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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Mar 13. 2022

그래 일단 어디든 가자



 “혁아 족발묵자.”


 모자지간의 냉전을 끝내기 위한 족발이 도착했나보다. 아버지가 얼른 부엌으로 오라고 나를 부르신다.


 “네”


 대충 대답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미 앉아계신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그런 나를 보던 아버지가 소주병을 따서 내 앞에 있는 소주잔을 채워주셨다.


 “아빠는 이 분위기가 너무 불편해.”


 가타부타 말없이 바로 화두를 던지는 아버지. 바로 직설적으로 말씀하셨지만 목소리 톤은 밝은 분위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래 이게 정석이긴하다. 사이 안 좋은 친구들을 화해시키기 위한 윤활제 역할로서 말이다.


 그런데 어째서일까? 대화의 장을 열었던 아버지의 노력이 눈에 뻔히보이는데 그다지 입을 열고 싶지가 않았다. 그냥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단 한가지.


 ‘귀찮다.’


 어차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할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러니 굳이 입을 열어서 잔소리를 듣는 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어머니는 아무 알바라도 하겠다는 아들이 쪽팔리다 말했지만 나중에 내가 잘되면 그때는 다시 자식을 응원한다고 말할 테니까.




 “대화가 안 되는데 뭔 대화를 해요. 전 그냥 제 쪼대로 할거니까. 신경쓰지 마세요.”


 꽁해져 있는 나의 소인배적 기질이 발동됐기 때문일까? 대화를 시도하는 아버지께 무례한 말을 질러버렸다. 이 무례한 말에는 나를 아니꼽게 보는 부모를 향한 반항심이 절반, 그 누가 뭐라 하든가 말든가 내 쪼대로 살겠다는 이기심이 절반 담겨있었다.


 “그래 까놓고 말해서. 니가 지금 하동에 있으면서 한 게 뭐 있노?”


 나의 무례한 말이 아버지의 마지막 인내심을 건드렸나보다. 밝고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던 아버지의 눈에 살기를 덮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곧 나를 향한 질책을 쏟아냈다.


 “나도 안다고요. 5개월 동안 병신처럼 방에만 누워있었던 거. 그래서 지금 뭐라도 할라고 하는 거잖아요. 근데 왜 막는 건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


 나도 안다. 잠시 계약직으로 다니던 스타트업이 망하고 백수 짓을 했던 5개월 동안 나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이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래서 이제 사람 노릇 좀 하겠다는 데 왜 내 시도를 막는 건가?


 “아빠가 말했잖아. 배운게 도둑질이라고. 계속 알바나 노가다만 하다보면 평생 그걸로 밥벌어 먹고 살게 된다.”

 “그래. 우리 아는 사람중에 목수가 있는데 그 사람이 원래 좋은 대학교 나오고 엄청 똑똑했어. 근데 아주 잠깐 노가다하러 갔는데 아직까지 목수질이나 하고 있잖아. 그 똑똑했던 사람이 말이야.”


 두 분은 내 미래가 그렇게 걱정이 됐나보다. 조용히 계시던 어머니까지 거드며 얼굴도 모르는 그 목수 아저씨를 언급한다.


 “뭐라는 거야. 난 하고 싶은게 있다니까? 타지에 나가서 살 월세 보증금만 벌거라고. 그리고 노가다 뭐 그거 하면 되지. 왜? 뭐가 어때서.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밥버러지 마냥 있는 건 자랑스러운 건가? 뭐라도 하는 게 어디야.”


 역시나 예상했던 대화의 흐름이 이어진다. 내 머리에서는 ‘귀찮음’이 자기 존재감을 더욱 강하게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래, 그건 니 말이 맞는데... 그리 알바를 하고 싶으면 엄마가 전도에 카페 알아봐 줄게.”


 전도는 우리 집에서 꽤 거리가 먼 동네다. 한마디로 부모님 지인이 적은 곳에서 아무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알바만 하라는 말이다.


 “아니, 남들이 뭐라 하든가 말든가 뭔 상관인데. 뒤에서 남 욕밖에 못하는 것들 눈치를 왜 보냐고.”


 내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상황. 납득이 되지 않는 이 상황에 짜증이 만땅으로 치밀어 오른다.


 “혁아, 촌에는 그게 아이다. 한번 식당에서 김치나 담구던 사람은 평생 그런 사람으로 낙인 찍힌다. 니가 아무리 미래에 잘 돼도 이 동네 사람들은 니를 그냥 그저 그런 놈으로만 인식한다."

 “그러니까. 그게 뭔 상관이냐고! 타인을 쉽게 재단하는 그런 놈들 눈치를 왜 보냐니까? 원래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든 있다이가.”


