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한번에 1300만동 긁어봤어요?
네 우리는 이곳에서 한 번에 1300만 동을 결제했습니다. 정확히 말씀드리면 13,379,857동입니다. 동을 쓰는 나라는 베트남입니다. 8월 12일 기준환율로는 70만 9천 원쯤 되는 돈이 되는군요.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큰돈이 들게 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베트남인걸요.
쌀국수 한 그릇에 2000원 정도부터 있는 나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해도 7,8천 원쯤 하는 나라. 6 가족이 금액 생각하지 않고, 메뉴를 고르고 마셔도, 15만 원쯤이면 뒤집어쓰는 나라. 7인승 그랩을 불러도 5천 원 언저리면 꽤나 멀리도 가는 나라, 두 시간의 마사지가 5만 원이 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베트남은.
참고로 1,000만 동은 25년도 현재, 도시 근로자의 월평균 소득정도 됩니다. 그런 베트남에서 70만 원의 거금을, 평균 근로자 한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금액을 한 번에 결제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지요. 도대체가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가짜 양주에 속아 덤탱이를 쓴 것도, 강도를 만나 지갑을 털린 것도 아닙니다. 명품이냐고요? 아니에요. 우리는 정말 원하지 않았지만, 지불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해외여행 15년 만에 처음으로 겪었던 경험이네요.
"everything is OK?"
"yeah~ it's good. thank you camon"
밤 공기는 여전히도 후텁지근하다. 이 놈의 나라는 더위가 가실 줄 모른다. 한창 더운 시기에 더운 나라를 내 발로 찾아왔으니 불평해봤자 소용없겠지만. 자정이 넘어 터덜터벌 나오는 발걸음은 그래도 들어갈 때보다는 여유가 생겼다. 한국과는 두 시간의 시차, 귀국편의 비행기를 하루 정도 남긴 때라 시차는 적응되어 간다 하지만 한국 시간으로는 벌써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지쳐 자고 있는 막내 아이를 품에 안고, 아직도 정신없어하는 큰 아이는 엄마 팔을 잡고 버티고 있다. 그나마 이제는 눈빛에 생기가 비친다. 이제 다 끝난 거겠지?
그럴 리가
영화를 보면 순간의 위기를 기지로 넘기고는, 잠깐 안도하는 주인공에게 삶은 또 한방 카운터를 날린다. 우리가 현실의 주인공은 아니어도, 이번 블럭버스터 재난 영화의 주인공은 분명 우리 가족이 분명했다. 남들이 보기엔 찻잔 속의 태풍일런지 몰라도, 우리는 그 재난 한가운데서 살아 돌아온 생존자들이었다.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큰 아이 두 돌 무렵부터, 못해도 2년에 한 번, 많게는 일 년에 한 번씩은 해외로 여행을 다녔다. 패키지를 선호하지 않는 와이프 덕분에 숙소며, 차량이며, 일정이며 모두 우리 손으로 예약하고 찾아가고 즐기며 여행을 했다. 지금까지 여행 중에 트러블을 경험한 적도, 지나치게 바가지를 쓰거나 한 적도 없다. 운 좋게도 만나는 외국인들은 호의적이었으며, 그들에게 많은 도움도 받아가며 여행을 다녔다. 우리들의 여행은 매번 힐링이었고, 좋은 추억이 되었다.
이국적인 풍경과 이국적인 생김새의 사람들 그들이 사용하는 익숙하지 않은 언어와, 억양이 담긴 영어 악센트들, 익숙하지 않은 향과 재료들의 음식들. 낯선 자극이 주는 여행은 긴장되면서도, 묘한 해방감과 도파민을 선사했고, 새로운 장면 하나하나가 추억으로 남아 다음 여행을 계획하고 기다리곤 했다.
둘이 떠났던 여행은 셋이 되고, 넷이 되고, 다섯이 되었다. 한 명의 가족이 늘어갈수록 여행은 조금씩 모습을 달리했다.
가족이 많으면 많을수록 준비해야 할 것도, 고려해야 할 것도 많아졌다. 좀 더 넓은 규모의 숙소가 필요하고, 큰 차가 필요해진다. 특가로 나오는 스탠더드 룸을 충동적으로 결정해 여행을 떠나 본 게 언제던가? 이제는 스탠더드 룸은 무조건 두 개 이상, 스위트나, 패밀리룸도 결코 넉넉한 규모가 되지는 못한다. 그것도 미리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원하는 날에 숙소를 잡는 것은 복권 같다. 짐을 싸는 것도 만만치가 않다. 큰아이와 와이프의 캐리어만 해도, 화장품과 옷들로 한가득 각자 하나의 캐리어를 독차지해도 넉넉하다 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공항으로 떠나는 그랩을 7인승 두대를 불렀다. 여섯 개의 캐리어와 여섯 명의 사람들. 이동하기에 16인승 밴이 아니면 차가 두 대가 필요해진다. 아! 왜 여섯 명의 여행이냐고? 이번에는 장모님까지 함께 다녀왔다.
여행 유투버들을 보면 떠나고 싶을 때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구해 캐리어보다는 간단하게 배낭하나를 멘다. 출발 직전이나, 도착한 후 도미토리나 저렴한 숙소를 구해 현지 거리를 많이 걷고, 걸으며 현지의 식당을 찾아다닌다. 새로움을 즐기고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도 나누고 교류하며 새로운 경험들을 한다.
