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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17. 에세이 작가가 되는 두 가지 방법

by 성준

p 71-73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저자가 매력적이라면 에세이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매체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면 당신은 당신 자체로 유명해지거나,
당신의 글을 유명하게 만들면 됩니다.

평소에 글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유명인의 책이
서점에서 계속 보이는 것이 그 증거입니다.





오래도 전 이야기다. 대략 이십여 년 전의 이야기인지라 지금도 시대성이 있을까 걱정이지만, 단언컨대 내가 지금부터 할 이야기들은 현재도 충분히 현상을 직설적으로 꿰뚫어 버린 진리일 것이다. 귀로는 다른 음악을 듣더라도 눈은 잠시 똑바로 이 글을 읽기 바란다.


그날은 내 삶에 있어서 수많은 잔소리를 가장 진지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인 날이다. 다른 이의 조언과 잔소리가 그렇게 내 삶에 피가 되고 뼈가 되리라는 생각을 그 날이후로는 해본 적이 없을 정도다. 아직도 그중의 몇몇의 기억에 남아 있다.


"친절할 것"

"매너 있게 행동할 것"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일 것"

"상대방의 언어에 관심이 있다는 행동을 할 것"


그날 선배와 동기들이 나에게 나눠준 주옥같은 충고와 조언들이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만 행동하면, 미팅에서 성공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나는 외우고 또 외웠다.


5대 5의 만남이었고, 모두들 조언과 팁을 외우다 못해 몸에 체화시킨 멤버로서 미팅은 순조로웠다. 적당히 술이 오고 가고, 부드럽게 대화가 이루어지고, 은근슬쩍 신호를 날리기도, 캐치하기도 하면서 진행된 미팅이었다. 평소 미인이 많다는 소문을 확인하고자 강남까지 원정을 떠난 미팅자리는 명불허전의 자리였다. 피날레의 시간이 왔다. 클래식하게 인기투표가 진행되었다. 각자 마음에 드는 이성을 적어서 발표하고 매칭되는 파트너끼리 따로 자리를 갖는 식이었다.


결과는

여성 A 남자 4표 획득 (남은 남자 1표는 기권표)

남성 A 여자 4표 획득 (남은 여성 1표는 E에게)


여성들은 한 남자에게 4표를 나머지 한 남자에게 1표를 주었고, 남자들의 4표는 한 여성에게 몰렸다. 여성의 표를 가진 두 남자의 선택이 아이러니하게도, 4표를 받은 남성은 기권을. 한 표를 받은 남성은 엇갈리게 표를 주어 5대 5의 미팅에 단 한 커플도 매칭되지 못했다.


결과를 집계하고는 모두들 씁쓸하게 웃으며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는 쿨하게들 사라졌다는...


전략적으로 분석해 보자면 모두들 기본적으로 매너 있고, 차분하고, 깔끔하게 대화했고, 행동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버하지 않았지만, 재미있었고, 대화가 통했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대화 주제를 꺼냈고, 적당히 말주변이 있어 흥미 있게 대화를 주고받았다. 문제는 모두가 그랬다는 점이다.


다섯 명 중 한 사람만 그렇게 대화하고 행동했다면, 그는 매너남이 되어 더 많은 선택을 받았을 수 있다. 하지만 모두가 그랬기에 그 재능과 매너는 디폴트 값 (별도 설정을 하지 않은 '초기값', 즉 '기본 설정값'을 의미한다.)이 되어 버렸다. 모두가 갖춘 재능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결국 판단의 기준은 외모가 되어 버린 것이다. 아마 우리가 전략을 달리해 저마다 다른 개성을 추구했다면, 인기투표는 좀 더 복잡하게 많은 변수를 낳았을 수도 있다. 우리는 너무도 고지식한 방식만을 고수했는지 모른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글을 쓰는 사람들은 읽는데 자연스레 활자가 눈에 들어온다. 좀 더 강조하면 그냥 글씨가 막 눈에 와서 때려 박힌다. 그런 글들이 브런치에도 아주 많다. 그런데 결국 내가 적어 내놓는 인기투표용지에는 잘 읽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중에서 어떤 주제로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작가의 개성이 담긴 글을 고르게 된다. 그 작가를 구독하고, 좋아요와 댓글을 남긴다. 어쩌면 작가들에게 글을 쓰는 재주는 디폴드 값이고, 그 내용을 가지고 승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때로 우리는 디폴트 값으로 경쟁을 한다고 생각하곤 한다. 기본값을 갖추기 위한 노력을 노력이라고 부르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그 정도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성공을 바란다는 것은 욕심이다. 어떤 분야던 스스로 성공이라 부를만한 위치에 오르기 위해서는 몸에 체화되어 있는 스킬 몇 개쯤은 있어야 한다. 그게 기본이 되어 다른 필살기가 생긴다. 디폴트 값을 체화하는 게 가장 어렵다. 보통 단순 반복의 지루한 날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또 안다. 그 디폴트 값을 체화하면 자신을 표현할 길이 훨씬 많아진다는 것을. 성장의 대부분은 정비례 스타일보다는 계단식이거나 지수함수 그래프 식이다. 일정 시간까지의 성장량이 가장 작다. 그 구간을 견뎌내는 것이 제일 우선의 목표다.


브런치 작가분들은 여기까지 체화하신 분들이다. 글을 쓰는데 익숙하고, 기술을 알고, 읽을 줄 안다. 이제 우리가 가진 시선과 생각들을 꺼내어 놓을 시간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왜 라임 있게 읽힐까요?) 글로 써 내려가야 한다.


참고로 남자 마지막 한표 저였습니다.



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화요일 : 동생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목요일 : 짐은 민박집에 두고 가세요

금요일 : Daddy At Home

비정기매거진 : 관찰하는 힘 일상을 소요하다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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