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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0. 2024

돈이 많으면 모두가 아이 셋을 낳을까?

"휴거"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80년 전후 세대는 92년도 하늘로 올라간다는 그 휴거로 기억나겠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다른 말이다. "휴먼시아(임대아파트) 사는 거지"라는 휴거란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도 충격이었다. 사는 곳으로 아이들이 스스로 계급을 나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단독주택의 동네에 살았던 나는 그저 골목에서 또래들과 몰려 놀기에 좋았던 기억만 있었다. 어느 집에 넓고 좋은 집인지, 몇 평인지, 얼마 인지는 누구도 궁금해 하거나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다. 오히려 관심이라면 어느 집에 간식거리가 좀 풍족한가에 대한 호기심 정도 였다.


그러다 오늘은 "개근거지"란 말을 들었다. "한 번도 놀러 가지 않고, 학교를 꼬박꼬박 나오는 아이들" 이란다. 가정학습이 요원해지면서 가정학습으로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들을 많이들 가는데 그런 걸 가지 않아 개근을 하게 된 거지라는 의미다. 처음 들었을 때 외래언가? 싶었다. 이런 신조어를 매번 만들어 내는 센스는 칭찬하겠다만, 그 대상과 내용은 빵점이다. 초중고 결석 조퇴 없이 꾸준히 다니는 것이 우리때는 자랑이었다. 개근상은 자신의 끈기와 성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증표였으며, 아파도 일단 학교에 가서 아팠던 세대다. 내용이야 어찌되었던 "개근"이라는 증표는 우리에게 하나의 자랑이었다. 오늘 날처럼 남을 조롱하는 데 사용되던 단어가 아니었다. 불과 몇 십년 만에 변해버린 세상이 조금 더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돌잔치에서 아이가 걷는지부터 시작해서 학교와 직장까지 계속 비교해야 하는데, 그 무한경쟁에 부모로서 참전할 자신이 없다.]
[아이의 입시 전쟁에 참전할 자신이 없다. 아이 성적이 곧 부모 성적표다. 지금은 학력 수준이 높아진 부모들 경쟁심이 더 심해진 것 같다.] 기사링크


말 다했다. 반박할 논리가 없다. 우리는 지금 이런 경쟁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다. 사실이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점점 좁아지고 높아지고 있다보니 그만큼 경쟁에 대해 더 치열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과거의 경쟁은 개개인의 능력에 중점을 두어 열심히 노력하면 계층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조금 달라진 듯 하다. 경쟁의 결과가 개개인의 노력에 그치지 않고, 인풋에 비래하여 아웃풋이 도출된다는 인식이 대세가 되었다. 아이들의 교육은 이제 스스로 익히고 배우는 것을 떠나 얼마나 아이에게 투자를 할 수 있는지가 전제 조건이 되었다. 좋은 대학을 가고, 학벌을 얻기 위해서는 적절한 투자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상이다. 


그런 중에 다둥이? 한 명을 키워도 제대로 키우려면 수 억 원의 돈이 필요하다는데? 다둥이? 금수저 아냐? 먹고살만하니까 낳았겠지. 아니면 애들은 생각 안 하거나. 이런 의문 모두 맞다. 다둥이를 키우는데 제일 문제는 금전적인 것이다. 육아의 고됨 마저도 돈이면 해결된다. 쉽게 말하면 돌봐주는 이모님, 입주 가정부를 쓰면 된다. 그렇게 따지면 돈 문제 아닌 곳이 있을까?


다둥이가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집도 방이 하나라도 더 있어야 하고, 쌀을 사도 남들보다 한 공기는 더 먹는다. 옷은 성별 따로 나이 따로 취향 따로 구매해야 하며, 그렇게 산 옷들은 매일 같이 세탁하고 관리하니 그것 또한 비용이다. 차량도 5인가족이면 세단으론 비좁게 된다. 그뿐만이랴. 의료비, 통신비, 취미생활 비용 그중에서 쉽게 양보 못하는 교육비까지 하면 외동이 비해 다둥이를 양육하는데 드는 비용은 몇 배 들어간다. 


