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은 이 문장이 트렌디한 표현이고 좋은 주제를 품고 있다 하더라도 이러한 표현과 주제가 내년에도 유효할지를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문장을 쓸 때나 글감을 고를 때는 신중해야 합니다.
매체에 따라서 단어 선택이 달라져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깔아놓은 몇 개의 SNS는 세상 모든 소식들을 전해준다. 누구네는 어디를 여행 갔는지 이국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민소매 사진을 잔뜩 올려두었다. 또 다른 아무개는 한파인데 땀을 뻘뻘 흘리며 힘찬 드라이버 스윙을 하고 있다. 김서방네는 아이가 어느 콩쿠르에 나가 상을 받은 모양이다. 또 다른 아무개는 열심히 헬스장에서 쇠질을 하고 탄탄해진 몸매를 뽐내고 있다. 다들 잘도 살아간다.
방구석에 기대어 핸드폰만 쥐고 있어도, 지인들과 세상이 돌아가는 일쯤은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요즘엔 어떤 새로운 신조어들이 나왔는지, 어떤 챌린지가 유행이며, 어떤 다이어트법이 유행인지도 알 수 있다. 정보가 돈이 되고, 인플루언서가 권력이 되는 세상에서 많은 이들은 수많은 정보를 던져 준다. 그중에 좋아 보이고 괜찮아 보이는 몇몇의 조언을 따르기도 한다. 때로는 그 효과가 나쁘지 않다. 조금만 품을 팔면 내게 필요한 정보를 얻는 일은 꽤나 요원해졌다. 포장만 그럴듯하고, 막상 그 내용은 부실한 경우도 많다. 그중에서 취사선별은 나의 몫이며, 쉽게 정보를 얻는데 투자해야 할 대가쯤 되겠다.
한때 잉여로운 생활을 할 때를 보면 나는 수많은 정보와 콘텐츠를 받아들이기만 했다. 내게 감동을 주고, 즐거움을 주던 콘텐츠들을 오롯이 내 안에서 돌고 돌았다. 책을 읽고 그 감동에 세상을 아름답게 보기도 했고, 마음 시린 콘텐츠에 지나간 추억과 아픔들을 곱씹으며 감정을 소화해 내었다. 이 또한 살아가는 방법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삶을 살던 나는 잉여로웠고, 단조로웠으며, 세상과 나를 항상 비교하기 바빴다. 왜 나의 삶은 그들과 같지 않을까, 하며.
내가 알게 된 해결책은 의외로 간단했다. 나 역시 생산자가 되는 것. 거창하게 대단한 콘텐츠를 만들 필요는 없었다. 내가 느꼈던 감정, 생각 등을 써 내려가는 것뿐. 글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생산품이었다. 연필만 있으면, 컴퓨터에 인터넷만 되어도 나는 나의 창작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시작은 미약하다. 한 줄의 문장, 하나의 문단. 몇 개의 꼭지가 모였다. 시간이 흐르니 제법 여러 편의 글이 모였고, 시간이 날 때면 예전의 글들을 되짚어 읽어본다. 그때의 나의 감정은 이랬구나. 나는 이런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구나. 그때의 나는 참 날카로웠구나를 느끼며 글을 고치고 다듬는다. 나는 글을 다듬으며, 지난날의 나를 이어서 오늘의 나를 다듬는 셈이다.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하는 일이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그 사람을 소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는 일이 꼭 생계를 위한 일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것으로 그 사람을 더 잘 설명할 수 있다.
"저는 달리기를 합니다."
"저는 봉사활동을 하러 다녀요"
"저는 글쓰기를 합니다."
"저는 사진을 찍어요"
"저는 도자기를 만들어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다. 활동적이고, 이타심이 넘치며, 사색을 좋아하고,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하며, 형태를 빚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만들어 낸 생산품을 나 스스로 소비하며, 다시 발전시키고, 다듬는다. 내가 쓰는 글을 내가 읽고 고치는 것처럼. 그렇게 또 다른 생산품을 만들어 낸다. 우리는 그렇게 생산하는 동시에 소비를 하며, 그 과정으로 스스로 치유, 성장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