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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4. 2024

7초의 멈춤과 성장

심호흡을 할 수 있는 시간. 단어를 하나 외울 수 있고, 스쿼트를 한 번 할 수 있는 시간. 빨리 읽으면 잡지 한 페이지를 읽을 수 있는 시간, 초콜릿 한 조각을 삼킬 수 있는 시간. 물을 한 컵 마실 수 있는 시간 7초. 그 짧은 7초의 시간은 매일 우리 곁을 스쳐지나간다. 매일 스쳐 지나갔던 그 짧은 7초의 시간이 어느 날 나에게는 영겁과 같은 시간이 되었다.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똑딱!


다시 움직이는 손가락.. 그리고 짧은 탄식들


아이는 유독 자신 없어했었다. 미술은 좋아했지만, 음악은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은 피아노였지만 언니가 상을 받은 콩쿨은 나가고 싶어 했다. 좋아하지 않지만 지기는 싫어했다. 콩쿨 연습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같이 콩쿨 준비를 하던 친구들이 콩쿨을 나가고 마치는 동안 아이는 몇 개월을 더 연습을 해야 했다. 때로는 한 껏 울상이 된 얼굴로 학원을 나오곤 했다. 매서운 원장님의 가르침은 때때로 아이들이 버거워하기도 했다. 큰 아이도 콩쿨 준비를 할 때면 몇 번을 울먹이며 학원을 나오곤 했다. 그렇게 매서운 선생님인데 중학생이 된 큰 아이는 종종 피아노 학원에 놀러 간다. 원장님께 자신의 학교 생활을 수다 떨기 위해서. 


둘째는 또래보다 손가락이 늦었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가 큰 탓에 손가락의 길이는 충분히도 길었지만, 손이 피아노 건반 위에서 잘 뛰어놀지를 못했다. 건반 턱에 걸리고, 스탭이 꼬이고, 페달을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게다가 둘째는 성격이 아주 여리다. 더 어린 시절에는 치과 진료를 받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아 치과에서 손을 들었다. 치료도 받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심지어 그곳은 어린이 전문 치과라는 타이틀을 단 곳이었지만, 둘째를 달래어 치료할 수 없었다. 둘째는 고집도 세다. 엄마 아빠에게 혼이 날 때면 잘못했다는 소리를 할 법도 한데 특기는 입을 꾹 다물고 눈물만 그렁그렁 흘리고 있다. 아무리 달래고 혼내어도 그 고집을 꺾기가 쉽지 않은 아이다.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면서도 샘도 많고, 정도 많고, 고집도 센 아이라 항상을 조심스러웠다. 밖에 나가 모진 말을 하고 다니지는 않을지. 반대로 아이들의 유치한 장난과 놀림에 상처받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어린 시절 치과 치료 거부는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트라우마로 남아 항상 아이를 걱정하게 만들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생각한 상황에서는 모든 것을 멈춰버리고 거북이 등껍질 속으로 쏘옥 들어가는 아이라 조금 더 강한 성정으로 자라기를 바라곤 했다. 


그런 아이가 콩쿨 중에 손가락이 멈췄다. 잘 시작된 초반부를 지나 중반에 다다랐을 때 음이 하나 삐끗하더니 연달이 두 음을 더 놓쳤다. 그리고는 손가락이 멈추었다. 


아...


아이의 모습을 찍어주던 핸드폰 속에서도 내 탄식이 들어갔을 거다. 아이의 손이 멈춘 그 순간에 나의 숨도 멈추었다. 내가 지금껏 보아오던 아이는 이런 상황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아이였다. 그렇게 되면 심사위원들이 종을 칠 것이고, 아이는 쓸쓸히 퇴장을 해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 콩쿨은 큰 상처로 기억될 것이다. 그 모든 상상의 변수들이 머릿속을 스쳐가고, 나는 어떻게 아이의 상처를 달래주어야 할지. 반창고를 준비하려 했다. 


"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그래도 평소보다도 잘했는걸? 다음에 한 번 더 해볼까? "

이렇게 하면 되려나..

" 지우는 미술을 훨씬 더 잘하니까. 됐어 됐어 잊어버려. 아빠가 지우 가지고 싶었던 패드 사줄게..."

이렇게 하면 될까? 


7초. 정확히 7초간 아이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마도 1-2초만 더 늦었다면 심사위원들은 종을 울렸으리라. 딱 7초가 지나고 아이의 손이 다시 움직였다. 그리고는 제자리를 찾은 듯 다시 매끄럽게 건반 위를 노닐기 시작했다. 


한 번 넘어진 상태라 그런지 오히려 후반부는 매끄러웠다. 어차피 넘어진 것 미련 없이 쳐보려는 듯 강하고 빠르게 건반을 눌렀다. 그리고 마지막 피니쉬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박력 있는 음으로 마무리했다. 


콩쿨을 마친 아이는 난리가 났다. 

울거나 소리치거나 슬퍼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그 순간에 얼마나 놀랬는지, 그 순간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그러면서 기억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스스로 재잘재잘 거리며 쏟아내기 시작했다. 아이의 볼을 빨갛게 상기되었다. 


콩쿨을 망쳐서인지, 아니면 다시 이어나갔다는 생각에서 인지 아이는 상기되고 흥분된 얼굴로 이야기를 했다. 아쉽기도 했고, 놀라기도 했고, 다시 시작하려 했던 과정을 흥분해서 엄마 아빠에게 쏟아내었다. 



아이가 멈춰있던 7초 그리고 손이 다시 움직이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7초 만에 아이는 많이 성장했다. 실수하고 창피해해 피할 수 있었던 순간을 아이는 멋지게 극복하고, 연주를 이어나갔다는 사실에 나는 감동했다. 내 아이라서가 아니라, 쓰러진 순간을 포기하지 않고 일어서는 인간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감동했다. 


어쩌면 아이는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많이 자라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미 아이에게는 그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저 어린아이라고만 생각했던 아이는 어느새 이만큼이나 자라 있었다. 


내가 아이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그 7초의 시간은 

아이는 어떻게 하면 극복할 수 있을지 길을 찾던 7초의 시간이었다. 


나만 몰랐다. 아이는 이미 이만큼이나 커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나만 아이로 생각하고 있었다. 잘 자라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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