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에서 백수 짓을 한 지 3개월. 한 날은 졸업문제로 대학교에 들렀다. 그런데 학교에 들른 지 오랜만이었기 때문일까? 그렇게 가기 싫었던 대학교에서 복잡한 감정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20살이 되어 고등학교를 다시 찾아간 이 시원섭섭한 느낌.
복잡한 감정 탓에 볼일이 끝났으나 바로 집으로 향하지 못했다. 천천히 걸으며 학과 건물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추억이 담겨있는 학회방. 내 사진이 걸려있는 대의원실. 항상 지저분한 학생회실.
학교에 그다지 정도 없던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게 참으로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양심에 찔린다고 해야 할까? "학교도 그렇게 빼먹던 놈이 이제 와서 지랄하고 자빠졌네"라고 누군가 내게 말을 한다면 나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어쩌랴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마음이 다른 게 사람인데... 그냥 철면피를 둘러쓸 뿐이다.
그렇게 얼마간 추억을 되새기고 있었을까? 내게 마지막으로 떠오르던 인물이 있었다. 바로 박 교수님.
2019년에 법과대학 정교수로 임용된 박 교수님은 유독 학생들에게 애정이 많으셨다.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되었기 때문인지 성향 자체가 정이 많은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그가 학생들을 많이 챙겨주려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냥 졸업장만 딸라고요.”
학생답지 않은 말과 함께 글이나 쓰면서 여행이나 다니는 나 같은 학생한테도 관심을 보이셨다. 엘리트 코스를 밟고 대학교의 정 교수가 된 그에게는 내가 신기해 보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길을 알려주고 싶었을까?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이 들지만 아무렴 어떠랴. 그냥 좋은 스승을 만났고 좋은 인연이 남았으면 된 것 아닌가? 굳이 복잡한 생각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째서 나 같은 학생에게도 큰 관심을 가지셨는지는 교수님만이 아실 테니까.
잡설은 치우고 그렇게 내 마지막 발걸음은 자연스레 교수님의 연구실로 향했다.
“교수님~”
“혁아!”
오랜만이라고 해봤자 고작 5개월 만에 만나는 것이지만 교수님은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커피 마시니?”
“네. 커피 좋죠.”
교수님은 커피 머신에서 따뜻한 커피를 내리며 내게 한잔을 권하셨다. 나는 들고 온 캔커피 두 개를 책상 끝에 놔두고 교수님이 건네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아주 쓴 아메리카노였다. 커피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잡담하며 홀짝홀짝 마시기에는 나쁘지 않았다.
“혁아, 진짜 어떻게 하냐.”
내가 커피를 홀짝거리자 안타깝다는 듯이 입을 여시는 교수님. ‘갑자기 이게 무슨 전개냐?’라고 의문을 가질 수 있겠지만 연락은 가끔 주고받았기에 교수님은 내 현재 상황을 다 알고 계셨을 뿐이다.
“그러게요.”
“나는 진짜 네 꿈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거든?”
교수님께서는 씁쓸한 말투로 말을 이어가셨다. 그가 이렇게 안타까워하는 건 내 미래다.
'저 같은 놈의 인생도 가치가 있다는 걸 증명하는 게 제 꿈입니다. 남들이 규정해놓은 안정된 삶이 아니라, 내 멋대로 살아도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요. 그래서 지금은 글을 쓰려고요. 독자가 생기면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누군가가 생기는 거잖아요. 졸업 후에는 외국을 다니면서 글을 쓰고 싶어요.'
2년 전. 내게 꿈을 물어보는 교수님에게 말했던 나의 꿈. 그는 이 겉만 그럴싸한 나의 포부를 기억하고 있었다. 취업이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고 외국이나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싶다는 철없는 놈의 말. 그는 그 잡소리를 끝까지 응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모든 계획이 무산되었다. 졸업 후에 워홀을 가려했던 계획 말이다. 더욱이 '일단 돈이라도 벌고 있자'라고 생각하여 들어간 회사도 망했다. 교수님은 한 순간에 낙동강 오리알이 된 내 신세를 안타까워하고 계셨다.
“어찌 됐든 넌 그만큼 글을 썼고 책을 냈잖아.”
세상이 좋아져서 나 같은 놈도 작가랍시고 책을 낼 수 있게 됐다. 그다지 어렵지도 않다. 그냥 원고만 달랑 들고 자가출판을 하면 된다. 2019년에 자가출판을 했던 내 허접한 책도 그런 루트로 만들어졌다.
“그게 중요한 거야. 끝까지 했잖아?”
그런데 교수님의 눈에는 그 허접한 책이 다르게 보였나 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책 자체의 내용보다는 그 책을 적었던 제자를 생각하셨던 것 같다. 앞뒤 생각 없이 움직이고 보는 내 행동력을 높이 사셨던 걸까? 아직 젊은 나의 가능성을 보셨을까? 세상에 나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셨을까? 지금 읽어보면 아주 개판인 책인데도 교수님은 그 책을 읽고 나를 응원한다고 하셨다.
“근데 이젠 모르겠다. 이런 세상이 올지 어떻게 알았냐고.”
“그러게요. 코로나가 참... 이제 저도 모르겠어요.”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2021년도부터 외국을 떠돌아다니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가보고 싶었던 남미도 가보고 외국에서 워킹홀리데이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모든 것을 다 맛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이놈의 코로나가 내 발목을 잡았다.
더욱이, 당시의 나는 취업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 코로나의 종식을 하염없이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한 마디로 이도 저도 아닌 상태였다.
이제 교수님도 모르겠다고 하신다. 당연한 말이겠지. 썩을 코로나가 세상을 이 지경으로 만들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내 인생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했던 나 자신조차도 확신이 들지 않는데 누가 내 미래를 확신해 줄 수 있을까?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삶의 모습이 한낱 개소리로 치부될 가능성밖에 보이지 않는 세상인데...
“혁아, 너는 절대 철들지 마.”
한창 고민이 많았던 그때. 교수님이 해주셨던 마지막 한마디가 아직도 뇌리에 잊히지 않는다. 다른 어른들과는 다르게 나보고 절대 철들지 말라고 하신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하여 건장한 성인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하는 나한테 절대 철들지 말라고 하신다.
더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나는 그 뜻을 알 것만 같았다. 아니. 오히려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교수님이 말씀하시는 “철들지 마”는 사리 분별을 못하는 아이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가장 나답게 살라는 말이었으니까.
‘그래. 세상이 어떻든 무슨 상관이냐. 어찌 되든 세상은 굴러가고 나는 삼아남을 텐데.’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내 감정은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다. 쓸데없는 반항심인지,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심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어느 순간부터 내 속을 채우기 시작한 자유에 대한 욕망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과거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나는 이 욕망에 항상 충실했다. 때로는 그 누구에게도 내 인생의 선택권을 절대 양도할 수 없다는 아집으로 변질되긴 했다. 당연히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상관없었다. 내 인생이니까. 망해도 내 선택으로 망하고 싶고 나락을 가도 내 선택으로 나락을 가고 싶었다. 이유는 그게 전부다.
"네! 저는 절대 철 안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