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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29. 저는 문체가 없어 고민입니다-2.

by 성준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p 104-107 <김은경,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말로 시작하는 시가 있다. 하지만 이 말은 서른을
지나보지 못한 놈들이나 하는 말이다. 서른 이후에도 잔치는 얼마든지 있다.
아니, 서른 뒤에는 퍼레이드가 기다리고 있다.
스스로 글을 쓰다가 찾아낸다.
남의 글을 보다가 찾아낸다.
문체라는 것은 나의 성격, 나의 안목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



개구리 왕눈이가 사는 연못에는 커다란 메기가 있다.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연못을 한 바퀴 돌고는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메기에게 연못은 너무 평화롭고, 아늑하다. 괜히 투투나 개구리 왕눈이 그리고 가재 녀석들만 바쁠 뿐이다. 메기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고, 삶을 위해 바쁘게 뛰어다녀야 한다. 메기는 어슬렁거리다 고 녀석들을 잡아먹으면 된다. 메기에게 연못은 왕국이다. 그만의 왕국


그런 메기도 어느 날은 장맛비에 연못이 넘쳐 옆 강으로 휩쓸려 떠내려갔다. 메기는 연못보다는 넓은 강에 도착했다. 그 강에는 메기보다 더 큰 메기도 있고, 쏘가리도, 가물치도 있었다. 연못 메기는 멋도 모르고 덤벼들다가 그날 날로 먹힐 뻔했다. 후로 메기는 어깨에 힘을 빼고 그늘 속으로 숨어 헤엄치기 시작했다.


연못에 비해 먹을 것은 많았지만, 넓기도 넓어 힘껏 헤엄쳐 움직여야 했고, 시시 탐탐 나를 노리는 포식자들의 눈과 코를 피해 진흙 속으로 숨어들어야 했다. 메기는 배부른 날보다 굶는 날이 많았고, 기름졌던 뱃살은 복근이 잡힐 정도로 말라있었다. 메기는 삶이 힘들어졌다.


연못은 힘든 일이 없었다. 조금만 헤엄치면 한 바퀴 연못을 다 돌았고, 그 사이사이 개구리며, 두꺼비며 가재도 맘껏 잡아먹을 수 있었다. 메기를 잡아먹을 수 있는 생물은 없었다. 메기는 심심한 것만 빼면 지상낙원이었다. 뭘 해도 재미가 있지는 않은 풍족한 삶이었다.


그런 메기가 지금은 배를 곪고, 진흙에 코를 처박고, 뭐 빠지게 헤엄을 쳐 식사를 마련한다. 심심할 틈도 없다. 그래봐야 만족스러운 식사도 아니다. 메기는 연못으로 돌아가고 싶다. 아니 그러나 다시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무료함에 빠져있던 메기가 강에 도착한 지 삼 일째. 낯선 곳에서 진흙 속에서 눈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주려 오는 배를 견디다 못해 늦은 밤 슬그머니 나왔다. 평소라면 이렇게 배고플 일이 없었다. 메기는 몇 번의 실패 끝에 작은 갈겨니 한 마리를 입에 물었다. 동이 틀 무렵이었다.


삼일을 굶을 후 입에 넣은 작은 갈겨니 한 마리에 메기는 눈물이 찔끔 났다. 왜 이리 맛있는지, 뭐가 이리 맛있는지 몰랐다. 오래간만에 배가 부르니 세상이 멋져 보였다. 강도 예뻐 보이고, 떠오르는 태양에도 뭉클 감정이 솟아올랐다.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메기에게 오늘의 감정은 특별한 순간이 되었다.


나는 메기다.

지금도 강가에 던져진 메기다.

조금 더 큰 세상 속에서 성공이라는 맛을 느끼기 위해 발버둥 치는 메기다.

이제는 옛날의 연못에서 살 수가 없다.

나는 조금 더 큰 세상을 알아버렸다.

여기서는 나도 감정을 느낀다.

좌절할지언정 심심하지는 않다.

나는 이곳에서 성공할 것이다.

나는 이 강을 지배할 메기다.



안녕하세요 성준입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화요일 : 동생은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목요일 : 짐은 민박집에 두고 가세요

비정기매거진 : 관찰하는 힘 일상을 소요하다

연재 중입니다.


브런치북 <Daddy at home>, <시대극의 주인공이 되어버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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