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뽕채널이라고 아시나요?“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유튜브 채널의 대표. 갑자기 그의 입에서 국뽕이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광주까지 면접을 보러 왔건만.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 국뽕이란 국가와 히로뽕의 합성어이다. 국내 국뽕 유튜브 채널들은 대한민국이 굉장히 대단하다는 스토리만 주구장창 나열하여 애국심을 불러일으킨다. 이게 또 수입이 괜찮다고 하던데 정확한 팩트는 잘 모르겠다.)
"네. 알죠."
"저희가 그런 유튜브 채널을 몇 개 운영하고 있거든요."
국뽕 유튜버의 작가라니. 단순히 글쓰는 일을 하고 싶다고만 생각했지 국뽕에는 관심이 없었다. 구인 글에 정확히 무슨 채널을 운영하는지 적혀있지 않았기 때문일까? 그딴 건 나중에 생각하자 했던 내 안일함이 화근이었나 보다. 그 스노우볼이 이렇게 굴러왔다.
"만약 저희와 일을 하게 되면 그런 글을 쓰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네. 일이니까. 당연히 할 일은 해야죠."
일단 면접을 보러왔으니 집중을 하고 있긴 있는데... 진짜 모르겠다.
"만약 업무를 하게 되시면 급여는 이 정도 드릴 수 있고요. 나중에 조회수가 잘 나온다 싶으면 추가로 인센티브를…"
내 맞은편에 앉아있는 국뽕채널의 대표. 그가 내민 종이에는 연봉 2280만원이 적혀있었다.
'뭐고. 이거.‘
아마 최저시급에다가 실제 근무시간을 곱한 값이겠지? 대단한 곳에 취업하겠다는 포부는 1도 없었지만 이건 좀 심하지 않나 싶다. 월세 내고 공과금 내고 밥을 먹고 하면 걍 끝날테니까.
'모르긋다...'
일단 면접은 잘 마무리되었다. 뭐 얼마나 잘 봤냐고? 그냥 붙었다는 확신이 들었다. 연약한 이빨을 들이밀면서 뻥카치는 거 아니냐고 할 수 있겠지만 직감적으로 확신이 드는 것을 어떻게 하랴. (실제로 면접을 본 그다음 주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었다.)
하지만 서울의 고시원으로 돌아올 때까지 내 손은 스마트폰의 구인구직 어플리케이션을 계속해서 뒤적거렸다.
'내일은 김해에 면접이 있네.'
그 다음날은 경남 김해까지 가야 했다. 그곳은 마케팅 팀원을 구하는 법무법인이었다. 블로그에 올릴 법률 관련 컨텐츠 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솔직히 이쪽 일은 호기심이 동했다.
"급여는 이 정도 드릴 수 있고요…"
구인 글 급여에 적혀있던 '회사 내규에 의함'이란 말. 이 말은 '우리는 연봉 줬나 쪼끔줍니다. 알아서 닥치고 오세요^^'의 다른 말이었을까? 2021년의 8월. 겨드랑이에 워터파크를 개장한 채로 도착한 김해에서도 최저시급 비슷한 연봉을 제시했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구나.'
일만 시켜주면 개같이 일할 자신이 있었건만. 막상 현실이 눈앞에 닥치니 속물근성이 튀어나온다.
"일단 6개월 계약직으로 해보고. 6개월 이후에 정규직으로 전환..."
이것이 현실인가? 심지어 그 다음날 면접을 봤던 서울 가산디지털단지역에 위치한 한 스타트업은 더 했다. 6개월 계약직에다가 정규직 전환 가능이라는 조건을 제시했으니까. 판례를 전자화시켜 일반인들도 검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앱을 개발하는 회사였다. 물론 급여는 거의 최저시급이다.
"언제부터 출근하실 수 있나요?"
이곳은 면접 보는 당일 바로 합격했다. 일단 말로는 다음 주부터 출근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 햇병아리들은 알잖는가? 집에 가서 한 번 더 고민해보는 게 국룰이다.
"세상이 내게 관대하지 않으니 나만이라도 내게 관대해야겠다."
쓰린 속을 달래주는 1600원 짜리 필라이트 맥주캔. 화장실 냄새가 은은하게 풍기는 고시원 방에서 고독을 씹고 있자니 중2병이 심해진다. 다음 주까지 면접 일정이 꽉 차 있었지만 전부 도긴개긴이다.
"이게 스펙이니 뭐니 다 때려치우고 놀기만 했던 놈의 말로구나."
사실 처량한 척 코스프레를 하긴 했어도 다 예상했던 그림이었다. 남들 다 공부하고 스펙 쌓을 때 나는 내 쪼대로만 살았으니까. 되지도 않는 글을 쓴다고 나대고, 외국에 여행 다닌다며 빨빨거렸고, 밤새 소주 병을 흔들며 살았다.
"그래 니가 토익이 높냐. 자격증이 있냐. 뭐가 있냐."
아주 그냥 지 하고 싶은 대로 살았잖아? 그런데 이제 와서 더 좋은 직장에 가고 싶다고 찡찡대다니. 역시 나는 참으로 주제 모르는 놈인가 보다.
꿀꺽꿀꺽
가난한 백수의 위장을 마비시켜주는 1600원 짜리 필라이트 맥주캔. 이젠 코까지 마비되었는지 쿰쿰한 화장실 냄새도 느껴지지 않는다.
와그작
안주는 체다치즈맛 프레첼이다.
"누굴 탓하겠냐. 내가 자초한 인생인데."
그래도 내게는 아직 백수 전용 혼술 세트가 있다. 이거면 내 고독함을 달래기 충분하다.
"그래. 최저시급으로도 백수 전용 혼술 세트는 먹을 수 있다고."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아직 사지 멀쩡한 20대 아닌가. 그러니 남은 면접까지 다 보고나서 무슨 일이든지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