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섭 May 04. 2022

차라리 알바를 하지



 "법무법인 OO입니다. 오늘 면접 가능하신가요?"


 아침 10시. 며칠 전 입사 지원을 했던 법무법인에서 연락이 왔다. 지금 당장 면접을 볼 수 있냐고 물어보길래 바로 콜을 외쳤다. 거리도 가까웠기에 면접장까지는 금방이었다. 전형적인 블랙기업의 취업루틴 같아 보였지만 고민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일단 가보면 알테니까.


 “저희는 오래 일할 수 있는 직원을 뽑습니다. 들어왔다가 금방 나가거나 하지는 않겠죠?”

 “네. 이제 취업하고 얼른 자리 잡아야죠.”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으니 면접관 2명이 들어왔다. 가벼운 인사와 함께 면접이 시작되었다. 첫 질문부터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 자주 바뀌는 곳인가?'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근무환경이 좋지 못한 곳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본인보다 더 어린 사람한테 일을 배워야 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나이보다는 경력이 더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뭐 M자 탈모에 고통받는 배불뚝이 아재도 아니고. 선임이 어려봤자 얼마나 어리겠는가? 나는 아직 팔팔한 20대란 말이다. 또한 나이 따위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기도 했으니 내게는 별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하세요?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내 맞은편에 앉은 여자 면접관은 다르게 생각했을까? 50대로 보이는 이 아줌마는 깐깐력 +1 증가 옵션이 달린 것 같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내 말을 받아쳤다.


 “네. 원래 나이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타입이기도 하고요. 자존감도 높은 편이라 그런 걸로 문제가 생길 일은 없습니다.”


 물소 꼬리에 매달린 하이에나처럼 내 말을 물고 늘어지는 면접관. ‘저기요 아줌마... 저 안 그런다니까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큰일 난다. 내 입은 아주 정중하고 논리정연하게 같은 말을 반복했을 뿐이다.


 “자존감이 높으면 더 문제가 생기지 않나요?”


 그런데도 끝까지 내 말을 물고 늘어지는 면접관. 아하.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압박 면접이구나. 나는 면접관의 개소리를 들으며 영화에서나 보던 장면을 마주쳤음을 깨달았다.


 “물론 자존감이 과하게 높은 것도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겠으나 제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학생활 동안 학회장과 법과대학 대의원 의장을 했을 정도로 사회성이 장착되어 있습니다. 인간관계로 인한 문제는 적을 겁니다.”


 내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깐깐력 +1 옵션이 붙은 안경을 고쳐 쓰며 나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 면접관이다.


 ‘저기요... 예리한 척 오지게 하는 거 같은데 하나도 안 예리해요.’


 그런 면접관과 잠깐 아이컨택을 하던 나는 속마음을 목구멍으로 겨우 삼켰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죠. 6시가 퇴근시간인데 업무가 많은 경우에는 퇴근시간이 늦어질 수도 있어요. 괜찮으신가요?”

 “네. 당연히 해야죠.”


 단답을 하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내 속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듯이 예리한 눈빛을 또다시 던지는 면접관.


 ‘뭘 꼬나보노.’


 또 속마음을 삼키기만 했다. 그런데 이 면접관은 신입한테 당한 PTSD가 있나? 왜 저렇게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던지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음... 내 짧은 머리로 추측을 해보자면 이 면접관은 요즘 MZ세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일 좀 가르쳤다 싶으면 퇴사하고, 조금만 힘들면 퇴사하고, 남 눈치는 개나 줘버리고, 칼퇴근까지 해버리는 우리 세대의 문화를 극혐하는 게 아닐까?


 진실은 그녀만이 알겠지. 다만, 한가지 말하고 싶은 건 내가 ‘감히 나를 안 뽑으면 너희들 손해인데?’라는 건방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왜냐고? 나는 일 욕심이 강하고 명예욕이 있다. 어디서 일 못 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아주 그냥 참을 수가 없다. 그래서 까라면 다 깐다. 야근하라면 야근하고 일이 빡세면 뛰어다니면서 일하고 아주 그냥 요즘 보기 드문 젊은이란 말이다.


 그리고 초딩 급식 시절부터 고사리 손으로 부모님 일을 도왔던 나다. 재첩국 포장하고 택배부치고 매실따고 배추따고 고추따고 감따고 산에 비료 뿌리고... 그냥 한 마디로 일 센스가 장착되어있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지. 일머리는 공부머리랑 다르잖은가.


 "본인의 단점이 있을까요?"

 "꼼꼼하지 못합니다."


 드디어 건수를 잡았는지 여자 면접관이 눈을 빛낸다.


 "꼼꼼하지 못하다고요? 만약 항소기간을 놓치면 어떻게 되는지 아나요?"

 "수임료 물어주고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지 않을까요?"

 "네 비슷하죠. 그 뿐만 아니라 업계에서……"


 여자 면접관이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장황한 설명을 시작했다.


 "하실 수 있겠어요?"

 "자신 없습니다."


 다시 질문하는 여자 면접관에게 자신 없다고 말해버렸다. 왜냐고? 가기 싫어졌다. 더럽게 깐깐한 면접을 통과해봤자,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복사나 하는 게 끝이란다. 사람도 자주 바뀌는 환경이다. 최저시급에 근무환경도 별로고 배울 것도 없다는 말이지. 그러면 갈 이유가 없잖아?


 '차라리 알바를 하지.'


 그렇게 내 첫 면접은 끝났다. 그냥 쿨하게 넘기기로 했다. 겨우 하나 망했다고 징징댈 정도의 멘탈은 아니다.


 “원서나 더 넣고 면접 노가다나 해야겠다.”

이전 21화 몰라 뭐 어찌 되긋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