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을 지키는 방법

by 성준

이력서를 보내는 건 생각보다 쉬웠다. 서류 정리하고, 자기소개서 몇 번 고쳐 쓰고, 지원 버튼을 누르면 끝. 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은 길었고, 돌아오는 답장은 늘 짧았다.


“귀하는 뛰어난 경력을 갖추고 있지만, 아쉽게도…”


또 똑같은 문장. 몇 번째인지도 모르겠다. 노트북을 덮고 이마를 짚었다. 뻔한 거절, 형식적인 응원. 이쯤 되면 응원이라기보단 그냥 통보다. 나는 이제 필요 없는 사람일까? 너무 오래 쉬었나?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천장을 멍하니 바라봤다. 집 안은 조용했다. 아내는 출근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갔다. 나는 또다시 이력서를 수정하고, 지원을 반복했다. 그래도 되는 거라고,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순 없어.”


그렇게 시작한 게 아내의 부업을 돕는 일이었다. 아내는 본업이 따로 있었지만, 부업으로 아이 옷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꽤 잘됐다. 트렌디한 제품을 들여오고, 온라인 판매도 활발하게 진행하면서 매출이 쭉쭉 올랐다. 나는 재취업이 막막한 상황에서 아내의 사업을 본격적으로 맡아보자고 했다. 자연스럽게 전담하게 됐다.


처음엔 나쁘지 않았다.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면서 온라인 판매도 더 키워보려 했다. 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시장 흐름은 빠르게 변했고, 대형 온라인 쇼핑몰들이 시장을 장악하면서 개인 매장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유행을 제대로 읽지 못한 탓에 판매량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제 어떡하지….”


매출 장부를 들여다보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내는 본업이 있어서 가게 운영에 온전히 신경 쓸 수 없었고, 결국 모든 책임이 내게로 넘어왔다. 처음엔 그래도 어떻게든 버텨보려 했지만, 점점 지쳐갔다. 매장에 혼자 서 있는 시간이 늘어갔다. 손님이 없는 텅 빈 매장에서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날이 많아졌다.


“괜찮아. 처음엔 다 그런 거야. 새로운 시도도 해보자.”


아내는 여전히 긍정적이었지만, 나는 점점 자신감을 잃어갔다. 익숙하지 않은 분야라서 그런지 뭐 하나 제대로 해내는 게 없었다. 온라인 판매 흐름도 따라가기 힘들었고, 상품 설명 하나 쓰는 것도 어색했다. 예전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발표도 하고, 프로젝트도 맡았던 내가, 이제는 가게 한쪽에서 주문을 정리하는 사람이 됐다.


결국 가게는 유지가 어려워졌고, 접기로 했다. 그렇게 또 하나의 실패가 내 이름 옆에 추가됐다.


“이제 본업 쪽 일 좀 도와줄 수 있어?”


아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망설이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아내의 본업을 서포트하게 됐다. 그런데 이 일도 영 낯설었다. 아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면서도, 어쩐지 자존심이 상했다. 이게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고, 결국 여기서도 겉돌기만 했다.


가진 돈은 빠르게 줄었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이 커졌다. 퇴근 후 피곤한 얼굴로 돌아오는 그녀를 볼 때마다, 내가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선명해졌다.


“오늘 면접은 어땠어?”


아내가 물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뭐. 다음 기회를 노려야지.”


어색한 웃음이 섞인 대화가 끝나고, 아내는 씻으러 들어갔다. 나는 식탁에 남아 텅 빈 이력서를 다시 들여다봤다.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공백이 너무 길어서? 아니면, 내가 시대에 뒤처진 걸까?


휴대폰을 들어 SNS를 열었다. 친구들의 승진 소식, 해외 출장, 성공적인 프로젝트 발표. 누구는 바쁘고, 누구는 더 잘나가고 있었다. 나는 댓글도 못 달고, 좋아요도 못 누르고, 화면을 꺼버렸다. 세상은 바쁘게 돌아가는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았다.


“아빠, 나 내일 학습 준비물 필요한데.”

아이 방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들었다.

“뭐 필요한데?”

“풀, 색종이, 그리고… 어, 엄마한테 말하라 했는데 깜빡했어.”

나는 웃으며 아이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아빠가 사다 놓을게.”


아이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휴대폰을 들어 검색창을 열었다. ‘재취업 성공 방법’ 같은 걸 검색해볼까 하다가, 대신 근처 문구점 위치를 찾아봤다. 적어도 내일 아침, 아이가 준비물을 못 챙겨 가는 일은 없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가족을 지키고 있는 걸까?’


식탁 위 노트북 화면이 어둡게 변했다. 손을 뻗어 덮었다. 정답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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