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도 정말 의미가 있을까?

by 성준

아침이면 아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적막함이 확 밀려온다.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햇빛이 텅 빈 거실을 가득 채운다. 괜히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이게 다 무슨 의미가 있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바닥을 쓸고 닦고...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근데 이상하게도, 다 해놓고 나면 허무하다. 모든 게 반복되는 것 같다. 하루가 끝나도 성취감이 없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간다. 필요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으면서도 머릿속은 복잡하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예전엔 나도 꿈이 있었는데..."

저녁 무렵, 아내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다. 얼굴엔 피곤이 가득하다. 테이블에 차려놓은 저녁을 보고 무심코 말한다.


"잘 먹을게."

그 말이 공허하게 느껴진다. 예전 같으면 "고마워."라는 말과 함께 웃었을 텐데. 이제는 당연한 듯 흘러간다.

그냥 하루의 루틴처럼. 아내도 지쳐 있고, 나도 지쳐 있다. 하지만 나는 하루 종일 집에서 있었는데, 왜 이렇게 피곤할까.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다.


아이가 밥을 먹다 말고 묻는다.

"아빠는 집에서 뭐 해?"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에서 하는 일이 뭐긴 뭐야.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하지만 그걸 말해봤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까지 의미 없는 걸까?



마트에서 장을 보고 있는데, 옆에서 물건을 고르던 할머니가 말을 건다.

"요즘 아빠들은 애들도 잘 키우고, 장도 잘 보네."


처음엔 그냥 지나가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다. 그런데 동시에 복잡하다.

나는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 뿐일까? 한편으로는 인정받은 것 같아서 기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게 칭찬받을 일인가 싶기도 하다.

계산을 마치고 마트를 나오는데, 아이가 갑자기 말한다.


"아빠랑 장 보는 거 재미있어."

그냥 한 마디였을 뿐인데, 왠지 마음이 묘하게 따뜻해진다. 아이가 내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는다. 그 작은 손에서 전해지는 온기가 왠지 모르게 위로가 된다.


집에 돌아와 장바구니를 정리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이것도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인데, 왜 나는 이렇게 하찮게만 느꼈을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마음이 달라지고 있었다.



저녁을 차린다. 익숙한 냄새가 부엌에 가득 퍼진다. 테이블에 음식을 올리고, 아이와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본다. 아내가 무심코 한 마디를 던진다.


"당신이 집에 있어서 다행이야."

순간 마음이 뭉클해진다. 나는 아무 의미 없는 하루를 보낸 것 같았는데, 가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아이가 숟가락을 놓고 말한다.


"아빠가 해준 밥이 제일 맛있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처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내가 하는 일이 단순한 집안일이 아니라는 걸 조금은 알 것 같다. 식사를 마친 후 아이가 내 옆으로 다가와 꼭 안긴다.

"아빠 최고야."


그 작은 목소리에 코끝이 찡해진다.

밤이 깊어가고, 거실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내가 조용히 말을 건넨다.

"오늘 현장에서 일하는데 너무 힘들었어. 그런데 당신이 집에서 애들 봐주니까 진짜 걱정 없이 일할 수 있더라."


가슴이 찡하다. 그리고 처음으로 진짜 깨닫는다.

내가 하는 일도 가치가 있을 수 있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아이들이 엄마보다 나를 더 자주 찾고 있었다.

"아빠, 이거 어떻게 하는 거야?"

"아빠, 나 이거 도와줘!"


어느새 나는 가족 안에서 더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아이들은 엄마보다 아빠에게 질문하고, 아빠에게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하는 일이, 내 역할이 절대 작지 않다는 걸.


끝나지 않은 질문 – 하지만 여전히 완전히 받아들이지는 못했다


가정에서의 역할이 단순히 돈을 버는 것만이 아니라는 걸 점점 깨닫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확신이 서지는 않는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질문이 맴돈다.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

"내가 정말 중요한 사람일까?"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나을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다음 단계는 아마도 가정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역할을 찾는 과정이겠지.

뭐, 답이야 나중에 찾더라도 지금은 이 순간을 좀 더 즐겨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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