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섭 Apr 18. 2022

몰라 뭐 어찌 되긋지



띵 띠리리리리링


 3번째 울리는 알람. 자동반사적으로 손을 머리맡에 올려 핸드폰의 알람을 껐다.


 ‘5분만 더...’


 이놈의 아침은 왜 이렇게 일어나기 힘든지. 전신을 옥죄는 유혹을 견디며 핸드폰 화면의 시계를 확인했다


08:50


 더 늦으면 진짜 지각이다. 나가야 한다.


 “하...”


 힘 빠지는 소리를 내며 겨우 일어났다. 침대 옆에 있는 샤워부스에 들어가 대충 양치를 하고 나왔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선다.


 “철컥”


 녹슨 열쇠로 방문을 잠갔다. 복도를 지나 계단 입구에 있는 신발장으로 걸어간다.


 “끼익”


 408호 숫자가 적힌 신발장 문을 잡고 당겼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지른다. 익숙해진 내 귀는 어떠한 타격도 입지 않았다. 그저 기계적으로 손을 뻗어 샌들을 꺼낼 뿐이다.


 한 손에 샌들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좌우로 흔들리는 내 몸에 맞춰 샌들이 달랑거린다. 그렇게 대충 내려오다 보니 2층에 도착했다. 여기서는 신발을 신어도 된다. 아니, 신어야 한다. 바닥에 깔린 먼지와 흙이 상관없으면 몰라도...


“촥”


 샌들을 집어던지듯이 바닥에 내려놓았다. 샌들 밑창과 돌바닥이 부딪치며 찰진 소리를 만들어냈다. 좁은 공간에 찰진 소리가 울리는 것을 느끼던 나는 무의미한 행위에 만족감을 느끼며 샌들을 신었다. 그리고 1층으로 내려와 건물을 나섰다.


 “찝찝해.”


 오전 9시도 되지 않는 시각. 온도는 그렇게 높지 않은 것 같으나 습도가 문제다. 아스팔트에 샌들을 몇 번 끌자마자 찝찝함이 느껴졌으니까. 그래도 어쩌랴. 서울까지 왔는데 수업을 쨀 수도 없고... 그저 참고 들어야지 별수 있나. 인상을 한번 찡그린 나는 발걸음을 재촉할 뿐이다.


 학원과는 거리가 가깝기에 금방 도착했다. 강의실에 도착하니 9시가 되기 3분 전이었다. 아주 적당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나? 역시 뭐든지 가까운 게 최고다.


 “펄럭펄럭”


 에어컨과 가장 가까운 뒷자리에 앉아 찝찝함을 식히기 시작했다. 오른손으로 티셔츠를 잡고 펄럭거리기까지 하니 만족감이 밀려온다.


 “자, 어제 몇 페이지까지 했죠?”


 먼저 강의실에 도착하여 수업용 PC를 만지작거리던 강사님이 9시가 되자마자 입을 열었다. 역시나 의미 없는 흐릿한 빔프로젝트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약 30명의 수강생들은 다들 책으로 시선을 돌렸다. 강사님은 언제 부채를 가져왔는지 오른손으로 부채를 펄럭거리며 열심히 책을 읽는다.


 저 강사님은 로펌에 소속된 현직 변호사다. 변호사 일도 하고 어디 기업에서 고문 역할도 하며 강의까지 한단다. 그래서 이 강의 제목처럼 ‘법률 사무원 실무자 교육’을 제대로 받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었다.




 “제17조 제척의 원인. 법관은 다음의 경우에 직무집행에서 제척 된다.”


 아니. 기대했었다. 그래 과거형이다. 대체 이게 뭔지 모르겠다. 현재 강의 3주 차. 3주 동안 강사는 법 조문과 책만 주야장천 읽었으니까.


 ‘실무를 알려 달라고!’


 내가 아무리 법대를 다니던 재학생 시절 때 공부를 개같이 했다 해도. 최소한 기본은 안다. 그리고 책만 주야장천 읽고 끝나는 게 얼마나 무의미한 수업인지도 안다. 더욱이 이제 교육기간은 2주밖에 남지 않았다.


 약 100만 원짜리의 강의. 이 비싼 강의에 의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결국 건방진 내 머리는 ‘이건 들으나 마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실무에 쓰이는 법률용어에 숙달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저 진도를 빼기 위한 조문 읽기였으니까.


