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웅
1600원 짜리 필라이트 맥주와 프레첼. 백수 전용 혼술 세트를 다 먹어갈 때쯤일까? 코딱지 만한 침대위에서 핸드폰이 울렸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대학교 때 나를 잘 챙겨주셨던 교수님 이름이 떠올라있었다.
“넵. 교수님.”
전화를 받자 교수님께서 한 마디를 던지셨다.
“혁아~ 면접하나 볼래?”
우리 학과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에서 직원을 한 명 구한다고 한다. 취업할 의사가 있는 학생 한 명을 추천해달라고 했는데 교수님께서 나를 추천한 모양이다.
‘사랑합니다. 교수님’
역시 인생은 인맥 빨인가?
“90학번이었던가? 너 선배가 운영하는 회사라던데 법무팀 직원을 뽑는다고 하더라. 일단 면접이나 봐봐.”
학과 공부를 하나도 안 했던 나 같은 놈을 법무팀에서 뽑아줄까? 뭐 일단 가보면 알겠지. 이미 합격한 곳도 두 곳이나 있다. 다음 주까지 다른 면접들도 잡혀있다. 큰 부담 없이 면접이나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곧 교수님으로부터 학과 선배님의 연락처를 받은 후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법학과 14학번 김수혁입니다. 학과장님께 연락받고 전화드렸습니다.”
“어. 그래. 이력서나 자소서 써놓은 거 있나?”
회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전화를 끊자마자 회사 메일로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면접을 보러갔다. 회사는 서울 서초구에 있었고 지내던 고시원에서 30분 정도 걸리는 곳이었다.
똑똑
한 건물의 2층. 뻘쭘하게 문을 두드리니 한 직원이 나와 안내를 해줬다. 회의실로 보이는 곳에 앉아있으니 2명의 남성이 들어와 내 맞은편에 앉는다. 나는 자리에 일어나며 군기가 바짝 든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어 그래. 14학번이라고 했지?”
내 바로 맞은편에 앉은 분이 회사 대표이자 학과 선배님이셨다. 역시 치트키 학연빨이 있었기 때문인지, 대화의 물꼬가 순탄하게 트였다.
“어제 전화로 설명했다시피 우리 회사는 채권관리를 하는 회사고 업무를 하게 되면 옆에 법무실장님이랑 같이 법무팀에서 일하게 될 거야.”
대표님은 전날 메일로 받은 이력서와 자소서를 보며 입을 여셨다.
“보자... 고향이 하동이라. 서울에는 연고가 있나?”
“연고는 없습니다. 서울에는 잠시 법률사무원 교육받으러 왔습니다.”
“그래?”
솔직히 아무것도 배운 것 없었지만 법률사무원 교육을 받으러 왔다 하니 대표님의 표정이 밝아진다.
“그럼 서울에서는 지낼 수 있나?”
“하동이 워낙 촌이다 보니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타지로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서울이든 어디든 다 똑같습니다.”
내가 하동 촌놈이라 그런가. 면접을 가는 곳마다 들었던 질문이었다. 익숙하게 대답했다.
“들어보니까 계속 면접을 보고 있다고 하던데 면접 잡아 놓은 게 더 있나?”
“네. 오늘 오후에도 면접 일정이 하나 있습니다.”
사실 다음 주까지 꽤 많은 면접 일정이 잡혀있다.
“그래? 굳이 뭐 갈 필요가 있나?”
이거 이미 나를 고용할 생각을 하고 있나 보다.
“수습 기간은 없고. 바로 정규직으로… 연봉은 이 정도…”
합격한 두 곳보다 훨씬 더 좋은 조건을 제시했다.
“서울 물가도 비싼데 200만 더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무조건 뽑힌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까?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주제에 연봉으로 딜을 했다.
“콜”
몇 초 고민하던 대표님은 쿨하게 ‘콜’을 외치셨다.
‘100만원 더 부를걸.’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얍삽한 속마음을 속이고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집 전세 보증금도 회사에서 일부 지원을 해준다고 한다.
“출근은 언제부터 가능하지?”
“다음 주부터 가능합니다. 본가에 들러서 부모님 좀 뵙고 짐도 들고 와야 합니다.”
그렇게 면접이 끝났다. 다음 주까지 잡혀있는 면접을 다 통틀어서 조건이 가장 좋은 곳에 합격했다. 그런데 이게 뭘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할지 지금 찾아온 현실을 택할지에 대해 고민이 생긴다고나 할까.
‘역시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구나.’
분명히 전날까지만 해도 유튜브 작가의 월급이 최저시급이라며 징징댔다. 무슨 일이든 일단 하자고 생각했다. 그런 상태에서 가장 최적의 상황이 내 눈앞에 왔건만. 다시 글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고개를 쳐들다니…
‘시간을 더 투자하면 조건이 좀 더 좋은 글쓰는 직업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설상가상으로 쓸데없는 도전정신과 희망 고문까지 뇌 한구석을 차지하기 시작한다.
‘하…’
아직 팔팔한 20대에 갱년기가 찾아온 걸까? 오락가락하는 나 자신이 느껴진다. 분명히 취업 활동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직업에 대해 큰 욕심이 없었건만. 시간이 지날수록 욕심이 하나 둘 늘어간다. 글 쓰는 일을 해보고 싶다는 욕심.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갖고 싶다는 욕심. 이 둘을 전부 가지고 싶다는 과욕까지.
‘아 몰라 그냥 하자.’
고민이 길어질수록 머리만 복잡해진다. 지금까지의 경험상 이럴 때는 그냥 지르는 게 답이다. 왜냐고? 생각해봤자 거기서 거기 거든. 고민의 시간이 깊어진다고 더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어차피 선택지는 둘 중 하나다. 하고 싶었던 글쓰는 일을 할 것이냐. 지금 더 좋은 조건의 현실을 택할 것이냐.
‘해보면 알겠지.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그래서 그냥 당장 눈앞에 닥친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택하기로 했다. 글쓰기는 계속해서 취미로 쓰면 되니까. 그럼 나중에 글쓰는 일을 하고 싶어지면 어떻게 하냐고? 모른다.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지 뭐. 내가 뭘 하든가 말든가. 어차피 세상은 돌아가잖아. 어떤 상황에서든 나는 또 살아남을 테고 잘 먹고 잘살 거다.
그냥 쿨한‘척’ 전화나 한 통 걸어야겠다.
“어, 엄마. 나 취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