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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0. 2024

아이는 세 살까지 모든 효도를 다한다.

 첫째는 처음이라 모든 게 두려웠고,  둘째는 한 번 경험해 보았다고 자만했다. 셋째가 되니 이제는 체력이 달린다 두렵다. 처음도 세 번째도 모두 어려운 것이 육아다. 육아는 아무리 반복해도 절대 쉽다의 영역으로 내려가지 않는다. 육아는 단순히 아이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다. 아이를 올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육아다. 그래서 매번의 육아가 다르고 어렵다. 


성별이 다른 아들과 딸은 관심도 행동도 표현도 모두 다르다. 매번의 육아가 모두 경험치로 쌓이지 않는다. 매번 새로운 튜토리얼을 하는 것처럼 새롭고 낯설기까지 하다. 마치 비슷한 보드게임을 연달아하는 것 같다. 어느정도 패턴은 알겠는데 이전 게임에서의 필살기가 통하지 않는다. 같은 듯 같지 않은 게임이다.  나는 10여년 동안 세 아이를 키웠고, 키우고 있다. 하지만 매일 만나는 일들은 매일이 새롭다.




아이는 기쁨이다. 어쩌면 결혼 이후 가장 큰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할 곳이 바로 육아다. 잘 먹는 것 하나만으로 기쁘고, 한 번의 고열만으로도 세상에 구멍이 뚫린다. '응차' 일어서 아장 걷는 날에는 벅찬 감동에 저도 모르게 손뼉을 친다. 어린이집에서 발표회라도 하는 날이면, 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꼬물꼬물 거리며 친구들과 합을 맞추는 모습에 모르게 눈물이 흐르기도 한다. 유치원을 가고 학교를 가면서 조금씩 옷 사이즈가, 신발 사이즈가 커가는 모습을 보면 대견하기도, 한 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한다. 사춘기라도 오면, 그동안의 예쁜 천사는 어디 가고 내 속을 이렇게 헤집어 놓는 꼬마 악마가 생겼나 속상하기까지 하다. 그러다 독립을 한다면 얼마나 가슴이 허전할는지 상상도 어렵다. 


육아의 기쁨은 세상 어느것과 비할 바가 못된다. 새 자동차가 육아의 기쁨보다 더할까? 직장 승진이 아이 보다 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아이에게 얻는 행복은 그 어떤 것들에게서 얻는 행복보다 효과가 오래간다. 행복감이 그렇게 높기에 절망감도 그렇게 깊을 수 밖에 없는지 모른다. 높은 산은 깊은 골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육아는 신체적으로도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벅찬 일이다. 마치 부모를 갈아 넣어 아이를 키우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때때로 부모들은 깊은 늪으로 가라앉기도 한다. 


첫 아이를 만난 후 부모는 모든 스케줄과 대소사와 활동 범위가 아이가 중심이 되어 돌아간다. 아주 작은 새로운 우주가 생기게 된다. 그 과정은 너무도 행복하지만, 동시에 부부만의 일상은 사라진다. 그래서 때때로 스스로에게 질문하기도 한다. '내가 이러려고 열심히 살았나' 새로운 우주 속에서 부모는 그들의 존재 이유에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그곳은 모든 중력이 아이를 향해 있다. 아이가 우주의 중심이 되었다. 이런 세상에서 부모는 아이에게 중심이 되어주지 못할 때가 있다. 어느새 아이는 부모가 아닌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런 우주에 똑같은 우주가 하나 더 생긴 이후로 아이는 중심점에서 구성원으로 변모했다. 중심점과 구성원의 의미와 역할은 매우 다르다. 더이상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제는 자신의 것을 나눠야 하고, 먼저 먹지 않으면 맛있는 반찬은 금새 사라지게 된다. 나만의 옷과 신발만이 있는게 아니다. 예전만큼 원하는 것을 쉽게 얻지 못하는 경험을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이제 부족함에 인내하는 법, 나누는 법,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 경험은 분명 사회생활에서도 잘 활용될 것이다. 둘 이상의 형제는 이미 작은 사회다. 사회속에서 살아가는 법인지도 모르면서 몸에 익히게 된다. 


이제부터는 육아의 기쁨보다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다. 누가 그랬던가. '아이는 세살 이전에 부모에게 모든 효도를 다 한다고' 이제는 돈 들어갈 일도 더 많고, 때로는 부모 자식간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 대 인간으로 서운함을 느낄 때가 더 많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누군가는 아이를 낳는 것에 굉장히 주저하고 멀리하기도 하고, 무자식이 상팔자라고도 한다. 뭐 정답은 없다. 


나는 아직 아이를 온전히 다 키워보지 못했다. 아직 키워내야 할 날이 더 많다. 이제 겨우 사람 행색을 갖추게 키워놓은 것일 뿐, 그 안에 무엇이 담겨 놓아야 할지 우리는 아직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제 육아의 전반전을 마친 느낌이다. 나의 육아는 이 단계쯤이다. 아직 본격적인 아이들뿐 아닌 부모들의 인생 하이라이트인 대입을 거치지 않았다. 그때가 되면 한 아이의 육아가 끝이 날까? 설마 그럴까? 나 역시 아직 내 부모의 그늘에 살고 있다 생각하면 육아란 끝이 없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직 우리 부모의 안쓰러운 자식이듯, 내 아이들도 평생을 자라도 나의 소중한 아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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