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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준 Aug 09. 2024

읽는 것. 그리고 느끼는 것. 가능하면 쓰는 것

밤늦게 책을 읽었다. 오랜만에 낮 시간에 일이 많아 밤이 늦어서야 내 시간이 생겼다. 저녁 무렵에 일이 끝이 났지만, 아이들을 돌보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하고 또 아이들의 취침 준비를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은 밤이 한참 깊어 버렸다. 침대에서 둘째 아이를 재우느라 조금 뭉그적거리다 보니 시간이 11시에 가까워졌다. 오늘도 하루가 끝이 나려 한다는 생각에 문득 아쉽다는 기분이 들었다. 


모두 잠이 든 밤에 살짝 일어났다. 불이 꺼진 거실은 고즉넉하고, 냉장고가 낮을 울림을 내며 돌아가는 것 말고는 도통 조용하다. 큰 아이가 잠든 방에서 빛이 새어 나오길래 살짝 들여다보니 취침등을 켜 놓고 잠이 들었다. 취침등을 꺼줄까 하다 그냥 두었다. 괜히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이 깰까 싶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었지만, 혹시나 가족들이 깰까 그냥 작은 방으로 들어가 책상에 앉았다. 한참만에 앉은 듯한 느낌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할지 몰랐다. 습관이 무서운 것이 한동안은 책상에 앉기만 하면 글을 쓰곤 했는데 휴가 이후로는 도통 글이 써지지 않는다. 글을 쓴 다는 것이 좋으면서도, 두렵다. 글 쓰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글쓰기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될까 봐서 두렵다. 


괜히 인터넷을 뒤적이다 보니 온통 올림픽 소식들이다. 한 배드민턴 선수의 말 하나가 불씨가 되어 여론이 갈린다. 괜히 속이 시끄러울 것 같아. 현실로 돌아온다. 며칠을 표지만 노려보던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기필코 읽자 다짐했다. 


생각보다 초반 등장인물이 적지 않다. 나중에 헷갈릴 것 같아서 등장인물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쳐가며 읽기 시작했다. 오늘 읽는 책은 소설이다. 소설은 에세이와 결이 다르다. 제대로 읽는지 모르지만, 소설은 좀 더 넓은 세상이 열린다. 때로는 현실 속에서 벌어질 법한 일들이 나오고, 때로는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처음 글을 쓰고자 마음먹었을 때는 쉽게 생각했다. 


이미 나의 머릿속에는 많은 이야기들이 뒤엉켜 있고, 끝트머리 실 하나를 잡아내면 실타래 풀리듯 이야기가 쏟아지리라 생각했다. 새로운 세계관이며, 등장인물을 탄생시키는 것이 별거 아니라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고, 드라마와 영화를 접했으며, 벌써 인생의 중년에 다다르는 경험도 해왔다. 부족함이 없으리라 여겼다. 


예상했겠지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낸 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를 쓰더라도, 한 장면, 대사 하나, 동장 하나의 묘사가 맘처럼 쉽게 이어지지 않는다. 소설책 한 권을 읽는데 이틀이면 충분하지만, 나는 그 이틀 사이에 장면 하나를 완성해 내지 못한다. 창작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다. 


때때로 쉽게 쉽게 글을 써 내려가는 듯 보이는 작가들이 있다. 매일매일 새로운 글들을 적어내고, 또 써 내려간다. 원고의 완성을 떠나,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능력에 대단함을 다시 느꼈다. 브런치에서, 인터넷에서 다른 이들의 글을 읽다 보면, 예전과는 다른 대단함을 느낀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아무리 그간의 경험이 많고, 색다른 일들을 했다 하더라도, 그 자산을 글로 풀어내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의 재능이다. 


그렇게 타인의 글에서 대단함을 느껴가며 책을 읽다가 문득 느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런 것이구나. 
읽는 것. 그리고 느끼는 것. 가능하면 쓰는 것 


늦은 밤 책을 읽는 일이 다른 이에겐 어떨지 모르겠지만, 순간 나는 편안함과 몰입감을 느꼈고, 움직임 없이 글자를 따라 눈동자만 움직이는 적막함 속에서 나는 다른 세상에 있었다. 타인이 만들어 놓은 세상에 따라 들어가 등장인물을 따라 함께 움직였다. 의식하지 않아도 활자로 된 이야기가 머릿속에서는 영상이 되어 그들의 말과 행동을 따라갔다. 등장인물들의 목소리 톤이 들리는 듯했고, 그 공간의 냄새가, 소리가,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이런 것이었구나. 란 생각이 머릿속에서 팟 떠올랐다. 아직 정리가 되지 않은 이야기들을 어서 활자로 옮기고, 이야기의 틀을 잡아내고, 등장인물을 그리고, 장면을 설명하는 그런 일이 나는 하고 싶다 는 욕심이 들었다. 


늦은 밤의 독서는 나를 책 속의 장면처럼 바다 한가운데 데려다 놓았고, 그들의 언쟁과 표정을 읽으며 다음 행동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정적인 일을 하면서 가장 동적인 에너지를 쓰고 있었다. 


나는 안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머릿속의 이야기만을 풀어내는 것이 아님을.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들과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지금까지 그저 생각의 흐름을 따라 써 내려가는 이야기에 무엇이 부족한지 점점 깨닫고 있다. 


한 밤의 독서가 그저 즐거운 일일줄 알았다. 그저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취미라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 더 아팠다. 즐거움을 느끼는 가운데 나의 부족함을 깨달았고, 그것을 메우기 위해 나를 돌아보는 작업이 이어졌다. 해야 할 일, 해서는 안 되는 일. 하나하나 정리하는 시간이 이어졌고, 나는 바다에서 현실로 돌아와 았었다. 


심야의 독서가 나에게 던져준 것은 즐거움이었고, 그 즐거움 뒤에는 큰 숙제와 과제가 있었다. 책을 읽는 것은 생각만큼 재미있는 일이고,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 때로는 나의 글들을, 취향을 전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작업이 있다는 것. 


글을 쓰는 일이 주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공존하는 것이 재밌다. 아무도 시키지 않은 일을 하면서 괴로움을 느끼는 사람들인 것 같다. 작가란. 마냥 즐겁지 않은 일에 몰두하는 나도 언젠가는 작가라 불리는 날이 오길 바란다. 그때까지 나는 읽고, 느끼고, 가능하면 쓸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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