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혁씨, 계약 연장이 안 될 거 같아서...”
2021년 2월 초. 하동에서 재택근무를 하고 있던 나는 대표님의 호출을 받고 진주로 출근했다. 우리는 진주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마셨고 대표님은 계약 연장을 못할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이제 어플은 그만두려고요. 국가에서 인건비 지원해주는 게 몇 개월 남았는데 그걸로 팀장님과 유튜브만 찍기로 했습니다.”
2020년 12월. 대학교 기말고사를 치루고 있던 시기에 들어온 이 회사는 비대면 법률 서비스를 지방에서 출시한 스타트업이다.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야심차게 준비한 어플은 그 다음달인 2021년 1월에 출시됐고 결과는 좋지 않았다. 겨우 한 달이지만 대표님은 예상과는 다른 결과로 인해 빠르게 결단을 내렸고 사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아, 그럼 계약했던 대로 2월 10일까지만 근무하면 되겠습니까?”
“네. 그날은 진주 오셔서 같이 커피라도 한잔하시죠.”
솔직히 말하면 이미 예상했던 결과다. 2020년 12월. 계약 당시에도 대표님으로부터 “3개월만 계약하고 회사가 잘 되면 정규직으로 계속 가는 걸로 하죠.”라는 말을 듣고 계약했다. 그 당시에 나는 법률 상담이나 수임에 필요한 사실관계 정리 업무를 하기로 했었는데 어플이 출시된 1월부터 뭔가 싸했다.
왜냐고? 내가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플에 찾아오는 의뢰인이 있어야 회사에 수익이 생기지 않겠는가. 사건이 있어야 내가 일도 배우지 않겠는가. 그런데 찾아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나는 허공에 붕 떠버린 존재가 됐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블로그 관리와 대표님이 중간중간에 지시하는 잡일밖에 없었다. 블로그나 마케팅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다 보니 한 마디로 그냥 무쓸모 직원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예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건 그렇고 대표님이 또 다른 제안을 하셨다.
“아는 공인중개사 형이 있는데 요즘 돈이 되는 게 있다고 하더라고요. 같이 동업하려고 하는데 무슨 일이냐면... 유튜브에 부동산 매물 올려서 올라온 집값보다 약간만 더 비싸게 계약하고 중간에 수수료도 이렇게... 제가 부업으로 이것도 하려고 하는데 수혁씨 어때요? 같이 하죠. 수혁씨가 하동에 사니까 하동이랑 그 인근 담당하셔서 유튜브에 올리시고...”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는데 비대면으로 공인중개사 업무를 하는 일인가 보다.
“아, 그래요? 그건 한 번 생각해보고 연락드릴게요. 하하”
나는 당연히 고민해보겠다는 말을 남기고 자리를 파했다. 그리고 연락을 안 했다. 왜냐고? 새로운 일에 대해서 대략적으로만 들었지만 뭔가 느낌이 왔다. 잘 안 될것 같은 느낌 말이다. 더욱이 돈이 된다는 말만 듣고 갑자기 180도 노선을 바꾼다는 건, 내가 취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표님의 제안을 어물쩍 넘겨버린 나는 백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시원섭섭하기도 했다. 아침마다 일어나서 나름의 일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그래도 이미 백수가 됐으니 푹 쉬기로 했다. 대학교에 다닐 때도 항상 일했었고 졸업하기도 전에 (계약직이지만) 취업이 되어 일했으니까.
코로나가 끝나면 워홀을 가겠다는 나름의 계획도 있었으니. 잠깐의 재정비 시간도 가질 겸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2주를 쉬었을까? 뭔지 모르겠는데 몸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알바든 뭐든 항상 몸을 움직이던 몇 년간의 습관 때문인지,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쉬는 게 영 불편했다. 그리고 코로나는 절대 끝날 기미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다시 일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내가 거주하는 하동은 뭔놈의 일자리가 이렇게 없는지 인근의 다른 도시까지 검색 범위를 늘려 구인 글을 뒤져야 했다.
그런데 지원 자격과 우대 사항을 보니 뭔가 이상했다. 00자격증 필수, 토익 000점 이상, 경력자 우대, 컴퓨터 고급 활용자, 포토샵 능숙자, 차량소지자 …… 등등. 내가 해당되는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쓸 수 있는 곳이 하나도 없네.”
이전 직장은 어떻게 취업이 됐는지 궁금할 정도로 인생이 망했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