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의 신부는 예뻤다. 나이만큼이나 초록초록한 계절에 예쁜 신부가 되었다. 비가 와 걱정했던 날씨는 예식시간에 맞춰 맑게 개었다. 위풍당당입장하는 신랑의 입가는 한껏 올라가 있었다.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는 혼주의 모습은 반가움과 함께 약간의 초조함도 있었다. 멀리서 오는 일가친척들의 손을 잡고 안부를 물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친인척들은 이걸 기회 삼아 그간의 안부를 전하고,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삶이 녹록지 않아 평소 자주 얼굴을 마주하지 못함에 안타까워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늘어가는 흰머리와 주름을 두고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세상 행복한 신랑 입장을 마치고, 드디어 신부가 들어섰다. 새하얀 드레스는 평소의 소녀가 아닌 새로운 첫발을 내딛는 드레스보다 고운 신부가 되었다. 이 길을 걸으면, 소녀는 이제 새로운 가정을 꾸린다.
한 걸음
한 걸음
첫 발에 아이가 태어난 그날이 떠오른다.
다음 걸음에는 첫 옹알이를 하고, 첫걸음마를 떼고 주저앉아 환하게 웃던 순간이 함께한다.
한 발 더 내딛은 걸음에는 처음으로 부모와 싸우고 토라져 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겨우 한 걸음 한걸음에. 딸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첫 교복을 입고, 어색하게 포즈를 취하던 소녀가, 꿈을 찾아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어느새 어른이 되어 사회에 섰다. 이제는 제법 부모 걱정도 하고, 내가 하는 걱정도 종종 함께 하는 걸 보면 이제 우리 딸도 다 컸다. 언제고 내 품 안에서 투정 부리고, 애교 부리며, 강아지마냥, 고양이마냥 부모의 그늘에서 쉴 것만 같았던 아이가. 어느새 신부가 되었다. 이제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가정을 꾸리고자 이 길을 걷는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뻣뻣해져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처음 걷는 이 길이 어색해 자꾸 얼굴이 못 생겨진다. 사진은 잘 나와야 할 텐데. 환하게 웃음 짓는 멋진 아빠로 기억되어야 할 텐데. 아이는 어떨까? 슬쩍 돌아본 얼굴에 울컥 감정이 솟는다.
예쁜 복숭아마냥 빠알갛게 홍조를 띤 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기도 하고, 촉촉이 젖어오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아쉬운데. 딸은 이 길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이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기만 한데. 아이는 나비처럼 사뿐히도 잘만 걷는다. 너의 이 길 끝에 어떤 행복이 있을지 모르겠다.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도 아빠는 모르겠다. 그저 맑게 빛나는 신부의 모습에 아름다우면서 아빠는 슬프다.
조금만 더 내 그늘 아래서 쉬다 가도 될 텐데. 아직도 아빠는 너에게 해줄 것이 많은데. 저 앞에 능글맞은 웃음으로 나를 기다리는 사위 놈이 갑자기 밉구나. 처음 인사올 때 든든해 보이던 어깨를 한 대 콱 쥐어박어주고도 싶구나. 그래도 저 어깨에 기대어 울겠지. 기뻐도 저 어깨를 맞잡고 행복해하겠지. 너도 곧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 저 어깨로 가정을 지탱하며 살아가겠지. 너도 힘들겠구나. 가정의 비밀을 미리 말해줄 필요는 없으니 힘들면 그때마다 찾아오려구나. 잠시나마 내 어깨를 빌려주마.
이제 몇 걸음이면, 나의 딸은 자네의 신부가 되고, 자네는 내 아들이 되는 거야. 우리는 가족이 되고, 누구보다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거야. 세상 마지막까지 너희들을 믿는 그럼 존재가 될 거야.
기어코 자네는 나의 소녀를 맞으러 왔구나. 오지 않을 것 같은 오늘이 기어코 왔구나. 보내주지 말까 하는 찰나의 상상은 어느새 나는 자네에게 내 딸의 손을 쥐어 주고 있구나.
돌아보니, 아내가 다 안다는 표정으로 나와 눈빛을 나누고 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 자네도 화촉에 불을 밝힐 때 감추지 못했던 아쉬움과 불안함, 걱정스러운 눈빛, 나도 보았어. 그래도 우리 딸 행복할 거야. 저렇게 예쁘고 착한 딸을 누가 힘들게 하겠어. 만약 그러면 다시 데려올 거야. 저 녀석에게 내 주먹맛도 보여주지. 걱정 마 우리 딸은 행복할 거야'
나의 딸아.
행복하렴, 오늘처럼 싱그럽고, 아름답게 나머지 날들을 살아가렴.
네가 우리 딸이라 엄마 아빠는 행복하단다.
사촌형은 일찍 장가를 가고, 조카도 일찍 가정을 꾸렸다. 형은 이제 50대 초반에 장인어른이 되었다. 우리는 우리 사촌 형제들은 첫 조카사위를 맞으며 농담 삼아 말했다.
"요즘은 장인어른 소리를 들어야 어른이 되는 거야"라고
아이가 자란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의 품을 떠날 것이다. 나에게서 멀어지려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만의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내가 그러했듯, 나의 아이도 언젠가는 자신의 세상을 만들고, 키워 나갈 것이다.
그때가 언제 일지라도 나는 아쉬울 것이다.
다 해주지 못함에, 더 해주지 못함에, 잘해줄 수 있다는 아쉬움에 나는 슬퍼할지 모른다.
나는 그 모습이 떠올라 버진로드를 걷는 사촌 형과, 조카의 모습에 울컥했다. 그리고 나중에 사촌 형에게 슬펐노라 말했다. 그리고 그날 밤 사촌 형은 내게 말했다.
"대신 슬퍼해 줘서 고맙다고."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아쉽기도 한 그런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