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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May 31. 2024

이별은 익숙해지지가 않아. 여전히

꽤나 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경험했지요. 평생을 함께 할 것만 같았던 유년 시절의 동무들도 어느 순간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었고, 첫사랑의 아련함도 이제는 웃으며 꺼내 놓는 안주거리가 되었습니다. 호기 있게 전역날을 약속하던 군 동기들도, 첫 직장에서 동고동락을 함께 했던 동료들도 어느 사이에 한 때의 기억과 추억 속으로 잊혀져 갔었죠. 그래요 성현들의 말처럼 만남은 헤어짐이 되고, 떠난 것은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고 했지요. 지금쯤이면 인간사의 선명한 이별쯤은 그래도 잘 견딜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네. 지금이 되니 조금 무뎌지기는 했어요. 어느 순간 연락이 멈춰버린 전화기에는 아쉬움이나, 원망이 남아 있지 않아요. 연락이 뜸한 친구들은 제 한몫을 하느라 바쁘다고 여기며, 무소식을 희소식이라 생각합니다. 때때로 나를 서운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들도 예전만큼 아프거나, 억울하지도 않아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거죠. 때로는 나를 돌아보며 다른 사람에게 저러지 말아야지 거울 삼기도 합니다. 조금은 어른이 된 것도 맞겠지요. 


연락이 뜸해진 친구들과 지인들도 때가 되면 다시 만나 수다를 나누고, 소주 한잔을 할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부디 그 자리가 좋은 자리였으면 하는 바람이지요. 만날 사람은 만날 것이고, 떠나간 사람의 자리에는 남아있는 온기로 추억하곤 합니다. 다들 그렇게 살고 계시겠지요. 


그런데요. 이제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경험한 이별이라고 해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때가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네요. 이제 10년이 되었네요. 10년 전 어느 날에 동생을 잃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모든 것이 선명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청춘의 시작점에서 동생은 세상을 등졌습니다. 십 년 전 어느 날 동생의 이름은 주인을 잃었습니다. 이제 누구도 그 이름을 쉬이 불러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십 년이란 세월은 상처의 아픔을 덮어주었습니다. 언제까지 손만 데어도 살점이 썰려 나갈 것 같이 날카롭게 벼려져 있던 칼날도 십 년의 세월 동안 제 살을 많이도 깎아내어서인지, 빗방울처럼 많은 눈물을 맞아서인지 무뎌지고, 녹이 슬었나 봅니다. 이제는 그 칼날을 조금은 손에 쥘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준이란 이름은 잃어버린 이름입니다. 십 년 전 주인을 잃어버린 이름이었습니다. 모두가 알지만 소리 내어 부르지 못하고 가슴으로 부르던 이름입니다. 이름을 부르면 날카로운 칼날이 곤두서 상처를 내고, 눈물을 쏟았던 이름입니다.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시퍼렇고 처절한 날이 서있는 이름일런지도 모릅니다. 부르지 않으면, 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좀 덜했거든요. 아픔도, 슬픔도 가슴으로만 아파할 수 있었어요. 이상하게도 소리로 부르면 다시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귀를 뚫고 들어와 심장으로 파고들었으니까요.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 이름을. 


그런 이름을 십 년 만에 다시 꺼내었습니다. 겨우 달래 놓고, 무뎌지게 만든 칼날을 다시 잡은 셈이지요. 아프지 않냐구요. 아파요. 여전히도. 그런데요 너무 불러주지 않으니 잊혀지는 거예요. 동생이었던, 가족이었던 이의 기억이 흐려지는 거예요. 아픔이 무뎌지면 더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기억하지 않으니 아픔이 무뎌지는 거였네요. 다시 불러주기로 했어요. 불러주는 사람이 없는 이름에 주인을 찾아주기로 생각했습니다. 잊혀진 이름에 생명을 주고자 필명으로 정했습니다. 


작가님들이 댓글로 저를 불러주실 때, 저는 동생과 함께 있어요. 글을 좀 더 열심히 쓰는 이유가 곳곳에서 보이는 그 이름이 반가워서 그래요. 나만 알고, 나만 반가웠던 이름이. 그래서 혼자만 불렀던 이름을 다른 분들이 찾아주시는 게 그리웠어요. 나보다 더 환한 웃음을 짓고, 더 많은 친구들을 만났던, 그래서 너무 흔하게 불리고 들려오던 그 이름이, 다시 들리는 게 좋았어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고, 세월의 흔적을 몸에 새기며 살고 있지만, 그 이름은 여전히 찬란했던 그 순간만을 기억하게 해주고 있네요. 때때로 만나는 그 얼굴은 여전히 젊고, 생기 있는 얼굴이에요. 가끔은 상상도 하지요. 어느 날엔 저는 동생과 꽤나 많은 나이차이가 되겠지요. 낯선이 에게는 형제를 보낸 얼굴이 아닌, 자식을 보낸 얼굴로 보일지도 몰라요. 저는 세월과 함께 하고, 동생은 여전히 그 시간에 영원히 살 테니까요. 


괜찮아요. 그 순간이 와도 그 이름은 여전히 제 동생이고, 저는 그 이름으로 많은 이야기들을 할 테니까요. 그가 미처 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제가 대신 전할 거예요. 나의 이야기지만, 어쩌면 동생도 하고 싶었던 말일지 모르잖아요? 동생이 마흔이 되었다면, 저처럼 이렇게 늙어가는 아쉬움을 쏟아 낼지도 모르니까요. 


많은 이별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이별이 익숙하지는 않아요. 아니 익숙해지지가 않아요. 여전히도 아프고, 여전히도 그립네요. 그래도 조금 더 삶을 살아보았다고 조금은 더 기특한 생각을 하기도 해요. 이별은 잊는 것도 아니고, 극복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저 함께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그 이름과 함께 살기로 했어요. 그 이름을 빌려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거에요. 미처 못다한 말들,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할거에요. 그리고 언젠가 술잔을 함께 할 날이 되면, 네 이름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고마웠다 말 할거에요. 


그 녀석 잘 들어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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