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만의 문체를 가지고 싶다면 어떻게든
세상을 보는 자신만의 시선을 길러야 합니다.
문체라는 것은 세상을 보는 시선에서 완성됩니다.
내가 주로 어떤 주제들에 집중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주제들을 어떤 느낌으로 드러내고 싶은지.
지난날 어머니를 인터뷰하고 왔다. 인터뷰라고 해야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옛날이야기를 들었던 것뿐이다. 그러고 보니 나는 내 어머니의 어린 시절과 결혼 전 이야기에 대해서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유년 시절은 어땠는지, 학창 시절엔, 젊은 날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었는지 거의 아는 사실이 없다는 걸 알았다. 그저 나의 부모로서의 삶만 알고 기억할 뿐이었다. 기억 속의 부모님은 태어나면서부터 엄마이고 아빠로 태어난 것처럼. 나를 바라보는 우리 아이들도 비슷한 감정을 느낄까?
옛이야기를 꺼내는 어머니의 기억은 생각보다 아프고, 생각보다 힘겨웠다. 마치 파친코의 선자와도 같은 삶을 살아오셨다. 과연 1970년대의 이야기가 맞는지, 내가 알고 있는 외할머니가 맞는지 내가 알고 있는 외가의 가족들이 맞는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할머니, 어머니, 이모의 삶 이전에 한 가족으로의 그녀들의 삶은 지금 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 하고, 애달팠다. 지금의 모습으론 상상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감추고 있었다.
말하지 않은 걸까? 묻지 않았던 걸까? 우리는 한 가족임에도 함께 보내는 시간이 아닌 시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묻지 않았기에... 자랑스레 먼저 이야기할 만한 일이 아니어서 굳이 먼저 말하지 않으셨다 한다.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예전의 기억들은 단지 지나간 일이라고 하셨다. 지금의 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고, 먹여야 할 아이들이 있었다고. 그게 중요했던 거라고 하셨다.
내 나이 40대 중반이 되어서야 나의 부모님을 부모님이 아닌 한 명의 인격체로 바라보게 된 것 같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부모라는 자리에서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고, 그렇게 받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모든 호의와 사랑들이 실제로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대단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고 싶다. 보통의 가족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