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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친해지지 않지만, 쉽게 멀어지지도 않는다

by 성준

휴대폰을 들여다본다. 수십, 수백 개의 이름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하지만 정작 지금 이 순간, 전화를 걸어야 할 사람이 없다. 새로운 직장을 구한 후, 누군가와 소주 한 잔 기울이며 고민을 털어놓고 싶었지만, 누구에게 먼저 연락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오랜만에 전화를 하면 너무 갑작스럽고, 늘 친절하게 인사했던 사람들도 그저 가벼운 인맥일 뿐이었다.

분명 많은 사람과 연락을 주고받았고, 어디서든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막상 진짜 깊이 있는 관계는 몇 개나 될까? 누구에게나 친절했지만, 정작 내 마음을 나눌 깊은 관계는 없었다.

관계란 단순히 많은 사람을 아는 것이 아니다.


가볍지만 깊이 있게 맺어야 오래간다. 귀티 있는 사람들은 쉽게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필요한 순간 진짜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유지할 줄 안다.



귀티 있는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친절하지만, 모든 관계를 깊게 만들진 않는다.


그들은 지나치게 가까워지려 하지 않지만, 진심을 잃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차갑거나 냉정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태도는 부드럽고 여유롭다.


누군가 지나가다 인사를 건넨다면 가볍게 미소를 짓고 응답하지만, 불필요한 개인사를 묻거나 과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처음부터 깊이 있는 대화를 하지 않는다. 대신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며, 그들의 태도를 살핀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거리를 두는 것은 아니다.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줄 알고, 신뢰가 쌓이면 기꺼이 관계를 이어간다.


가벼운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깊은 신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안다.


지나치게 가까운 관계가 주는 위험


관계를 급격히 좁히려 하면 오히려 피로감이 생긴다. 처음에는 친밀함이 빠르게 형성되지만, 그 속도만큼 금세 지치고, 관계의 균형이 깨질 위험이 높아진다. 쉽게 친해진 관계는 쉽게 무너진다. 너무 가까워지려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망이 쌓이고, 어느 순간 관계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깊은 신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천천히 쌓아야 하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신뢰를 시험하는 순간들도 필요하다. 관계를 맺는 속도보다 관계를 유지하는 방식이 더 중요하다. 단순히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면서도 신뢰를 쌓아가는 것이 오랫동안 건강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다.


신입사원인 A는 친화력이 좋아 모든 동료들과 빠르게 친해졌다. 매일 점심을 함께 먹고, 회식이 있으면 빠짐없이 참석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까웠던 동료들이 점점 더 많은 부탁을 하기 시작했고,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에 놓였다. 결국 A는 모든 부탁을 들어주느라 정작 자신의 업무에는 집중하지 못했고, 관계에 지쳐버렸다.


반면, B는 처음부터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만, 일정한 선을 지켰다. 점심을 함께하는 사람을 매번 바꾸었고, 모든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하는 말과 행동에는 늘 진정성이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료들은 그를 신뢰했고, 그는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고받으며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관계란 처음보다 지속되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얕은 친절과 깊은 배려의 차이


얕은 친절은 찰나의 미소와 빈말로 끝난다. 적당한 거리에서 던지는 "고생했어요" 같은 가벼운 인사가 그것이다. 마치 물결이 스쳐 지나가듯, 감정의 깊이를 헤아리려 하지 않는다.

깊은 배려는 다르다. 그것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고, 말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정확한 방식으로 손을 내미는 일이다. 말로만 "괜찮아?" 묻는 것이 아니라, 힘든 하루를 마친 동료의 책상에 조용히 따뜻한 차 한 잔을 두고 가는 것. 다정한 말보다 묵직한 행동이 더 큰 위로가 되는 순간들을 그들은 안다.

친절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배려는 품격에서 나온다. 가볍게 건네는 말 한마디가 아니라, 깊이 있는 신뢰를 쌓는 방식이어야 한다.


하루 종일 힘든 하루를 보낸 동료가 퇴근길 엘리베이터에서 한숨을 쉬었다. “오늘 정말 힘들었어.”

얕은 친절을 베푸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아, 그래? 그래도 힘내.”

하지만 깊이 있는 배려를 하는 사람은 이렇게 행동한다.

조용히 편의점에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사서 건넨다.


“따뜻한 거 마시면 좀 나아질 거야.”

가벼운 친절이 아닌, 무게감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관계는 언제나 균형의 문제다. 너무 가까이 다가서면 숨이 막히고, 너무 멀어지면 닿지 않는 거리가 되어버린다. 우리는 나와 타인 사이에서 적절한 접점을 찾아야 한다. 그 지점이 맞닿을 때 관계는 무리 없이 흐르고, 서로를 존중하는 틀 안에서 오래 지속된다.


깊은 관계를 맺는다고 해서 무조건 가까워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적당한 거리감 속에서 신뢰가 쌓인다. 서로를 너무 단단히 붙잡으려 하면 오히려 관계는 삐걱거리고, 쉽게 지쳐버린다. 귀티 있는 사람들은 관계를 집착하지 않는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부드럽지만,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차가운 태도가 아니라 관계를 건강하게 지속시키기 위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그 균형을 맞춘 결과는 무엇일까? 결국, 오래 지속되는 관계는 한순간의 강한 유대감이 아니라, 작은 신뢰가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다. 급격히 가까워졌다가 쉽게 멀어지는 관계보다, 조용하지만 꾸준히 이어지는 관계가 더 단단하다. 관계란 길게 지속될 때 그 가치가 드러난다. 단순한 친분이 아니라, 서로를 오랫동안 존중하며 지켜볼 수 있는 인연이야말로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 귀티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안다.


가볍지만 깊이 있는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은 단순히 사람을 많이 아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관계는 순간적으로 타오르는 불꽃이 아니다. 처음부터 모든 걸 나누려 하면 불필요한 소모가 커지고, 쉽게 지치게 된다. 그렇다고 완전히 선을 긋고 무심한 척한다면 그 관계는 결국 형식만 남게 된다.


귀티 있는 사람들은 이를 본능적으로 안다. 그들은 누구에게나 부드럽지만,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깊이 있는 대화를 할 때도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고, 불필요한 친밀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나면 그들의 주변에는 언제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무 깊이 빠지지도, 너무 가볍게 흘려보내지도 않는 균형을 배워야 한다. 진짜 인연이란 강한 유대감이 아니라, 오랫동안 편안하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람과의 조화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다. 쉽게 친해지지 않지만, 쉽게 멀어지지도 않는다. 그것이 귀티 있는 사람들의 관계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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