 내가 생각했던 대화의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내 머리에는 ‘역시나 대화가 안 통한다’라는 생각이 강해진다.


 “그게 사실은 엄마가 니 자랑을 여기저기 해놔서 그래.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해서 재택근무하고 있고 비대면 뭐시기 법률서비스 회사 다닌다면서 아지매들한테 그렇게 자랑했거든.”


 한발 양보한다는 뜻일까? 모자지간의 답없는 대화를 듣고 계시던 아버지가 뻘쭘한 표정으로 새로운 화두를 던지셨다. 내가 아무 알바나 하는 걸 사람들이 보게 되면 내 자랑을 여기저기 했었던 어머니의 입장이 곤란해진다는 게 본질이었다.


 “그걸 얘기하면 어떻게 해! 부끄럽단 말이야.”


 어머니가 부끄러운 표정을 지으며 아버지께 소리를 쳤다. 아버지는 뻘쭘한 미소를 지을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더 화가 날까? 구체적으로는 이런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내가 아닌 느낌을 받는다. 내가 부모의 액세서리가 된 느낌. 부모의 자랑을 위해 존재하는 아바타라는 느낌.


 내가 이기적이고 이상한 놈이기 때문일까? 이런 느낌을 받을 때면 더 반항하고 싶어진다. 분노가 더 깊어진다. 당연히 그랬을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가족은 보리굴비마냥 모두가 엮여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혁아, 진짜 알바하고 싶은거면 전도에 카페 알아봐 줄게. 근데 월세 보증금만 벌 목적이면 그냥 엄마 아빠가 빌려줄게. 나중에 취업하고 갚아.”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하시는 부모님. 아무것도 받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자식에게 건네는 부모님 딴에는 최선의 제안이었다. 뭐 사실 빌려준다고 해놓고는 나중에 받지 않으시겠지만.




 ‘그래 일단 가자.’


 뭐만 하면 싫다고 빡친다고 징징거렸지만 나도 똥오줌은 구분할 줄 아는 놈이다. 부모의 액세서리가 된 느낌은 누군가의 자식이라면 벗어날 수 없는 현실임을 알고 있으니까. 또한 부모의 도움을 절대 받지 않을 거라고 자존심을 부렸던 건 전부 부모가 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알고 있다. 우리 부모가 신용불량자거나 아파서 병원에 누워있었다면 내가 꿈이니 나발이니 그딴 고민을 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이나 벌려고 난리를 쳤겠지.


 그러면 여기서 내가 택해야 할 길은 하나 밖에 없다. 어디든 일단 가는 거. 토익이니 자격증이니 그딴 공부는 도저히 하기 싫으니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한정되겠지만 그거면 충분하다. 아는 동생이 법무법인에 사무원으로 취업했다고 하니 그게 그렇게 부러웠는지 매일같이 법무법인을 노래 불렀던 어머니. 그 니즈를 충족할 선택지를 나는 알고 있었거든.


 “국비지원으로 법무법인 사무원 실무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던데 거기로 갈게. 가서 이수증 받고 그쪽으로 취업이나 하게.”


 글쓰는 직업을 구하고 싶지만 지금 당장 구할 수 있는 루트가 내게 존재할 리가 없다. 그래서 전공을 살려 법관련으로 길을 정했다. 공부는 제대로 안 했지만 나름 법대를 나왔으니 이쪽 계열에서는 그나마 취업이 쉬울거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물론, 취업한 이후에도 문제가 생길테니. 최소한의 실무교육을 받고 취업하기로 생각했다.


 “그 국비 지원으로 교육이 되는 곳이 거의 다 서울에 있더라고. 일단 거기로 가야될거 같은데.”


 이때의 나는 워홀이니 글쓰기니 꿈이니 자존심이니 그딴 건 일단 다 집어치워야 했었다. 5개월간의 백수 생활을 돌이켜 봤을 때 나는 그딴 걸 논할 자격이 없는 놈이었기 때문이다. 5개월 동안 방안에 누워서 밥만 축내는 밥버러지였을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패배주의에 빠져 평생 나를 잊고 살겠다는 말은 아니다. 내 밥그릇은 챙길 주제가 된 이후에 내 삶을 논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을 뿐이다. 나는 배가 불러야 철학을 하는 놈이고 생산적인 뭔가를 하고 있을 때 내가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는 놈이다.


 그러니 일단 돈이라도 벌고 있어야겠다. 혹시 모르지 않은가? 나중에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바로 외국으로 뜰 수도 있잖아.


 그렇게 나는 2주 후 상경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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