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이라는 역할을 다시 생각하다 – 책임이 아니라 선택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다. 대화의 중심은 여전히 일, 커리어, 승진, 사업 이야기였다. 예전 같았으면 경쟁하듯 내 성취를 이야기하고, 그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이 대화가 나에게 정말 중요한가?"
가정에서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일은 아니다. 하지만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 바뀌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자각하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동시에 어딘가 불안한 감정이 교차했다. 마치 내가 사회적 경쟁에서 멀어지는 것 같았고, 이 새로운 역할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알 수 없었다.
밤늦게까지 고민하다 아내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나 지금 괜찮은 걸까?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걸까?”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 가족은 지금 되게 안정적이야. 당신 덕분에.”
그 말이 위로가 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와닿지는 않았다. 내 역할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여전히 마음 한구석에는 막연한 불안감이 남아 있었다.
균형을 맞추는 법 –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다
어느 날 저녁, 아이와 밥을 먹었다. 늘 그렇듯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그런데 문득 그 시간이 다르게 느껴졌다. 단순히 '밥을 먹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게 진짜 가족이구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은 늘 '해야 하는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제는 그 시간이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퇴근한 아내가 소파에 기대어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진짜 힘들었어. 당신이 집에 있어서 다행이다."
예전 같으면 그저 던지는 말처럼 들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아, 내가 있어서 이 공간이 더 편안한 거구나.”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있어서 잘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 깨달음이 내 안에서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가장의 새로운 의미 – '가장'이 아니라 '삶의 중심'으로
주말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예전에는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한다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내가 이 시간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게 내 삶에서 더 중요한 부분이 아닐까?”
가정을 유지하는 일이 희생이 아니라, 오히려 삶을 조화롭게 유지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는 가장의 역할이 단순히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역할이 내 삶을 더욱 균형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아이의 숙제를 도와주고 있었다. 한참 설명한 후, 아이가 말했다.
"아빠랑 공부하면 더 재미있어."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내가 하는 일도 의미가 있다’는 확신이 조금씩 자리 잡았다. 가족 안에서 나의 역할이 더 명확해지고 있었다.
가정을 유지하는 새로운 방식에 대한 다짐
예전에는 ‘내가 가장이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가장이라서 내 자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가족의 행복이 곧 내 행복이라는 걸 깨닫는 과정이었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내 삶에서 가정이 중심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앞으로는 ‘가장을 유지하기 위해 살아가는 게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해 가장이 되는 것’으로 방향을 전환할 것이다.
이 변화가 아직 낯설고 불안하기도 하다. 가정을 우선순위로 두면서도 내가 나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 가장의 무게를 내려놓았을 때, 나를 지탱해 줄 또 다른 중심이 있을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있다. 이제는 이전처럼 무조건 앞서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 속도로, 내 방식대로 가족과 함께 걸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 열릴지도 모른다.
가장이라는 역할이 내 삶을 속박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과정임을 깨닫게 되었다. 불확실성과 기대가 공존하는 이 순간, 나는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이제 나는 내 방식대로 이 자리를 지켜가면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도 성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