삶을 가장 걱정하는 건 자기 자신이겠지. 내가 친구에게 퍼부었던 잔소리도 전부 진부한 내용일 테고.
“하... 서울 온나 짜슥아, 여기 이쁜 사람들 많다.”
“싫어 서울에 미세먼지 많아.”
“미세먼지 그거 묵다 보면 물만 하다.”
“맛있냐?”
답답함을 주체할 수 없어서 나도 모르게 친구를 몰아붙였지만, 그냥 친구 목소리나 들으려고 전화했을 뿐이다.
“맛있겠냐 짜슥아. 이제 한 달만 지나면 우리도 스물 아홉이다. 마지막 20대라고.”
“난 서른까지 더 놀거야. 나 같은 놈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그리 많나? 왜 내 눈에는 안 보이노”
“마! 말은 안 해도 다 있다.”
친구의 마지막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왜냐고? 내 주위에만 해도 이 친구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존재하기만 하는 사람들이 꽤 있으니까. 특히, 내 또래에서 말이다. 그 시기는 대부분 취업 준비 시즌에 찾아온다. 기간이 짧으면 방구석 백수라고 불리고 기간이 극단적으로 길어지면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 또한 방구석 백수 생활을 했던 때가 있었다. 그 기간은 약 5개월 정도였다. 당시의 내 일과는 주구장창 유튜브만 보다가 잠자리에 드는 게 전부였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살았다. 뭔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있는데, 생각만 할 뿐이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 한 TV프로그램의 개그맨 K씨의 강연이 생각난다. 그 강연 당시 한 방청객이 고민을 털어놨다. 그 방청객은 취업도 아무것도 안 하는 자신을 향해 면박을 주는 지인들 때문에 힘들다고 말했다. 정해놓은 진로가 없기에 뭘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아무것도 안 하면 사람이 아무 쓸모가 없는 사람입니까?”
“저렇게 있으면 되지. 보면 좋죠. 그렇게 있으면 돼. 괜찮아.”
“제발 좀 젊은 친구들한테 왜 취직 안 하냐고 묻지 마세요. 그러려면 자기들이 재깍재깍 20살이 넘으면 취직이 잘 되는 사회를 만들어 놓던가!”
이에 K씨는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며 방청객을 위로했다. 그냥 있어도 괜찮다는 말로 토닥여줬다. 오로지 이 사회가 문제라는 듯이 말했다. K씨의 말이 이어지자 여러 방청객들의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했다. 박수를 치는 사람, 웃는 사람,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 눈물을 훔치는 사람 등.
그래. 우리는 다 다르다. 이런 절대적 위로를 통해서 힘을 얻는 사람도 있겠지. 그런 사람들은 그 힘을 원동력 삼아 한 단계 나아갈 수도 있을 테고.
그런데 난 아니다. 오히려 나 같은 사람에게는 이런 절대적 위로가 독이 된다 생각한다. 풀어지면 한없이 풀어지는 게 나다. 아무것도 안 하면 계속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된다.
‘뭐라도 해야 한다.’
내가 백수 생활을 탈출하게 된 이유는 단 하나다. 공감이고 위로고 그딴 게 아니라 뭐라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불편한 사실이지만,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은 아무런 쓸모를 보이고 있지 않은 상태가 맞다. 계속 집에만 있으니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자신이 보였다. 그런 하루에 적응해가는 자신이 꼴보기 싫었다.
그래서 그냥 질러버렸다. 교육을 들으러 서울에도 갔고 닥치는 대로 원서도 집어넣었다. 어디로 원서를 쓸지 깊은 고민 따위는 안 했다. 그냥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면 충분했다. 해보고 싶었던 유튜브 작가도 신청했고 전공을 살려서 법무법인에도 지원했고 뭔지도 모르는 마케팅 회사에도 지원했다.
너무 막 하는 거 아니냐고? 어쩌랴 내가 이렇게 타고났는데... 그래도 걱정은 없었다. 대충 아무 때나 나를 집어던져 놓으면 내일의 내가 알아서 적응하니까. 미래의 나는 수돗물을 퍼마시든 하루 세끼를 라면으로 때우든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라고 믿었다. 이게 나를 다루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취업이 됐고 우연히 전공까지 살리게 됐다. 물론, 대학교 다닐 때 그렇게 안 하던 공부를 이제야 한다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그건 내일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 밤을 새우든가 몸으로 때우든가 할 테니까. 적응은 생각보다 금방한다.
“친구야, 이제 그만하고 나와라. 진짜 별거 없다.”
그래서 더 친구한테 말하고 싶었다. 빨리 좀 나오라고. 진짜 별거 없다고. 우리의 청춘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