그런데 왜... 우리의 여행은 그렇지가 못할까? 미리미리 여행 일정을 정하고, 항공권과 숙소를 미리 결정해 두는 것까지야 예산을 줄이기 위한 노력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해외여행은 유투버들의 그것과는 조금 많이도 다르게 흘러간다. 미리 일정과 숙소를 정하면 그때부터 폭풍 검색에 빠진다. 이곳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들, 먹어봐야 할 음식들, 해봐야 할 것들을 여행 몇 주 전부터 찾아서 리스트업 한다.
한국인들은 너무 정리를 잘한다. 이제는 몇몇의 유투버들과 블로그를 검색하면 그곳의 거의 대부분의 정보를 모을 수도 있다. 여행 전에 그들의 영상을 보면서 우리 가족이 가야 할 곳 걸러도 될만한 곳들을 머릿속에 계획하곤 했다. 여행을 앞두고 일에 치여 있던 그 시기에 그 자체가 힐링이었다. 곧 다가올 파라다이스가 일에 대한 스트레스와 짜증을 조금은 누그러트려 주었다. 그래도 떠날 수 있으니까라며 그 시간을 버텼다.
어쩌면 여행의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그때가 아닌지 모른다. 여행을 앞두고 다가올 모든 좋은 것들만을 기대하던 그때.
다시 우리의 여행을 돌아보면, 여행의 선택부터 우리는 유투버들과는 많이도 달랐다.
아직 아이들이 어리다 보니, 그래도 리조트를 골라야 편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할 것만 같은 생각에 그곳에서 제법 유명한 리조트를 고른다. 고르다 보면, 일 년에 한 번 떠나는데 이왕이면 평이 좋고, 깔끔하고 조금은 더 고급스러운 곳을 찾는다. 공항에서 도착하면 리조트에서 픽업을 나오는 호사도 누릴 수 있다. 이것뿐만 아니라 약간의 비용만 지불하면 입국 심사마저도 10분 컷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예전 필리핀을 방문할 때 유용하게 사용했던 패스트트랙을 베트남에서도 이용해 보기로 했다. 기억으로는 일인당 만원 초중반의 가격이었던 비용이었다. 5인 가족하면 아이들 비용까지 해서 6-7만 원 언저리의 가격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 비용이 전~~ 혀 아깝지 않았다. 새벽에 도착해서 1시간 넘게 입국심사를 기다려야 하는 것은 정말 고역이다.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에어컨도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동남아공항에서의 기다림은 여행을 시작부터 지치게 하기 충분하다. 이제는 시간으로도 돈을 살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패스트트랙은 그런 기분까지 해결해 주기에 우리는 이번 여행에서도 그 선택을 하기로 했다. 허나 아쉽게도 호찌민을 들러 다낭으로 가는 비행편 이었기에 국내선을 패스트트랙을 이용할 수 없었다. 판매자는 호찌민에서 패스트트랙을 구매할 것을 권했지만, 경유지에서 패스트트랙을 구매하기엔 무언가 조금 아쉽게 느껴졌다. 6인의 비용만 8만 원 가까이의 비용이 들었는데, 단지 경유하기 위해 구매하는 것은 사치처럼 보이기도 했다.
숙소를 정하면 유투버와 블로거들, 또 먼저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을 염탐한다. 그렇게 모으고 모은 맛집 리스트는 절반도 못 다녀오지만, 없으면 무언가 허전하고, 불안하고, 또 헤맬 것만 같다. 낯선 여행에서 우연히 드른 곳의 식당이 정말 맛집이거나 또는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그런 것이 여행인지 모르지만, 아이가 생긴 이후 우연에 기대는 것은 불안해진다. 와이프와 둘만의 여행이라면 도전 정신이 듬뿍 발휘되겠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늘 조심스럽다. 그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어쩔 수 없다고 타협하곤 한다. 그런 기분이 들수록 리스트는 길어진다.
그렇게 여행지에 대해 준비하고, 리스트업 해 와도 별수 없는 경우가 많다. 모든 여행이 그러지 모른다. 그래도 오죽하면 경기도 다낭시라 불리는 다낭 여행을 이토록 어렵고 힘들게 다녀왔는지 돌아보는 지금도 아리송하다. 어디를 가던 한국어를 할 줄 아는 베트남인이 있다 하고, 간판이며, 식당의 메뉴들은 모두 한국어 버전을 준비해 놓는 곳도 많은, 물가까지 저렴한 다낭여행을 우리는 왜 이리 어렵게 다녀온 걸까?
타이슨이 말했다. 누구나 링에 올라오기 전에는 그럴싸한 계획이 있다고.. 우리는 몰랐다. 우리가 상대하는 다낭이 어쩌면 우리에게는 마이크 타이슨이었는지를. 우리는 만만히 보았던 다낭에 훅과 어퍼컷, 강력한 카운터까지 그로기를 넘어 다운에 이르는 강한 펀치를 수차례 얻어맞았다.
모든 여행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한두 번의 당황스러움은 기억할 에피소드가 되고 추억이 되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행에서 기억나는 장면들은 그런 장면들이었다. 실수하고, 당황하면서 그 위기를 넘기던 순간들을 매번 추억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낭 여행을 정말 오래도록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얻어맞고 일어설만하니 또 펀치를 날려대는, 에피소드라 생각하고 넘기려니 또 뒤통수를 쳐대는 이번 다낭 여행은 글로 남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독자들에게는 찻잔 속의 태풍
우리 가족들에게는 재난 블록버스터였던 다낭 여행기.
자! 그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