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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원 Dec 30. 2021

오후(五後)에 대하여

오후(五後)에 대하여....  

  

 오후(午後)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 정오부터 해가 질 때까지의 동안‘이라고 풀이해 놓았다. 강추위가 자리를 잠시 비우니 공원 벤치에 동네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오후를 보내고 있다. 문득 오후(午後)가 오십이후(五十以後)의 줄임말로 보이더니 ’ 오후는 어떻게 지내셨어요?‘라는 말이 ’ 오십 이후는 어떻게 살고 있나요?‘로 바꿔 들리는 내가 뜬금없다. 시계를 보니 오후 5시까지 5분이 남았다. 해가 5시 22분에 진다고 하니 27분이 지나면 오후도 끝이 난다. 억지로 가져다 붙이는 것도 정도껏인데 ’ 27분 후면 오십 이후도 끝입니다.’라고 말하고 피식 웃었다. 그림자 길어지는 오후를 오십이후라고 명명하는 순간이 하필 한 해를 보내기 이틀 전에 일어났다는 말은 하루해가 저물어가는 이 순간이 여느 때와 다르다는 뜻이다.    

  

 한동안 유튜브에서 나의 관심 키워드는 ‘인생 후반’이었나 보다. 유튜브를 열면 ‘오십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고 제목부터 반은 겁을 주는 타이틀이 상단에 올라와 있다. 나도 모르는 나를 유튜브는 다 아는 듯 만물상자를 열어 놓는다. 그냥 지나치고 쭉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결국 오십 이후가 행복한 이유에 대한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다. 조금 지나면 나도 모르게 맞장구를 치고 열렬 구독하게 된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말에 책 제목 잘 뽑았다고 들춰보던 때가 얼마 전 인듯한데 요즘은 유튜브 ‘원더풀 인생 후반전’의 구독자이다. 종이책 대신에 유튜버가 읽어주는 책을 듣다가 자는 것도 요즘 들어 생긴 버릇이다.

  

 브런치팀에서 오랜만에 알림이 왔다. 요즘 글 담기에는 소홀하고 몸에 술 담기로 바쁜 일상에 나만의 이야기를 써서 올려달라는 브런치의 알림 종이 권유라기보다 은근한 압박으로 느껴졌다. 브런치 탓에 떠밀리다시피 책상에 앉기는 했는데 글로 게워낼 일상이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오후에는 내려놓고 건강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 자신을 챙기고 자신에게 잘해주세요.’ 서점 스테디셀러 코너에 꽂힌 책 속에서 보았을 문구들이 어지럽게 머릿속을 지났다. 그동안 참 무던히도 읽었었나 보다. 구호에 가까운 문구들이 솟구쳤다. 그속에서 한 문구가 섬광처럼 떠올랐다.  ‘五後에는 걸으세요.’      


 올 봄부터 코로나로 실내 운동이 좌절되고 대신 저녁식사 후 걷기를 했다. 저녁 8시가 넘어 한강변을 걷다 보면 10시가 훌쩍 넘어 집에 들어오기 일쑤였다. 걸어보자 하고 길을 나서고 30분 정도는 이런저런 생각이 떠오르고 사라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몸은 일정한 리듬 속에 올라타고 무념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걷기 명상을 배우지는 않았지만 이와 비슷한 경험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아이에게 맛있는 음식 떠먹이는 심정으로 걷기를 권한다. 좋으면 혼자 즐기면 되지 만나는 사람마다 전도사처럼 구는 어른과는 10분도 같이 있기 싫었다. 아니 귀찮았다. 그래서 걷기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만 하고 참는다. 그러던 차에 오늘은 눈치 볼 일 없이 실컷 걷기예찬하니 속이 시원하다.      


 오후(五後)에 접어든 사람들과 만나다 보면 어렵고 힘든 가정사나 개인사로 이야기를 이끄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도 그중 한 사람이다. 고민이 있을 때 들어주기만 해도 위안이 되니 싫은 내색없이 들어주는 친구나 가족의 고마움을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자기에게만 닥친 듯 한숨 섞어 풀어놓더라도 십시일반 주어 담아주는 이들에게도 감사해야 한다. 돌이켜보니 한동안 나도 개인사로 푸념 많이 하고 오후(五後)로 접어들었던 듯하다. 오십 이후에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데 걷기 만한게 없다. 걷다 보면 입이 닫히고 마음이 열린다.     


 걷기 이야기는 더하면 구독이 끊길 수 있다.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 한때 ‘낄끼빠빠(낄때 끼고 빠질때 빠진다)’를 잘도 써먹었다. 조카들이 노는 자리에서 갑자기 일어서며 ‘낄끼빠빠’를 말하고 나오며 술값 대납해주었다. 오십 이후는 그래야 한다고 그래야 어른이라고 그래야 사람대접 받는다고 맹신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아류작으로 ‘괴로우니까 중년이다’도 나올 법하다. 중년은 여러모로 괴롭고 어디에 하소연할 곳도 드물다. 이 이야기도 이쯤에서 그만둬야 한다. 더하면 ‘TMI’이다. 말 안 해도 이 글을 읽는 중년은 다 안다.

 ‘오전(五前)에 힘들었으니 오후(五後)에는 좀 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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