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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1. 보여주는 글, 말하는 글

by 성준

p 49-52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완벽주의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나는 완벽주의자야"라고 말하는 대신
내가 어떤 행동들을 하는지 충분히 보여주세요


작가는 주제에 대해 '말해줄 것'인지 '보여줄 것'인지 선택할 필요가 있다.
말하는 글쓰기는 어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중략) 인물이나 상황이 평면적으로 그려지고, 독자에게 상황과 인물을 이해시킨다기보다 주입한다는 느낌이...





아침부터 되는 일이 없었다. 스타킹은 찢어지고, 지하철은 놓치고, 출근 시간에는 늦어버렸고, 사수의 호된 꾸지람에 눈물이 났다. 지각으로 밀린 일을 하느라 점심 식사를 할 시간도 없었다. 오후 회의가 시작하자 속이 쓰렸다.




아침에 현관문을 열고 나섰다. '오늘도 파이팅이다' 힘찬 한 걸음을 걷는 순간. 찌익 문틀에 걸린 스타킹은 옆으로 큰 흉터를 내며, 뽀얀 내 다리를 드러내놓았다. 오늘 오후에 중요한 미팅이다. 다시 집으로 들어가 여분의 스타킹을 찾았다. 분명 엊그제 사다둔 스타킹의 존재는 기억이 나는데 위치가 떠오르지 않는다. 집안을 한 차례 뒤집고 나서야 지금 신고 있는 찢어진 스타킹이 그것임을 깨닫는다. 아침의 활기찬 발걸음은 초조함에 보폭은 좁아지고 속도는 빨라졌다. 편의점을 두 군데나 다녀서야 원하는 스타킹을 찾았다. "띠리리리리리 열차가 들어옵니다. 승객 여러분은..." 이 지하철을 놓치면 지각이다. 그녀는 마지막 계단 2개를 뛰어 내려가며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달렸다. 문 앞에서 닫히는 스크린도어에 자신의 앞날이 닫히는 듯했다. 지각이다.


"오늘 중요한 미팅 있다고 좀 일찍 나오라고 했어 안 했어? 어제 보내온 자료에 이 오류 아침에라도 수정해야 할 거아야. 그런데 오히려 지각을 해 오늘? 정신이 있니 없니? 지금 오전 중으로 이 자료 틀린 것 다 찾아서 다시 정리하고, 오후 미팅 준비 완벽히 끝내놔 어서"


아차차 자료에 수치가 잘못되었다고 일찍 나오라 하신걸 스타킹이 구멍 나는 바람에 잊어버렸다. 할 말이 없다. 오전 시간 내내 틀린 수치와 연관되어 나온 전망치를 수정하느라 자리에서 한 번을 못 일어섰다. 어쩌면 점심시간도 이렇게 보내야 할 것 같은 예감이다. 점심시간 직후에 미팅이라 아무래도 점심을 먹고 오자면 일 말무리가 안 될 것 같다. 점심도 포기한 채 아슬아슬하게 자료 준비를 마쳤다. 출력하고 차를 준비하고, 아슬아슬 미팅 준비를 끝마쳤다. 거래처의 임직원 분이 들어오신다.

오늘 준비한 커피만큼 달달한 미팅이었으면 좋겠는데 점심을 거른 내 속은 쓰리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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