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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19. 2024

세상 안 팔리는 드라마.

글을 쓴다. 소설을 쓰기도 하고, 에세이를 쓰기도 한다. 호흡이 짧은 에세이는 그럭저럭 써 나가는데 호흡이 긴 소설은 좀 힘들다. 한참을 쓰다가 읽어보면 좀... 재미가 없다. 소소하고 일상적이지만 힐링이 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오히려 이런 류의 이야기들이 쓰기가 어렵다. 그 결을 찾기가 쉽지가 않다. 진폭이 크지 않은 사건들 속에서 그만큼 울림을 주는 포인트를 넣고, 쓰는 것이 어렵다. 일부러 고난을 좀 넣어야 하나 고민도 하곤 한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는 잘 되고, 잘 팔리는 글들을 읽어보곤 한다. 소위 벤치마킹이며,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워 보려는 노력이다. 일단 재미난 이야기들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들이 있다. 주인공의 매력도 당연하겠지만, 인기 있는 이야기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빌런과 고난이다. 주인공에 사사건건 반대하거나 일부러 괴롭히는 존재가 있고, 우리의 주인공은 어찌어찌 그 과정들을 헤쳐나가는 것이 포인트다. 우리는 고난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고, 안도하기도 하며, 비로소 찾아오는 행복에 같이 기뻐하기도 한다. 


소소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소소한 이야기라고 해도 역경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는 아주 소소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재미를 주는 경우가 많다. 오늘 점심 메뉴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분리수거의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매일 하굣길에 벨튀를 하고 도망하는 개구쟁이를 어떻게 타이를지에 대해서 소소한 고민을 하고 해결하는 여정에서 얻는 재미가 있다. 스펙터클한 모험이건, 소소한 일상이건 우리는 결국 무언가 마주하고, 힘들어하면서 해결하는 과정으로 성장하고, 그 안에서 재미와 감동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재미난 이야기도 그러하고, 재미난 삶도 그러할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 가장 도덕적인 선행은.
그들을 존재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무슨 헛소리인가 싶은 이 말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을 다룬 다큐에 달린 댓글이다. 아이 셋을 키우는 부모로서 순간 화도 나고, 어떻게 이런 생각들을 하까 싶었다. 정말 개인의 생각에서 나온 말인지 궁금하기까지 해 출처를 검색해도 보았다. <베이비드 베나타>라는 철학자의 '출생은 해롭다'에서 나온 말로 이 철학자는 소위 '반출생주의'를 주장하는 사람이다. 반출생주의라. 궁금증이 더해져 깊이 검색해 보니 이제는 이를 추종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갤러리까지 등장하여 '발출생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는 걸 알았다. 


어떤 삶을 원하고 있는 것일까? 

반출생주의에 의거해서 고통을 겪게 할 필요 없으니 낳지 말자는 것이다. 낳느라 힘들고, 키우느라 힘들다는 것이겠다. 출산과 육아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니, 고통이 아니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노력과 시간과 정성이 충분히 수반되어야 하는 일이며, 결코 쉬운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 일이다.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이런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것이 비혼, 비출산주의자들의 생각인 걸까? 개개인의 선택에 대해서 판단하고 싶지 않다. 비혼과 비출산. 스스로 칭하는 다른 어떤 단어들이 있더라도 그것은 개인의 선택이라 존중한다. 결혼을 장려하지도 않으며, 출산의 강요하고 싶지도 않다. 


모든 것들은 정상이다. 결혼을 하는 것도, 하지 않는 것도 정상이며, 출산을 하는 것도, 혹은 하지 않는 것도 정상이다. 그러나 결혼을 하지 않는다고 혹은 출산을 하지 않는다고, 또는 결혼을 한다고, 출산을 한다고 상대방의 선택에 대해서 잘못된 일이라 폄훼하는 것은 비정상이다. 


비출산주의자들, 비혼주의자들의 선택에 대해서 반박하지 않는다. 그들의 가치관이라 받아들일 수 있다. 그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는 말아야 한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의 영역은, 정답이 있는 토론은 없다. 



