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누구니?
나의 어릴 적을 생각해 보면 적극적인 아이는 아니었다. 사브작사브작 조용히 혼자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림 그리기를 특히 좋아했는데, 긴 생머리에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공주를 그리는 것을 가장 좋아했다. 종이 인형을 직접 그리고 가위로 오려서 노는 걸 좋아했던 아이였다.
국민학생 시절, 나의 장래희망은 ‘화가’였고, 나중에 크면 프랑스로 유학을 갈 거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림을 곧 잘 그려서 상도 많이 받았고,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가서 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의 꿈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시 그림에 대한 열정이 살아난 것은 내가 엄마가 되면서부터였다. 공룡을 좋아했던 첫째를 위해 공룡을 그려주면, “우와! 엄마 그림 정말 잘 그린다!”라는 칭찬과 함께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다.
아이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나는 더 잘 그리려 노력했다.
첫째가 자라서 더 이상 내 그림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었을 때, 둘째가 태어났다.
둘째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작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 디지털 드로잉을 배워보고 싶어 했다. 애니메이션 학원을 검색해 보며 보내달라고 조르는 아이는,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학원을 다니게 된 아이는 자기가 모은 돈으로 드로잉 패드도 장만했다. 일반 컴퓨터와 연결해서 쓰는 드로잉 패드는 새로운 세계였다. 펜슬로 쓱쓱 그려서 그림 안을 콕 찍으면 색이 채워지고, 색상도 마음대로 조합할 수 있고, 각 종 브러시들로 다채롭게 선과 색을 표현할 수 있는 디지털 드로잉의 세계에 감탄했다. 그렇게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한 아이는 종이를 떠나 금방 적응했다.
그러던 중, 재미난 학교에서 달력 만들기(그리기) 모임이 생겼다.
배워보고 싶었으나 망설이고 있었던, 디지털 드로잉을 배울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
드로잉 첫날, 와...... 이건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었다. 두 시간이 이렇게 빨리 지나가는 시간이었던가.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배웠다. 그날 저녁부터 새벽까지 그림을 그렸는데, 그 시간이 피곤하기는커녕 힐링이 되었다. 하나씩 완성되어 가는 그림을 보며 마치 내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앱을 사용하면서, 모르거나 궁금한 기능이 나오면 아이가 알려주었다.
그림을 그려 아이에게 보여주면, “오! 엄마, 제법인데!”라며 칭찬을 해준다.
같은 취미를 가진 우리는 오늘 얼마나 그렸는지 서로 궁금해하고 새롭게 알게 된 기능들을 공유한다.
아이는 개인 프로젝트로 친구들 얼굴과 캐릭터를 그리고 있다. 잘 안 그려져서 속상해할 때마다, 나 역시 그랬다고, 같은 그림을 몇 시간째 그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네가 짜증을 내는 이유를 알 것 같다고 공감해 주었다. 그 말은 들은 아이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다시 연습한다.
비록 개인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까지 험난한 여정이 그려지지만, 아이가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같이 해보자.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