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단을 내리기 전에 스스로에게 반드시 물어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나?'
적어도 회사를 다니는 동안 글 쓰는 근육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글쓰기 습관이 몸에 붙었을 때 그만두어야 합니다.
어디선가 읽었다. 현존의 대한민국에 글을 읽는 사람은 작가와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밖에 없다고.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 모른다. 미디어 속에도 글이 없다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겠지만 활자의 현재가 이렇다는 것에 대해 딱히 반박이 어렵다.
이런 현재에도 서점을 거닐어 보면 여전히 책을 고르고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면 참 멋지다 싶다. 책을 고르는 일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다르다. 옷을 고를 때는 내 마음에도 들어야겠지만 나에게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아니 나를 얼마나 잘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지가 포인트다. 그래서 옷을 고르는 내내 거울에 비추어보고, 주변의 반응도 살피곤 한다. 어쩌면 주변의 반응에 더 무게를 두어 옷을 고르기도 한다. 나를 잘 '보여주고자' 입기 때문인지 모른다.
책을 고를 때는 다르다. 책의 표지며, 내용이며, 장르며 타인의 시선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나에게 얼마나 흥미를 불러일으킬지, 내가 이 책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두고두고 잘 읽을 수 있을지, 어느 날의 출퇴근을 책임져 줄 수 있는지가 선택의 주요사항이다. 남들에 보기 위해 읽는 책은 드물다. 그래서 책을 고르는 서점에서 가만히 보면 내가 고르는 책을 거울에 비추어 보거나, 책을 읽는 내 모습에 다른 사람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고려하는 사람은 없다. 눈과 정신은 책 속의 활자에 집중해 글을 쫓아간다.
책을 읽는 행위는 지적으로 보인다. 지식에 대한 열망은 인간의 본능 중에 하나라고 생각한다. 책은 그 욕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도구다. 가방에 책을 한 권 가지고 다닌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 사람에 대한 별점이 한 개 더 상승한다. 그래서 서점에 있는 사람들은 지적인 사람들이다. 책을 읽고 고르는 숭고한 행위를 하고 있는 중이므로.
내가 본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책을 읽는 전부의 사람이라도 좋다. 이 정도의 사람이라도 책을 읽어 준다면 그래도 괜찮은 풍경인 듯싶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안다. 책을 읽는 것은 전염된다는 것을. 누군가 옆에서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무언가를 읽고 싶다는 경험을 한 번쯤은 해 보았을 것이다. 괜히 옆에 있는 잡지책을 건드려보거나, 하다못해 스마트폰으로 영상 대신 글을 찾아 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뉴스라도 읽게 된다. 선한 영향력이다.
나는 예상한다. 지금의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도 책은 살아남을 것이라고. 꼭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책은 살아남을 것이다. 그 어떤 형태로든. 십여 년 쯤 후에 나는 이 글을 다시 읽고 이불킥 하면서 창피해 할 수도 있다. 시대의 흐름을 알지 못하는 꼰대의 마인드 인지도 모른다. 예언이라기보다는 바람인지 모른다. 이런 미디어의 홍수 속에서도 꿋꿋이 책이 살아남았으면 하는, 책을 쓰고자 하는 작가 지망생의 꿈에 대한 바람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