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준 Jun 20. 2024

육아만큼 인생도 중요하다

아이가 셋 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아내다. 아내가 아이들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제적인 여유가 있고, 체력이 충분하더라도 아이를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 않다면 다둥이는 어렵다. 사명감보다 금전적인 여유보다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런 이유라면 아내는 내가 아는 사람들 중 가장 아이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내 아이도 사랑하지만, 일단 어린 영유아를 예뻐한다. 외출 시 만나는 갓난쟁이 아이들을 보면 예뻐 어쩔 줄 몰라한다. 지금은 아무리 예뻐도 함부로 만지거나 안거나 해서는 안되기에 눈으로만 예쁨을 즐긴다. 그리고는 농담을 섞어 날리는 "어때? 넷째?" 멘트에 나는 화들짝 놀라곤 한다. 


"Oh~ No~~"


이제 큰아이는 중학교 1학년. 막 사춘기의 시기에 뛰어들었다. 이성과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고, 가족과의 시간만큼 친구와의 관계가 중요해진 시기다. 이제 부모와 사사건건 다툼이 벌어지곤 한다. 벌써 이번 주에만 몇 번의 언쟁이 오간다. 


"주말은 안돼!"

"아 왜? 다른 애들은 다 되는데~ 왜 난 안되는데?"

"그럼 엄마가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게"

"아니~ 그냥 버스 타고 간다고 영화 보러 가는 게 왜~"

"너 벌써 몇 번째 엄마한테 거짓말한 거 들켰잖아. 넌 엄마한테 신뢰가 떨어졌어"

"아... 진짜 그냥 보내주면 안 돼?"


한바탕 하고 나면 아내는 내게 푸념을 한다. 누굴 닮아 저러냐며, 왜 이리 이기적인지 모르겠다고 속상하다고 내게 한참을 털어놓는다. 그리고는 이제 6살 된 막내를 안으러 간다. 6살 막내에게는 엄마가 세상의 전부다. 누구 보다 엄마가 예쁘고 엄마의 말이 곧 세상의 법이다. 아이는 엄마의 두 뺨을 잡고서는 아주 찌인하게 뽀뽀를 날린다. 그리고 목을 꽈악 끌어 안고는 어깨에 얼굴을 기댄다. 보고만 있어도 사랑스러운 장면이다. 아내는 그렇게 막내에게서 위로받는다. 


"아~ 나 지금 힐링됐어. 우리 막내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당신 막내도 크면 첫째처럼 될 거야. 아니 남자애니까 말도 없이 그냥 방으로 콕 처박히겠지"

"아 그런 소리 하지 마 그럼 난 어떻게 살라고"

"주변 이야기 잘 들어봐 다들 그렇게 살아. 사춘기 애들 커가는 게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고"

"그래도 난 어릴 때 쟤처럼 안 그랬어"

"애들도 하나하나 인격이야. 자기들도 다 생각이 있고, 인생이 있는 애들이라고"

"그래도 아직은 애야. 애들인데 어떻게 그래. 아직은 엄마 품 안에 있어야 해"

"당신도 당신 인생 살아야 돼. 그렇게 살다가는 늙어서 내가 놀아 줄 거 같아?. 지금도 우리보다는 애들인데 나중에 늙어서 그때 가서 우리끼리 뭐 하고 놀까?"

"아니.. 뭐.. 그래도"



부모가 아이들을 사랑하고, 헌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해줄 것이 없는 존재가 부모다. 아마 부모가 늙어 죽을 때까지 아이들은 부모 입장에서는 아가들이다. 여전히 우리 부모님도 뵙거나 전화를 하면 언제나 말씀하신다. 밥 잘 챙겨 먹고, 차조심하라고. 그 아들이 이제 내일 모레면 불혹이 중반이 될 텐데. 


