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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당신, 어디 갔어요?

by 성준

사랑은 가끔 연기처럼 퍼진다. 달콤한 향에 취해 한 발짝, 두 발짝,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안개 속을 걷고 있다.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공기가 다르고, 음악이 다르고, 심지어 거울 속 내 표정조차 다르다.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서 그의 말투가 내 말투가 되고, 그의 취향이 내 취향이 된다. 함께하는 순간이 너무 황홀해서, 나를 지키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문득, 나를 돌아보면 빈 공간이 보인다.


연애를 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나 자신을 깎아내고 있지는 않은가. 사랑은 함께하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나’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연애가 끝난 뒤에도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야 한다. 사랑했던 사람이 떠난 후에도 나는 온전한 내가 되어야 한다.


연애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쉽게 나를 잃어버리는가. 상대에게 맞추기 위해 취향을 바꾸고, 그의 기분에 따라 나의 감정도 흔들린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내 생활 패턴까지도 기꺼이 바꾼다. 친구들과의 약속이 줄어들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상대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를 사랑하는 법을 점점 잊어간다. 하지만 연애가 끝났을 때 깨닫는다. 사랑했던 사람이 사라지자, 그를 위해 바꿨던 내 취향도, 습관도, 정체성도 함께 증발해버렸다는 사실을.


어느 날 문득, 그와 함께 가던 단골 카페에 홀로 앉아 있을 때, 메뉴판을 보며 고민한다. 커피를 마셔야 할지, 차를 마셔야 할지. 그동안 당연하게 선택했던 메뉴가 더 이상 자연스럽지 않다. 그가 좋아했던 음악이 흘러나올 때마다 묘한 이질감이 밀려오고, 예전에는 편안했던 공간이 낯설게 느껴진다. 상대에게 맞추어 바꾼 취향은 결국 온전히 나만의 것이 아니었기에, 연애가 끝나면 빈자리처럼 남아버린다.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정말 이걸 좋아했던 걸까? 아니면 단지 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선택했던 걸까?


연애를 할 때 나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의 기술이다. 내 취향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함께 즐길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내 것이 될 필요는 없다. 혼자만의 시간도 반드시 필요하다. 연애를 한다고 해서 모든 시간을 상대에게 쏟을 필요는 없다. 나 혼자만의 시간이 있어야 관계 속에서도 온전할 수 있다.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되, 그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상대가 우울하다고 해서 나까지 무너질 필요는 없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독립적인 존재다. 건강한 연애는 두 개의 자아가 온전히 존재하는 상태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사랑을 하면 때때로 관계가 전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연애가 끝난 후에도 나는 여전히 나여야 한다. 내 삶이 공허해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사랑이 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랑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연습이 필요하다.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러니 사랑하되, 나를 놓아버리지는 마라. 사랑은 나를 지우는 과정이 아니라, 나를 더욱 선명하게 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사랑 속에서도 나를 지키는 것은, 관계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내가 단단할 때, 사랑도 더 깊어진다. 결국, 연애가 끝나도 남아야 할 것은 사랑의 흔적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온전히 존재했던 나 자신이어야 한다. 그것이 연애를 하면서도 내 삶을 지켜내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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