 물론, 일반 법률사무원이라도 알고 있어야 할 기본적인 이론은 있겠지. 그런데 이 강의는 겨우 5주짜리다. 저 방대한 양의 법학을 전부 공부하기에는 택도 없는 시간이라는 말이다. 3주 동안 강의서에 기재되어있는 이론과 조문만 읽었다. 더는 이 강의가 유의미하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남성분들은 이 강의 왜 들으시는지 잘 모르겠네요. 여성분들은 비서직에서 많이 뽑으니까 괜찮은데 남성분들은 잘 안 뽑아서...”


 루즈한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일까? 열심히 책만 읽던 강사님이 다른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혹시 사무장을 생각하고 오셨나요? 그런데 월급 200 받고 사무장 일을 대신할 변호사도 많다 보니까. 이제 일반 사무장은 보기 힘들어요.”


 이 업계에 무지한 우리를 일깨워주기 위함일까? 그는 계속해서 이 업계의 부정적인 미래에 대해 토로하기 시작했다.


 “현재 일반 사무장으로 근로하시는 분들은 다 오래전부터 일하시던 분들이거든요. 새롭게 젊은 사무장을 구하는 곳이 있는지는 모르겠네요.”


 그는 내 미래가 어둡다는 전망을 계속해서 전파했다. 이거 참 어떻게 해야 할까? 사무장이건 비서건 아무 상관없이 취업이나 할 요량으로 왔건만 비서는 여자만 뽑는단다.




 ‘망했다.’


 어쩐지 약 30명의 수강생 중에 남자가 고작 5명밖에 되지 않았다. 나는 지금껏 허튼 짓거리를 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역시... 이게 인생인가? 앞뒤 생각 없이 일단 지르고 보는 내 성향 탓이겠지. 꼼꼼히 정보를 취합하고 결정을 내렸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테니까.


"하..."


그런데 어쩌랴. 지금 이게 현실인데 말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허탈감을 느끼는 게 전부였다.


 “네.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뵐게요.”


 오후 5:30분부터 계속해서 시계를 힐끗거리던 강사님. 그는 6시가 되자마자 책을 덮고 수업을 끝냈다. 이 수업의 목적은 오로지 ‘수료증’ 하나였을까? 머리가 복잡해진다. 숙소에 도착해서 밥을 먹고 씻고 누웠지만 복잡한 머리는 비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며칠 후.


 “그냥 아무 데나 빨리 취업하자.”


 고작 며칠간의 고민으로 결론을 내렸다. 어떤 결론일 것 같나? 당연히 학원을 뒤로하고 바로 취업 활동을 시작하는 거다.


 물론 마음 한편은 아직도 찝찝하다. 이 선택이 전형적으로 공부 못하는 애들이 할 법한 행동이었으니까. 마치 7~8월부터 독서실에서 독학을 하겠다는 재수학원의 재수생 같다고나 할까?

 

 “어찌 되긋지.”


 근데 도저히 저 수업은 못 듣겠다. 나는 취업도 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는데 어찌 가겠는가. 그냥 3주간 뻘짓했다고 생각하자.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 아닌가? 어떻게든 하다 보면 어떻게든 될 뿐이다.


 “타닥타닥”


 노트북을 켜고 구인 사이트에 접속했다. 지역은 전국단위로 설정했다. 어차피 내 고향 하동 같은 촌구석에서 취업을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 직종은 법률 관련을 선택하고 서치를 시작했다. 역시 현직 변호사의 말이 맞았을까? 법률 비서를 뽑는 곳은 여성을 우대했고 사무장을 뽑는 곳은 경력직만 뽑았다.


 그리고 두 번째 직종으로는 관심이 있었던 작가에 대해 검색해봤다. 유튜브나 블로그 작가가 대부분이었다. 우대 사항으로는 대부분 국어국문학과나 문예창작학과 그리고 포토샵이나 프리미어 프로 같은 어도비 프로그램 숙련자가 있었다.


 그 이외의 기타 직종에 대해서도 서치를 했다. 보통 차량소지자나 엑셀 고급 능력자를 우대한다고 되어있다.




 ‘역시...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다.’


 이것이 대학 생활을 즐기기만 했던 자의 최후일까? 수많은 구인 글에 적힌 우대사항 중 내게 해당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몰라. 일단 넣고 보자.’


 그래서 단 하나의 전략을 밀어붙이기로 했다.

 

 “일단 면접만 가면 된다.”


 자격이 되든 말든 그냥 눈에 보이는 대로 원서를 때려 넣었다. 자격이 없어도 몇 군데는 연락이 오지 않겠는가? 그거면 된다. 면접만 가면 어떻게 될 수도 있잖아?

이전 20화 서울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