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와 나무
땅을 파고 꽃씨를 묻으려다
꽃씨가 우는 것을 보았다.
뿌리 내려 다시 꽃피우기 두려운지
흙을 내려다보며 그 작은 평화를
천의 모양으로 부수고 있었다.
하늘이 흐렸다.
꽃씨 한 톨의 눈물이 나를 굴리며 세상 그득
낯선 불을 지르고 있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비는 오지 않고
한 톨의 꽃씨가 나를 빼앗아
태풍의 눈처럼 묻히고 있었다.
「소용돌이」
조은 詩集 『사랑의 위력으로』(민음사, 1991)
오래된 일기 속에 나를 사랑한다 말하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청춘의 낯선 그늘과 어두운 골목들 사이 그들의 말들이 웅성거리며 날아오른다. 따뜻한 빛처럼 속삭이던 그들의 얼굴들 사이로 靑春이 너무 짙어 눈이 부시다. 그 눈부신 여름은 초록이 되고 그 초록은 나뭇잎이 된다. 보라, 인생의 청춘이 나뭇잎이 되는 그 과정이 여기 길 위에 있다. 삶이 뜨거울 때 나는 살아있었고 또 살아있었다. 그 뜨거운 입김을 따라 그 길을 따라 나는 하염없이 걸었다. 無知의 언덕을 너머 지식과 사랑, 그 들뜬 희열로 만났던 사람들, 문득 고개를 들어보면 아무도 없다. 어제는 따뜻한 볕과 코끝을 간지럽히는 서늘한 바람을 맞으며 삶의 조그만 희열을 느꼈고, 오늘은 느닷없는 죽음의 공포에 휩싸여 꼼짝도 못한 채 그 공포가 가실 때까지 길 가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저기 멀리 삶의 솔기가 우두둑 튿어지는 소리는 내며 묵묵히 걸어가는 그대를 본다. 그리고 여기, 코끼리가 코끼리가 되고 나무가 나무가 되는 일들 너머 나는, 가을처럼 늙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