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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롤러코스터를 타고 무엇을 보았나요?

by 성준


사랑을 할 때마다 나는 뜨거운 여름 소나기를 떠올린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비는 시원하고 강렬하다. 하지만 그렇게 요란히 내린 비는 오래가지 않는다. 거짓말처럼 빠르게 개어버린 하늘 아래, 거리엔 고여버린 물웅덩이만 남는다.


연애도 비슷하다. 처음부터 너무 강렬하게 타오르면, 우리는 서로에게 매몰되어 버린다.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서로의 집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SNS 프로필을 서로의 사진으로 바꿔놓았다. 처음엔 부러웠다. 그들은 사랑을 숨기지 않았고, 뜨겁게 타오르는 모습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러나 두 달 후, 그들의 열정은 서늘한 침묵으로 바뀌었다. 상대의 모든 것을 빠르게 알아버렸기에 더 알아갈 것이 없었다. 그는 헤어진 뒤 술에 취해 나에게 말했다. "우리가 왜 그랬을까? 너무 빨리 달려서 무엇을 놓쳤는지조차 몰랐어. 뒤늦게 깨달았지만 그땐 이미 돌이킬 수 없었지." 그의 한탄 속엔 자신의 감정에 휘말려 정작 상대의 진짜 모습을 놓쳐버린 후회가 담겨 있었다. 결국 그들이 사랑한 것은 진짜 서로가 아니라, 자신의 감정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빠른 연애는 상대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감정만 앞세우게 만든다. 그래서 작은 갈등에도 쉽게 흔들리고, 관계가 약해질 수 있다. 때로 우리는 별거 아니라며 가볍게 여겼던 작은 문제들에 걸려 넘어진다. 서로의 진심을 보기 전에 열정이 식어버리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사소한 틈들이 크게 벌어져 결국 관계를 무너뜨리곤 한다. 쉽게 타오르는 연애는 이러한 것들을 고려한 시간을 주지 않는다.


천천히 내리는 가랑비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내리는 비는 대지를 깊이 적시고, 오랜 시간 동안 생명을 품게 만든다. 연애도 그렇다. 천천히 다가가고,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상대의 눈빛과 손짓, 미세한 떨림까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냥 좋아 보이던 모습 속에서 발견하는 미묘한 불편함, 때로는 처음 불편하게 느껴졌던 상대의 버릇이나 습관이 사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함이라는 걸 깨닫는 경험들이 우리를 더 깊은 사랑으로 안내한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


서로를 천천히 알아가는 과정은 사랑의 깊이를 더한다. 시간이 흐르며 쌓이는 감정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단단히 자리 잡고, 서로의 단점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된다. 연애는 결국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과정이며,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시간의 숙성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아무리 급하게 사랑을 하고 싶어도, 상대의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알 수는 없다. 서로의 모습을 천천히 관찰하고 경험하면서 진정한 이해와 공감이 생긴다. 빠르게 소모되는 관계가 아니라, 느리지만 꾸준하게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야말로, 오랜 시간이 흘러도 서로에게 편안하고 따뜻한 공간이 될 수 있다. 결국, 깊고 안정적인 사랑은 성급한 열정이 아니라, 충분히 숙성된 시간 위에 세워지는 법이다.


롤러코스터는 짜릿하다. 그러나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안 우리는 주변과 서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심장은 터질듯 쿵쾅거리지만, 롤러코스터가 멈추는 순간 그 두군거림도 끝이난다. 그 짧은 순간의 짜릿함은 더 이상 나를 가슴뛰게 만들어주지 못한다.


연애의 속도를 조금만 늦추자. 뜨거운 소나기보다, 잔잔한 비처럼, 천천히 서로의 마음에 스며들어 보자. 탄탄히 쌓아올린 사랑은 쉽게 흔들리지 않고,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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