나의 작은 노파심이면 좋겠다. 나는 아내가 아이들과 거리를 두었으면 좋겠다. 아니 거리라기보다 아내와 이이들과 사이에 작은 틈이 있으면 좋겠다. 작은 틈이 있어 두 사람의 온도를 낮출 바람이 드나들었으면 좋겠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틈이 필요하다. 사랑으로 만난 두 사람도, 엄마와 아빠의 뼈와 살로 태어난 부모 자식 사이도 완벽하게 아귀가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사람의 모양은 제각각이라 그 틈이 없이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은 없다. 부부도 부모 자식 간도 그렇다.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맞추게 되면 모양이 틀어진다. 넘치는 부분을 깎아내어 모자란 부분을 채워야 한다. 과정이 쉽지 않다. 부부도 평생을 걸쳐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을 맞춰 나간다. 그래도 그 틈은 완벽히 메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서로 적당한 거리를 두어 서로를 천천히 살필 수 있는 거리가 있으면 좋겠다. 너무 바싹 붙어 자세히는 볼 수 있지만 전체적인 그림을 보지 못하는 것보다, 전체적 모습을 볼 수 있는 거리에 있으면 좋겠다. 그래야 내 아이를, 나의 부모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아이의 어떤 부분이 멋지고, 어떤 부분은 부족하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부모가 어떤 부분을 걱정하고, 어떤 부분은 믿어주는지 살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들이 잘 자라고, 올바른 판단을 할 때까지 지켜주고, 가이드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도처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맞다. 그러나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의 최종 목표는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 부모가 없어도 혼자서 헤쳐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 한 인간으로 키워내는 것. 이것이 아닐까? 부모들은 곧잘 이런 착각들을 한다. 때가 되면 아이들이 스스로 자립심이 생기고 사회에서 자신의 한몫을 제대로 해낼 거라고. 하지만 때로 우리는 이런 소식에 놀라곤 한다. 


[대학학과 교수에게 아이를 부탁하는 부모이야기]

[군 간부에게 자신의 아들을 잘 챙겨달라 부탁하는 부모이야기]

[회사 인사과에 자녀의 승진이나, 인사고과를 문제시하는 부모 이야기]


설마 이런 일이? 싶겠지만 현재 우리 사회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이야기들이다. 부모들의 양육의 기간은 길어지고,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들도 부모의 도움 없이는 경제적 도움 없이 자립하는 게 점점 어려운 사회가 되고 있다. 이른바 캥거루 족의 탄생이다. 캥거루 족은 자립할 나이가 되었음에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기대어 사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용어다. 유사시 부모라는 단단한 보호막 속으로 뛰어드는 습성을 지닌 캥거루의 모습에 빗대어 생겨난 말이다.


경제적 이유가 가장 크다. 취업난이나 주거비 부담, 결혼의 지연이나 포기 등도 또 다른 이유다. 


이러한 현상은 부모의 노후 준비를 어렵게 한다. 이제는 평생을 아이를 책임지는 시대가 온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들이 이런 사회를 만든 것은 맞다. 아이들이 지금 시대를 살고 있지만 그 시대는 부모가 만들었다. 그런 이유라면 부모가 책임을 지는 것도 맞다. 동시에 문제를 만든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맞다. 지금의 사회를 지금의 아이들이 고칠 수는 없다. 지금 아이들은 이런 사회를 살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이런 삶이 당연하다. 결국 부모의 시선이 바뀌는 수밖에 없다. 온실의 꽃이 더 예쁘게 자랄 수는 있지만, 온실 밖의 꽃들이 더 튼튼하고 강한 뿌리를 지닐 것이다. 




우리의 삶에 목표가 자녀의 성공에 있다면, 지금의 상황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투자하는 것도 괜찮다. 그것으로 자녀의 성공이 보장되지는 않으나 큰 풍파 없이 자식을 키울 수는 있을 것이다. 최소한 부모의 부재까지는 큰 걱정 없이 살아갈 것이다. 이것이 부모의 삶의 목표라면 그렇게 살아도 된다. 


만약 삶의 목표가 인생의 행복이라면 그 결을 조금은 달리 해야 한다. 삶의 행복은 아이의 행복과 동일시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삶 중 아이의 성공이 하나의 기쁨은 될 수 있지만, 전부가 될 수는 없다. 


부모도 부모의 삶이 있다. 

우리도 한 때는 어린아이였고, 청소년이었으며 그 과정을 거쳐 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아직 나를 걱정스레 바라 보시는 부모가 있는 경우도 많다. 우리의 삶은 우리의 아이들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삶의 고됨을 나눌 친구들이 있고, 내가 추구하는 일들이 있고, 나를 걱정하는 부모님이 있고, 내가 키워나가는 아이들이 있는 것이다. 골고루 성장해야 나의 삶이 행복해지는 것이다. 튼튼하지 않은 뿌리를 가진 나무가 탐스러운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토대가 건강해야 건강한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부모가 행복해야 아이들이 행복하다. 부부가 건강해야 아이들도 건강하다. 


부모가 온갖 힘들고 어려움을 견디면서 행복하지 않은데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이렇게 힘든 삶을 살고 있지만 너희들만은 행복해라, 성공해라. 강요할 수 있을까? 그런 강요된 행복이 아이들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까? 


당신 지금 나한테 소홀하면~ 나중에 늙어서 안 놀아줄 거야~ 있을 때 잘해! 

우리 인생 살자

이전 08화 돈이 많으면 모두가 아이 셋을 낳을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