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63-66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묘사'란 읽은 이에게 '어떤 것을 경험하게 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내가 맛보았던 음식을 설명해 주고 싶으면
독자 역시 그것을 맛보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묘사해 주세요
11월 중순의 화천은 이미 한겨울이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한 추위였다. 햇볕이 잘 드는 담벼락에 붙어 있으면 노곤한 햇살이 느껴져 온기를 느낄 수 있었지만 담벼락을 조금만 벗어나면 바람은 칼날이 되어 온몸을 훑고 지나갔다. 지나간 바람은 뺨에 빠알간 동상 기를 남기었다. 내 자대의 기억은 바람이었다. 군용 트럭을 타고 더블백 하나를 소중히 품고 자대로 달려가는 내내 풍경은 바람이었다. 어디를 보아도 산. 그 산을 타고 내려오는 칼바람. 칼바람에 시린 눈을 제대로 뜨기도 힘든 그런 곳이었다.
앞으로 내 집이 될 군부대는 도로를 가운데로 포대와 숙소로 나눠져 있었다. 탱크처럼 생긴 자주포를 운영했던 내 군부대는 예비부대였다. 전쟁이 나서 최전방의 병사들이 몸으로 막고 있는 그 시간 우리가 미리 조준해 둔 북한군 기지에 포탄을 날리고, 뒤로 빠져 전열을 다듬는다는 그런 목적의 부대였다. 치고 빠지는데 신속해야 하는 나름 스피드가 필요한 부대였다.
생활관에서 나오면 왼편으로는 본부중대가 있고, 정면에는 사열대와 위병소가 있었다. 오른편에 브라보 포대가, 그 옆으로 알파 포대가 ㄷ 모양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찰리 포대였다. 위병소를 나서면 2차선 도로가 있다. 민간인이 이용하기도 하고, 전쟁이 나면 우리가 이동할 그 도로다. 도로를 건너면 본격적으로 자주포 진지가 나온다. 산 곳곳에 총 18대의 자주포와 4대의 장갑차 그리고 군용 트럭들이 숨겨져 있다. 텔레토비 언덕처럼 생긴 산을 오르면 두꺼비집처럼 생긴 포진지가 나온다. 그곳에 자주포 한대와 육군트럭이 한 대씩 숨겨져 있다. 자주포는 항상 같은 표적을 향해 조준이 되어 있다. 그날의 기상에 따라서 사각과 편각을 조금씩 달리하지만 우리 군이 노리는 표적은 항상 동일하다. 방아쇠만 당기면 그 표적을 향해 15kg의 포탄이 날아간다. 영화에서 날아가는 총알이랑 비슷하게 생겼다. 그 총알을 한 100배 이상 크게 튀겨 놓게 생겼다. 그런 포탄을 최고 23킬로미터까지 날릴 수 있다. 실사격에 포탄이 발사되는 그 순간은 천지가 울린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 자주포의 무게만 해도 25톤으로 웬만한 차들이 전속력으로 부딪혀도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런 자주포가 실사격에는 움찔움찔 밀리며, 땅을 박차고 포탄을 쏘아낸다. 후폭풍에 사람이 뒤로 밀릴 정도라 바로 뒤편에 서있다가는 크데 다칠 수도 있다. 그런 괴물 18대가 조준하고 있는 곳은 우리 군은 직접 볼 수는 없다. 아마 휴전선 너머의 북한 진지쯤 될 것이다.
최대 사거리 23킬로를 감안해도 가까운 곳이다. 차로 해봐야 20여분 정도도 안 걸릴 거리다. 그 가까운 곳에 북한이 있고, 적군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직접 볼 수는 없지만 서로의 진지를 향해 포신을 겨누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그 자리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18문의 자주포가 겨냥한 곳은, 전쟁이 벌어져 우리가 세 발을 쏘고 이동하고 나면 지도상에 흔적만이 남게 될 장소다.
그곳이 어떤 곳인지 우리는 직접 보지 못했다. 요즘처럼 칼바람이 부는 곳일 것이다. 4월에도 눈이 내릴 그런 곳일 것이다. 차갑고, 어둡고, 음침한 곳이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공격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조준하는 것이 정당해진다. 그곳의 사람들은 자비가 없어야 하고, 가족이 없어야 한다. 냉정하고 적을 없애는 데 집중하는 인간미가 없어야 한다. 잘못된 신념이 자신의 목숨을 걸 수 있는 그릇된 신념의 소유자여야 한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다.
내 옆에 있는 전우들처럼 집에 기다리는 가족이 있고, 형제가 있으면 안 된다. 군대를 제대하고 싶은 일이 있고, 꿈이 있는 사람들이면 안된다. 그런 사람들일까 봐 내가 방아쇠를 당기는데 조금이라도 주저해 내 옆의 전우들이 포탄에 사지가 찢겨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느 곳을 조준하는지는 알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는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럼 죽을 수 있다.
내가 26개월을 지냈던 자대는 이런 곳이었다. 날씨도 추웠고, 바람도 추웠고, 그 안에 담긴 내용도 추웠다. 한파가 다가오면 군부대의 바람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바람뒤에 따라오던 봄도 생각난다. 길고도 길었던 그 겨울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바람이 부드럽다 느껴지게 되면 봄이 찾아왔다. 온 산 천지에 꽃이 피고, 들풀이 자랐다. 하얀색의 무채색이 온통 초록색으로 변했던 그 봄. 겨울은 추웠지만, 그 겨울이 끝나고 봄이 온다는 사실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고, 버틸 수 있게 해 주었다. 오늘 새해 밑 한파가 온다고 한다. 20여 년이 지나고 잊히지 않는 그 계절이, 그 바람이 또다시 불겠다. 휴전선이 걷힐 그날까지 그 바람은 서로의 등을 파고 들것이다. 칼바람은 잦아들고 온천지에 들풀이 피는 그런 날이 어서 오길 바란다.
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화요일 : 동생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목요일 : 짐은 민박집에 두고 가세요
금요일 : Daddy At Home
비정기매거진 : 관찰하는 힘 일상을 소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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