재미난 이야기에는 빌런과 사건이 빠지지 않는다. 주인공이 어떻게 그것을 헤쳐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다. 나의 인생에 나는 출산과 육아의 빌런을 데려다 놓았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이는 빌런이지만, 꽤 강력한 편이다. 꽤 오랜 시간을 상대하고서야, 이 빌런의 약점을 파악했고, 10여 년이 흘러서야 조금씩 빌런을 상대하는데 익숙해진 편이다. 히어로로서 이 빌런을 상대하는데 꽤 많은 힘과 노력을 쏟아부은 것은 사실이다. 어쩌면 이 빌런이 없었다면, 인생은 좀 더 수월하게 흘러갔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인생은 조금 덜 흥미진진했을 수도 있다. 나는 이 빌런을 상대하느라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했고, 더 열심히 삶을 살아야 했으며, 다 많은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기도 했다. 빌런과 한 바탕 사건을 경험하고 해결한 직후의 성취감은 또 다른 행복으로 다가왔다. 매일 해변가에 누워 석양과 칵테일을 즐기는 삶도 행복하겠지만, 바닥끝까지 에너지를 뱉어내어 겨우 문제를 해결한 후 자리한 해변가의 석양과 칵테일은 아마 그 달콤함과 위로와 해방감의 농도가 다르다. 


쉬운 삶을 사는 것도 좋다. 굴곡이 없고, 문제가 없으며, 소소한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것도 인생이다. 적절히 위험을 피해 가고, 예측가능한 삶을 살아가는 것도 인생을 잘 살아가는 방법이다. 지금의 삶은 그런 삶조차도 쉽지 않을 수도 있다. 


출산과 육아의 삶이 내 삶에 일부러 고난을 심어두려 하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를 괴롭히는 삶을 사는 것도 아니다. 더 큰 기쁨을 얻고자 하는 고행도 아니며, 더 큰 보상을 바라기 위한 투자도 아니다. 비논리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렇게 살아왔었다.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육아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결혼과 비출산의 새로운 선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선택의 옮고 그름은 타인이 쉽게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학적으로 저출산이 사회 붕괴를 가속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지만, 이 것 역시 개인에게 출산을 강요할 수 있는 논리는 되지 못한다. 


각자의 선택은 각자에게 책임이 따라온다. 출산, 양육을 선택한 자들이 겪을 수 있는 고통과 고난이 있기 마련이고,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한 이들이 겪을 수 있는 고난과 고통이 있기 마련이다.  각자의 몫이며, 각자의 선택이다. 


나는 모두의 선택을 존중하는 편이지만, 상대에게 선택을 강요한다면, 나아가 상대의  선택에 대해 비판하거나 비난을 한다면 이는 존중해 줄 수 없다. 


"그대들의 말대로 나는 키우며 온갖 고통과 고난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원하지 않고 태어난 우리 아이들도 힘든 날들을 보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명절이 되거나, 생일이 되면 모여 식사를 함께 하고, 삶을 공유하고, 휴가를 같이 보내기도 할 것이다. 때때로 힘든 일이 닥치거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서로에게 올 때면, 누구보다 두 팔을 걷고 위로하며, 어떻게든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것이다. 나의 기쁜 일을 아무 사심 없이 좋아해 주고, 나의 어렵고 슬픈 일을 가슴속 깊이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될 것이다. 당신의 말대로 굴곡이 많은 삶이 될 것이지만, 그 중간중간 만나는 위로와 휴식을 우리 가족은 함께 할 것이다. 


당신의 삶은 우리의 삶보다 평안하고 평탄하게 흘러가겠지만, 그 사실이 당신의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한 대가로 모든 위험과 불행에서 당신을 구원받을 수 있는 티켓을 얻은 것은 아니다. 당신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고, 그 삶은 어떤 형태로든 극복해야 할 장애를 때때로 던져 준다. 당신의 선택으로 당신이 피하고자 하는 불행을 피했기를 바라며, 당신의 삶이 평안하기를 바란다. 내가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듯, 당신도 나의 선택을 존중해 주기를 바란다." 


난 내 인생이 조금 더 익사이팅하도록
약간의 빌런을 받아들인 것뿐이다.
그저 나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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