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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Jun 20. 2024

에필로그_연재를 마치며

얼마 전 본가에 다녀왔다. 어머니와 옛이야기를 많이도 나눴다. 우리 집은 생각보다 가난했었다. 나는 가난을 잘 모르고 자랐다. 아니 돈이 없는 건 아닌데 쓰실 줄을 몰랐다. 두 분 다 어린 시절을 지독한 가난 속에서 살아오셨던 터라 돈을 쓰는 것을 정말 못 견뎌 하셨다. 내 초등학교 졸업식에 나를 혼자서 중국집에 보내셨던 이유도 본인의 입으로 들어가는 돈이 아까우셨단다. 평생을 본인을 위해 쓰는 걸 아까워하며 사신다. 


그리고 내게 말하셨다. 


"나는 사랑받을 줄 모르고, 사랑을 주는 법도 모르고 자랐어. 그래서 내가 너를 볼 때면 미안해 엄마 때문에 성준이 성격에 그늘이 진 건가 싶어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무얼 해주는 걸 모르고 자랐어."


"엄마는 성준이가 아픈 뒤부터 무얼 해도, 나는 이렇게 즐기면 안 되는 사람인데. 나는 이렇게 맛있는 걸 먹으면 안 되는 사람인데 란 걸 달고 살았어. 무엇을 해서 재밌어도 그 순간 가슴속에 응어리가 콱 뭉쳐. 나는 이러면 안 되는 사람인데란 생각이. 성준이 보내고, 이제는 성준이도 아프지 않고 잘 지내겠지란 생각에 그래도 조금 나아졌어"


나는 크게 불편함이 없이 자랐다. 스스로 가난하다 생각해 본적도 없다. 그런데도 나의 부모는 미안해하셨다. 평생을 본인들을 위해 쓰시지도 못하시면서도 못해준 게 많다며 자책하셨다. 


부모들은 자녀의 잘못과 실패마저 본인의 잘못처럼 생각한다. 나의 부모가 그렇고, 내가 그렇다. 아이가 아파도 부모 잘못. 아이가 실패를 해도 부모 잘못이다. 사람이 사람을 키우는 데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엄청난 비용, 시간 모든 것들이 필요하다. 그걸 다 부모들은 감수한다. 그럼에도 항상 미안해한다.


사람을 키운다는 것이 어렵다. 

도통 쉬운 것이 없다. 


정답도 없고, 끝도 없는 육아는 어쩌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돌보았고, 나도 누군가를 돌보아 주는 것. 그렇게 사람은 살아온 건가 보다. 육아라고 쓰지만 삶이라고 읽어야겠다. 




가족을 촬영한 다큐가 방영되고, 참 많은 댓글을 읽으며 우리 가족이 얼마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지 다시금 깨달았다. 나에게는 당연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세상 같기 힘든 행복이며, 목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점점 아이를 낳은 것이 두려운 세상이 되었다. 성인으로서 겨우 살아가는 세상에서 온갖 돌봄이 필요한 핏덩이를 기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가 생긴 그 순간부터, 성인 남녀의 삶은 다시 만날 수 없다. 아마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곡점이라면 바로 아이가 생기는, 아이가 태어난 그 시점일 것이다. 


육아는 힘들다. 아무리 포장해도 육아 자체는 힘들 수 밖에 없다. 육아를 잘하고, 아이들에게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육아는 힘든 일이다. 어쩌면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조금은 알겠다. 피하고 싶은 것이다. 내 한 몫 제대로 해 나가기 어려운 세상에 아이들까지 그 고통속에 밀어넣기 싫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눈 앞에 분명한 불행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피한다고,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그 선택이 행복으로 가는 티켓을 얻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불행을 피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그 아이를 낳지 않는 선택이 당신을 행복으로 이끌어주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아 행복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아이를 낳아 불행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아 불행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아이를 낳지 않아 행복할 수도 있다. 모든 것은 각자의 선택과 책임일 수 밖에 없다. 


나는 불행을 피하는 방식이 아닌 행복을 쫓기위한 선택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으로 아이들을 키우고, 내가 생각한 행복한 모습에 매일 매일 다가서고 있다. 지금까지 행복한 일상이었다. 앞으로 어떤 길이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나의 선택에 책임을 다할 뿐이다. 


그래 나는 아이를 돌보는 아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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