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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섭 Jan 26. 2022

내가 쪽팔린 놈인가...

진짜 다 귀찮다



 “어, 그래 담에 연락할게”

 “어야~”


 하동에서 백수 짓을 한 지 5개월. 백수 생활이 꽤 지속되었기 때문일까? 서서히 변해가는 내 자신이 느껴진다. 친구들의 연락에는 다음에 연락한다는 형식적인 인사만으로 답하고 막상 집 밖에 나가지 않는다. 집에서는 하루종일 유튜브나 보고 있고 그렇게 간다고 장담했던 워킹홀리데이 준비는 하나도 안 한다. 글을 쓰는 삶을 살고 싶다고 목청을 높였으나 막상 하루에 쓰는 글은 몇 글자 되지 않는다. 평생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다짐했던 주제에 하루 종일 방 안에서 뒹굴뒹굴하고 있다.


 ‘이게 내가 맞나?’


 물론 나는 맞지. 팔다리 멀쩡하게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내 감정도 느껴지는데 내가 나지 그럼 누구겠는가. 단지 괴리감에 느껴졌을 뿐이다. 나름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현재의 나는 아무것도 안 하는 백수에 불가했으니까. 내가 추구하고자 했던 삶의 모습과 현재의 내 모습이 너무 달랐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머리가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일단 취업이나 할까? 아니야. 갑자기 코로나가 풀릴 수도 있는데 그러면 그때 바로 외국으로 뜰 수가 없잖아. 그럼 외국어 공부나 하면서 다시 글을 제대로 써볼까? 아니야. 어제도 안 했는데 갑자기 내가 혼자서 제대로 할 리가 없잖아? 또 나태해질 게 뻔해. 아니면 코로나 건 뭐건 신경 쓰지 말고 일단 외국으로 출국이나 해버릴까? 근데 돈이 없잖아. 아, 그럼 일을 해야 하는데...’


 답이 없는 물음의 도돌이표. 심지어 내가 사는 곳은 아주 그냥 깡촌이다. 일자리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촌구석이라는 말이다. 입에서 쌍욕이 치밀려고 한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도저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다만 확실하게 느껴지는 한 가지는 있었다.






 ‘지금 집에 있으면 안 된다.’


 내가 백수가 되어 볼품없는 생활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습관’ 때문이다. 아무것도 안 하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안 하는 ‘습관’이 생겨버렸으니까. 아마 오늘을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보내면 내일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될 테지. 내가 나를 아니까 어렴풋이 예상이 됐다.


 이럴 때 나는 어떻게 하냐고? 별거 없다. 그냥 어디든 좋으니 집밖에 나가서 술이나 먹든 바람이나 쐬든 뭐라도 하면 된다.


 “머하노. 나 오늘 진주간다. 한잔하자.”

 “어 온나”


 더 생각할 게 있나? 바로 진주에 있는 친한 동생에게 전화를 건 후 진주로 올라갔다.


 “한잔해”

 “어 짠”


 역시나 소주가 입에 들어가고 하늘에 달이 떠오르자 가슴에 얹어졌던 돌덩이가 쪼개졌다. 그렇다고 대단한 생각이나 영감이 떠오른 건 아니다. 마음이 편해진 만큼 생각도 편해졌을 뿐이다.


 ‘어차피 아무리 생각해도 답 없잖아? 그럼 그냥 취업해서 돈이나 벌고 있자. 천천히 생각하면 내일의 내가 알아서 결정해주겠지.’


 그렇게 오늘의 내가 ‘취업’을 하겠다는 결정을 내린 순간. 또 다른 제한사항이 떠올랐다. 바로 내가 거주하는 하동은 제대로 된 취업자리가 없는 깡촌 중의 깡촌이라는 것. 한 마디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타지에 나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럼 가면 되지 뭐.’


 물론 그 제한사항도 내 머리에서 바로 지워졌다. 아무리 깡촌이라도 알바나 일용직은 적당히 있으니까. 뭘 하든 원룸 보증금 정도는 금방 마련이 될 테고. 그 자금으로 타지에 나가서 시작하면 되지 않겠는가.


 ‘만약 그 조차도 찾을 수 없다면 숙식 제공이 되는 조선소나 들어가자.’


 가벼운 마음으로 외박한 진주에서의 아침. 속에서 부글거리는 숙취와 함께 하동의 구인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계속 뒤적거리다 보니 운 좋게도 최근에 올라온 구인글 몇 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럼 생각할 게 더 없지. 정확히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냥 눈에 보이는 건 다 지원했다.






 “여보세요?”

 “네. 구인글 보고 연락드렸습니다 …”


 한동안 전화를 하다 보니 오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이 생겼다. 그러면 뭐 고민할게 있나? 바로 가야지. 일정이 정해진 순간 친한 동생 집에서 나와 하동으로 향했다. 물론 차에서 출발하기 전 어머니께 내려가고 있다는 전화를 드렸다.


 “어 엄마. 나 하동가고 있어.”

 “그래. 몇시 도착이야?”

 “1시간 있다가. 근데 가자마자 알바 면접가.”

 “면접? 어디?”

 “정확히는 모르겠는데 어디 식당이래. 거기서 뭔 김치담그고 한다던데. 내일은 녹차만드는 공장이랑 카페 면접 있고.”

 “….”


 하동으로 가고 있다는 내 연락을 받던 어머니는 갑자기 침묵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으나 기분 탓이라 생각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1시간 후. 집에 도착하자 뭔가 이상한 기류가 느껴졌다. 소파에 앉아있는 어머니가 본인의 이마에 손을 얹으며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었다. 참고로 우리 어머니는 화가 날 때 콧구멍을 벌렁거리는 습관이 있다.


 “내가 쪽팔려서 어떻게 살아!”


 역시나 내가 느낀 기류가 맞았나 보다. 면접을 가기 위해 대충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 나를 향해 어머니께서 분노를 토했다. 식당에서 김치나 담구는 아들이 쪽팔린다고 한다. 동네 사람들이 본인을 향해 쯧쯧 혀를 차는 게 걱정된다고 한다.






 ‘그게 왜?’


 어머니의 분노에 직격타를 당하자마자 내가 떠올린 생각이다. 남들이 뭐라 하든가 말든가 뭔 상관이란 말인가. 그럼 집에서 먼지처럼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있는 건 괜찮고? 내가 위법한 행위로 돈을 벌러 간다는 것도 아닌데 왜 내 선택을 방해하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냥 바로 조선소나 들어가 버릴까.’


 내 선택에 반대하는 부모님을 한두 번 보는 것도 아니라서 그 모습을 보고도 그냥 그러려니 했다. 다만 앞으로 같은 집에 있으면 눈치를 봐야 하고 심리적으로 귀찮을 테니 그냥 집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아, 그냥 다 귀찮다.’


 편안하게 머릿속을 정리하고 왔는데 집에 오자마자 다시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잡생각이 많아지자 만사가 다 귀찮아지기까지 했다.


 ‘어머니가 그렇게 하라고 노래를 부르는 토익이나 한국사 공부를 하는 척. 방에 쳐 누워버릴까.'


 분명히 나는 공부를 제대로 안 할 게 뻔하겠지. 책만 펴놓고 공부하는 척만 하면서 유튜브나 보고 낄낄거리겠지. 다시 또 느껴지는 내가 아닌 느낌과 함께 못된 생각들이 머리를 내밀기 시작한다.


 “진짜 다 귀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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