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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Feb 11. 2022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 난 굉장히 이기적인 놈이다.



 ‘내 생각이 맞았구나.’


 알바 면접을 가는 아들을 향해 쪽팔리다고 분노를 토했던 어머니. 그 사건 이후로 집안에는 싸늘한 냉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중심에서는 내 쪼대로 살겠다는 자식과 자식의 선택을 반대하는 어머니가 있었다.


 ‘역시 나 혼자 해야 한다.’


 숨 막힐 듯한 압박감. 그 속에서 나는 지금껏 간직했던 한 가지 확신을 다시 또 체감하게 되었다. 내 꿈, 내 미래, 내가 원하는 삶은 오로지 내가 만들어야 된다는 확신. 뭐, 다시 또 느꼈다고 해서 뭔가 달라지는 건 없다. 나는 항상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나의 삶에 대한 선택을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통보만하는 그런 입장 말이다.


 물론, 지 인생 지가 살겠다는데 그게 큰 문제가 될 요소는 아니지. 다만, 부모는 자식이 뭘 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며 나를 나무랐던 아버지께 “네”라고 답해놓고 변하지 않은 게 문제다. 아니. 오히려 그 말을 듣고 나면 나를 더 꽁꽁 숨겼다.


 왜 그랬냐고? 긁어 부스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내 계획에 대해서 말했을 때 잘 돼야 본전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말한 계획이 본인들이 생각하는 방향성과 일치되면 긍정적인 의사를 표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는 반대표를 던지고 쓴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아오. 듣기 싫어.’


 한 마디로 잔소리 듣기 싫어서 그랬다. 부모님이 내 의견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어차피 내 마음대로 할 건데 ‘뭐하러 욕을 들어먹어 가면서 해야 하지?’라는 의문이 강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런 쓴소리가 더 좋은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일련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 과정으로 도출되는 좋은 결과물은 항상 ‘노량진’,‘토익’,‘한국사’라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럼 뻔하지 않은가? 어느 순간부터 내 미래에 대해 얘기하는 게 에너지 소모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 입장에서야 안정적인 직장에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 자식이 더 나은 인생을 산다고 생각하겠지만... 난 아니거든.






 “왜 어려운 길로 가냐.”


 아버지는 이런 아집에 꽁꽁 싸인 아들이 항상 어려운 길을 찾아간다고 표현하셨다. 부모한테 말하면 좀 더 편한 길로 갈 수 있는데 왜 그러냐고.


 그건 맞지. 같은 선택을 하더라도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쪽과 아닌 쪽은 큰 차이가 나니까. 그걸 아는 놈이 왜 그러냐고? 그 이유는 딱 하나다.


 “경제적으로 종속되면 아무것도 못 한다.”


 내 생활비를 스스로 충당했던 첫 시작은 나를 강제로 재수학원에 집어넣으려 했던 어머니로부터 도망갔던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이었다. 본격적으로 내가 벌어 쓰기 시작한 시기는 대학교를 휴학했던 2018년부터였다. 이때 떠오른 확신은 딱 하나다. 경제적으로 종속되지 않아야지만 내 마음대로 살 수 있다 것.


 경제적으로 부모에게 종속된 상태에서는 행동력에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까. 뭔가를 도전할 때 실행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면 그냥 말짱 도루묵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관계’


 당연한 결과였을까? 단순히 경제적 종속관계를 벗어나려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주지도 받지도 않는 관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건방진 자식 놈의 이기심이 느껴졌기 때문일까. 2018년의 어느 날. 아버지는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 하는 대학생 자식에게 섭섭함을 토로했다.


 “아들아. 부모는 자식한테 주면서 행복을 느낀다. 내 행복을 뺏아가지 마라.”


 당연히 나도 알고 있었다. 그 이기심이 부모에게서 ‘주는 행복’을 앗아갔고 가족의 결속력을 약화시키는 요소가 될 수 있음을 말이다. 그래서 이 못된 생각이 더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리고 아버지께 이 못된 생각을 들키지 않기 위해 스스로와 적당한 협상을 했다.


 “방세만 지원해 주세요.”


 그때부터 받기 시작한 경제적인 지원금은 한 달에 20만 원. 친구 5명과 같이 살고 있었기에 방세는 이걸로 충분했다. 그럼 왜 이 정도로 마지노선을 정했냐고? 여전히 내 속에는 못된 생각들이 넘쳐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준비.’


 부모의 ‘주는 행복’을 유지하고 가족의 결속력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내 목에 목줄이 채워지지 않는 마지노선. 내 딴에 판단한 결과가 ‘20만 원’이었다. 아니, 이건 그냥 나 혼자만의 생각이겠지. 내 생각을 듣고 나면 부모의 의견은 다를 테니까.


 그래. 그냥 나 혼자서 자기합리화나 하고 자위하는 꼴이랑 다를 바 없는 사고였다. 그저 내 이기심이 극단으로 치달아 만들어진 결과물일 뿐이다. 치졸하게 나 혼자 바닥에 선을 그어 놓고 “여기 넘어오지 마. 퉤 퉤 퉤!”나 하고 있었던 행태였다.






 ‘왜 이런 치졸한 사고를 하고 있었을까?’


 내가 이따위 사고를 했던 이유는 부모에 대한 한치의 의심이 있었기 때문일까? 자기 방어 기재였을까? 최선의 결과보다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습관 때문일까? 아마 셋 다겠지. 지금 당장은 나를 응원한다고 하지만 내가 볼품없어지거나 부모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나를 비난할 것이라는 의심. 내 선택을 막아서는 이들로 인해 내 삶을 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두려움. 겉으로는 센 척이란 센 척은 다 했던 나도 사실은 쫄보였으니까.


 ‘역시, 내 처지가 처량해지거나 결과물이 온전치 못할 때는 나를 비난하구나.’


 그 탓에 알바 면접을 가는 내가 쪽팔리다고 소리를 질렀던 어머니가 별로 놀랍지 않았다. 내가 출판을 한 이후부터는 항상 나를 믿는다고 말씀했던 어머니였어도 말이다. 언제든 벌어질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었으니까.


 ‘아, 귀찮다. 그냥 조선소나 들어갈까? 잠깐 벌어 나오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앞으로의 계획을 다시 짜야된다는 게 귀찮았을 뿐이다.


 “아들 족발먹을래?”


 그때였다. 내게 웃으면서 맛있는 족발 먹자고 말씀하시는 아버지. 그는 모자지간의 냉전을 종결시키기 위해 나를 식탁으로 끌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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