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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Apr 03. 2022

서울행

       




 “민법 제185조 물권의 종류, 물권은 법률 또는 관습법에 의하는 외에는 임의로 창설하지 못한다. 여기서 물권에는 소유권 점유권 지상권 지역권 전세권 유치권 질권 저당권이 있고 …”


 컴퓨터 책상에 앉아 민법 강의서를 읽는 강사. 약 30명이 앉아있는 강의실. 희미한 빔 프로젝트의 빛. 잘 보이지 않는 강의 화면.


 ‘뭐고... 하나도 안 보이노’


 눈을 아무리 찡그려도 빔 프로젝터가 쏘는 화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맨 앞자리의 수강생을 제외한 대부분이 책상 위의 책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나도 의미없는 노력을 때려치우고 책으로 눈을 돌렸다.


 “뒤에 에어컨 몇 도로 틀어져 있나요?”

 “파워로 틀어져 있어요.”


 손부채질하던 강사가 에어컨 근처에 있던 뒷자리 수강생들에게 질문을 했다. 그는 이미 땀으로 흠뻑 젖어있는 상태이다. 빔 프로젝트의 빛이 잘 보이는 맨 앞자리에 앉아있는 수강생 몇 또한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


 ‘국가에서 하는 게 뭐 그렇지’


 강의를 듣기에는 좀 불편한 환경이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 강의는 공짜거든. 왜 공짜냐고? ‘국민내일배움카드’라는 나라에서 수강료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있다. 현재 내가 수강하는 법률사무원 실무자 교육비 약 100만 원도 이 정책을 통해서 지원받았다. 물론, 이 한 달짜리 강의가 도저히 100만 원이라고는 느껴지지 않는다. 교재비를 제외한다면 체감상 한 30 ~ 40만 원쯤의 가치를 지니지 않았을까? (나 같은 병아리가 이 업계의 시장가격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지. 그저 어린놈의 건방진 잡생각일 뿐이다.)


 “그러면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 뵙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수고…”


 오후 6시. 민법 조문만 주구장창 읽던 강사는 6시가 땡하자 수업이 끝났음을 알렸다. 약 30명의 수강생들은 가방을 챙겨서 건물 3층으로 올라갔다.


 “삐빅”


 출석체크용 리더기에 국민내일배움카드를 가져다 대자 삐빅 소리와 함께 하원시간이 체크됐다. 그렇게 출첵을 끝내고 약 30명의 무리에 섞여 건물 밖으로 나왔다.




 ‘개덥네...’


 건물 밖으로 나오자마자 나를 반기는 찜통 더위. 학원 개강일이었던 당시는 2021년 7월 16일이었다. 한 마디로 한창 여름이 진행되던 때라는 말. 더위에 약한 내 몸뚱이는 처음 겪어보는 서울의 여름에 욕짓거리가 올라왔다.


 “#$#%#$@#”


 전신을 옥죄는 더위에 개처럼 혓바닥이라도 내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빠른 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한 달간 지낼 숙소는 학원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걸어서 5분 정도?


 “철컥”


 거리가 가까운 만큼 순식간에 도착했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내 방의 문을 열었다. 방으로 들어온 나는 바로 가방을 구석에 집어 던지고 웃통을 깐 후 에어컨을 틀었다. 고작 5분 걸었을 뿐인데 내 전신은 땀에 흠뻑 젖어있었다.


 나는 그렇게 헤롱거리는 정신을 잡은 채 에어컨 앞에서 잠시 열을 식혔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더위가 식혀지며 정신이 돌아왔다. 적당히 여유가 생기고 내 주위가 눈에 들어왔다.


 “윙윙”


 면상 바로 앞에서 바람을 토해내고 있는 벽걸이형 에어컨. 내 주위를 날아다니는 날벌레 몇 마리. 손바닥 두 뼘 크기의 창문. 성인 남성 한 명이 겨우 누울만한 침대. 그 옆에 자리 잡고있는 샤워부스. 샤워부스 안에 보이는 세면대와 변기. 신문지 두 장 크기의 바닥 위에서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냉장고와 옷장. 코를 희미하게 찌르는 하수구 냄새와 찌린내. 이곳은 교대역 인근에 위치한 한 달에 37만원 짜리 고시원이다.


 서울의 물가가 비싼 탓일까? 그냥 대충 눈에 보이는 곳 아무 데나 숙소를 잡은 내 탓일까? 겉으로는 똑똑한 척이란 척은 다 해놓고 막상 바가지를 당했던 걸까?


 도저히 한 달에 37만 원이라는 가격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뭘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아 이게 서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이다. 뭐, 크게 사기를 당한 것도 아니니. 별 상관없기도 하고.


 “배고픈데”


 그리고 이미 이 생활에 적응 완료했다. 서울에 온 지 고작 이틀이지만 방안에 풍기는 하수구 냄새도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날벌레도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저 밥때가 되니 배가 고플 뿐이다. 나는 고픈 배를 움켜쥐고 2층의 주방으로 내려갔다. 고시원에서 무한으로 제공해주는 라면을 끓여 먹을 생각이다.


 “2개 끓여 먹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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