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공식은 누가 정했을까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삼시 세끼 굶지 않으며,
자식들은 무탈하게 자라고,
몸은 어디 한 군데 크게 아프지 않고,
부모님은 건강히 늙어가시는 것.
이게 행복이라 했다.
조금도 부족함 없이,
너무도 명확하게 정의된 행복의 조건.
마치 다섯 손가락이 다 갖춰져야 온전한 손이 되는 것처럼
이것만 충족하면 인간은 행복해야 한다는 듯이.
그런데, 이게 대체 언제적 행복론일까?
농경사회, 땅만 파먹고 살던 시절에나 어울리는 기준 아닐까?
그 시절엔 삼시 세끼를 챙겨 먹는 것이 중요했고,
가족이 무탈하게 살아남는 것만으로도 다행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당장 먹고 사는 걱정을 덜어냈다고 해서
우리의 마음까지 평온할 수 있을까?
그래도 이왕 정해진 행복론에 맞춰
지금의 나를 평가해 보자.
남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간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살고 있는 집이 은행과 공동 소유라
월세처럼 대출 이자를 갚아야 한다.
첫 단추부터 미끄러지는 기분이다.
그래도 내 몸은 건강하고,
아이들도 별 탈 없이 자라주고,
밥 굶는 일 없이 하루 세 끼 먹고 살고,
양가 부모님도 건강하시다.
자, 그렇다면 다섯 개 항목 중 네 개를 충족했으니
나는 행복 점수 80점짜리 인생인가?
행복도 퍼센트로 계산할 수 있는 거라면
나는 꽤 괜찮은 점수를 받은 셈인데,
왜 이 마음 한구석은 허전한 걸까?
만약 정말 이 기준이 절대적이라면,
과연 100점을 받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다 갖췄다 한들,
그 사람은 정말로 ‘완벽하게’ 행복할까?
행복이란 숫자로 채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어느 날 문득, "그래, 난 행복하다."라고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사람만이 행복한 거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쉽게 내뱉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내가 80%의 행복을 가졌다는 사실보다
나머지 20%를 가지지 못했다는 것이
더 크게 다가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면 질문을 바꿔보자.
‘100% 행복한 사람’이 존재하기나 할까?
아니, 애초에
행복을 그렇게 따지고 사는 것이 맞는 걸까?
우리는 늘 행복을 조건으로 배워왔다.
이것을 이루면 행복해질 거야.
저것만 손에 넣으면 괜찮을 거야.
하지만 막상 조건을 채워도
새로운 조건이 생겨난다.
지금의 나처럼.
은행 빚이 없다면,
조금 더 좋은 집에서 산다면,
아이들이 명문대를 간다면,
부모님이 더 오래 건강하시다면,
그러면 나는 100% 행복할까?
글쎄.
아마 또 다른 20% 부족한 부분을 찾고 있겠지.
행복이란,
조건을 채워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스스로 찾아내는 것이다.
아무리 계산해도 100% 채워지지 않는다면,
80%를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
그게 어쩌면 진짜 행복 아닐까?
나는 여전히 매달 은행에 돈을 보낸다.
때때로 미래가 불안하고,
조금은 더 나은 삶을 꿈꾸기도 한다.
그리고 아직도,
스스로를 80% 행복한 사람이라 여기면서도
그 마지막 20%를 찾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의 삶이 가치 없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행복은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과정’ 그 자체일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