부모가 아이들을 위해 줄일 수 있는 비용은 현재를 위한 비용이다. 지금 과자를 안 먹기, 지금 입을 옷을 덜 사기. 지금 살 수 있는 집을 줄이기. 지금 타야 할 택시를 안 타기 등 현재를 위한 비용은 아끼는 게 가능하지만 아이의 미래를 위한 비용은 아끼기가 힘들다. 아이의 미래를 위한 학원, 아이의 감수성을 위한 문화 관람, 아이의 재능 개발을 위한 여행 등 미래를 위한다는 타이틀이 붙을 수 있는 것들은 지출을 줄이기 어렵다. 차후 아이들의 경쟁에 조금이라도 누가 되는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다. 


아쉽게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둥이로서 굉장히 불리하다. 인간이 가진 자원은 한계가 있고, 이를 적절히 분배하는 수밖에 없는데. 남들보다 세 배 이상의 자원이 있지 않다면 외동보다 각자에게 돌아가는 자원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다둥이로서 자원의 활용에 대해 좀 더 효율적인 방법을 찾거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법을 찾을 수밖에 없다. 동시에 다둥이의 부모로서 외동과는 다른 교육적인 철학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정답은 없다. 외동으로 모든 자원을 투자받으면서 사교육을 받아도 경쟁에서 도태되는 경우도 흔하고, 다둥이 환경에서도 명문대를 진학하는 경우도 많다. 각자의 역량에 따라 그 효과는 너무 다르다. 단지 부모로서 남들만큼 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지지 않기 위한 노력인지도 모른다. 


다행이라면 아이들의 성장은 1+1=2의 공식이 잘 들어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많은 부분 아이들의 공부 습관에 따라 아이들의 성장이 달라진다. 소위 스스로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할 수 있는 습관이 중요하다면, 이는 큰 자원 없이 아이들에게 모두 학습 가능해 부족한 간극을 메우고 있는 셈인지 모른다. 




다둥이의 단점이 금전적인 문제가 거의 대부분이라면, 단순하면서도 치명적인지도 모른다. 부동산으로 사회적 지위가 갈리는 사회, 타고 다니는 차, 입는 옷과 가방 등에 시선을 빼앗기는 사회 대한민국은 수십 년 사이로 충분히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시 여기는 사회로 변해왔다. 이제는 개개인의 인성보다 가지고 있는 자산의 수준으로 사람들을 달리 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타깝지만 냉정한 현실이다. 다둥이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의 출산을 어려워하는 이유로도 너무 고개를 끄덕일만한 이유라 쉬이 태어나지 않는 아이들이 이해가 된다. 


다둥이가 주는 행복은 분명하다. 가족이 나에게 어떤 울타리가 되고 있는지 둘러보면 느낄 수 있는 모든 소중한 감정들을 다둥이는 그 제곱으로 줄 수 도 있다. 동시에 다둥이를 키우는데 드는 어려움은 또 분명한 어려움처럼 다가오는 것도 맞다. 아이는 그냥 크지 않고, 우리도 그냥 키우고 싶어 하지 않는다. 잘. 최고로 키우고 싶어 한다. 서로 부딪히는 부분이 많기도 하고, 쉽게 조율될 수 있는 부분도 아니다. 


결국 가족의 문제는 가족 안에서 선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외동을 선택한 부부들에게 다둥이의 장점은 알지만 포기한 부분일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다둥이가 겪을 수 있는 육아의 어려움과 금전적인 부담 역시 다둥이 가족의 선택인 것이다. 부부들이 추구하는 행복의 방향이 다를 수 있다. 나는 다둥이가 주는 행복을 선택했고, 다른 부분을 감수 하기로 한 것이다. 각자의 정답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돈이 중요한 요소는 분명하다. 허나 그 외에도 아이를 키우는 데는 다른 요소들이 분명히 있다. 모든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이 셋을 낳지 않는 이유는 돈으로만 아이들을 키울 수는 없기 때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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