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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4. 문단의 리듬을 살리는 법

by 성준

p 59-62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긴 호흡의 글을 쓰다 보면 (중략) 문장 혹은 문단이 딱딱해지거나,
단조로워지기 쉽습니다.
문장들이 한 가지 형태로 나열되었기 때문이죠,
여기서는 문장 몇 개를 명사형으로 마치거나 대화문으로 바꾸는 것만으로도
문단 전체를 리드미컬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글을 어떤 분위기로 이끌어 갈 것인지 충분히 고민한 후 적용해야 합니다.




집에 새로운 피아노가 배송이 왔다. 요 몇 년 간 잘 버텨주던 디지털 피아노에 싫증이 났나 보다. 큰아이와 와이프는 새로운 디지털이 아닌 피아노를 원했다. 나 없이 둘이 함께만 몇 번 피아노 매장도 다녀왔다. 그날은 평소에 다니는 동선과 조금은 다른 길로 움직였다. 백화점에 이런 길이 있었나 싶을 무렵 다다른 곳은 악기점. 몇 대의 피아노들이 쪼르륵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하 피아노 매장이 여기 있었구나'


아내와 아이는 익숙한 듯 피아노를 만져보고, 나는 슬쩍 가격표를 스캔했다. 지금 쓰고 있는 디지털 피아노가 40만 원대였으니 어떤 걸 골라도 서너 배 값이다. 슬쩍 발길을 돌릴까, 생각도 했다. 그래도 나를 이곳까지 납치한 성의가 있는데 모른 척 매장을 한 바퀴 스윽 둘러보았다. 시선이 멈춘 곳은 빈티지한 느낌의 디자인이 세련된 디지털 피아노와 그 옆의 새틴 블루 컬러의 예쁜 피아노.


"오올~ 이 피아노 예쁜데?"

"아빠 이 피아노 이쁘기도 하고 소리도 좋아. 집에 있는 피아노는 건반이 플라스틱인데 이건 디털인데도 건반이 나무라서 피아노 치는 느낌도 나고"

"공부 많이 하셨구만"

"이 피아노는 디지털 피아노에 블루투스 기능으로 스피커 역할도 합니다. 삼익과 자일러 콜라보 제품으로 기능도 좋고, 디자인도 인기 있는 제품입니다."


한 바퀴 쓰윽 둘러보고 가려던 나의 계획은 아내, 아이, 사장님의 3단 콤보 설득에 조금씩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장님 여기 어떤 카드가 무이자 할부가 제일 긴가요?"

"제가 저희 온라인 홈페이지 보내 드릴게요 여기가 할부가 조금 더 길고, 종류도 많이 되세요"


나는 사장님의 회심의 한 방에 결제하고 말았다. 무이자 24개월. 그렇게 우리 집에는 피아노가 두대가 되었다. 기존의 디지털 피아노는 아이방에 넣어주고, 거실에는 새로운 피아노가 도착했다. 디자인이 예쁜 빈티지 스타일의 블루투스 스피커용 디지털 피아노.


아이가 학교 간 사이 배송된 피아노는 나와 와이프의 오후를 기분 좋게 만들어줬다. 설치하자마자 아이패드로 크리스마스 재즈를 재생시킨 와이프는 생각보다 좋은 음질과 소리 그리고 디자인에 행복해했다. 이런 맛에 돈을 쓴다. 물론 와이프 돈이지만.


피아노 학원에 들렀다 온다던 아이는 새 피아노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두말없이 집으로 왔다. 사춘기 소녀 특유의 하이톤으로 소리 한번 질러주시고, 열심히 피아노를 친다. 이제는 제법 수준급으로 치니까 내가 좀 뿌듯하다. 나와 와이프가 있을 때는 스피커였는데 아이가 만지니 이제야 악기 같다.


창밖에는 눈이 쌓였지만 집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따스하다. 새로 온 예쁜 피아노에선 사랑스런 아이가 제법 멋진 선율을 뽑아낸다. 오랜 꿈이 실현된 듯한 풍경에 부부는 기분이 좋다. 사람의 마음은 참 단순하다. 피아노 하나만 바뀌었을 뿐인데 집안의 풍경이 달라진다. 이 풍경도 곧 익숙해지겠지만, 오늘의 이 느낌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겠다. 나에겐 피아노에 새로운 추억이 생긴 셈이다.









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화요일 : 동생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목요일 : 짐은 민박집에 두고 가세요

금요일 : Daddy At Home

비정기매거진 : 관찰하는 힘 일상을 소요하다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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