떴다 떴다 비행기, 우리 가족 없이

by 성준


이미그레이션 앞에서는 언제나 긴장된다. 그 사람들은 그들의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대 앞에만 서면 왜 항상 나는 작아지는지 모르겠다. 주머니에서는 연신 휴대전화가 울린다. 슬쩍 확인하니 와이프의 전화다. 내용은 뻔히 알 것 같은데 괜히 여기에서 전화를 받았다가는 무슨 꼬투리를 잡힐지 몰라 수신거부를 누르고는 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는 베트남 출입국관리소 직원의 눈을 응시한다. 내 특기인 사람 좋은 미소를 유지한 체.


손에는 땀이 나고 초침이 흐르는 만큼 맥박도 빠르게 쿵쾅거린다. 벌써 3시 10분이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3시 20분 비행기다. 다행히도 출발이 지연되어 30분 정도 시간을 벌었다. 지금 바로 나가면 우당탕탕 비행기를 탈 수 있을지 모른다. 어깨에 별이 4-5개쯤 박혀 있는 여직원은 노련해 보인다. 저 정도 별을 달 정도면 온갖 사람들을 다 겪었겠지? 사정을 이야기해 볼까 하다가 가만히 있는 편이 더 낫겠다 싶었다. 괜히 두 아이의 손을 꼭 잡고는 이제는 경련이 날 것 같은 입꼬리 미소를 유지했다. 세 권의 여권에 도장을 찍고, 날짜를 적는 손이 기계적이지만 결코 서두르는 법은 없다. 드디어 통과 시간은 3시 15분이다.


2025년 8월 4일 오후 3시 호찌민시 온도 33도 습도 70%


통과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는데 먼저 나간 와이프가 뛰어오며 소리친다.


-빨리 와 빨리 좀-


우리는 캐리어를 지키고 있는 공항 직원에게 주임을 밝히고 짐을 찾아 환승구로 뛰어갔다.


-왜 전화를 안 받아? 잡혔는 줄 알았잖아?

-잡히긴 왜.. 심사 중에 서 있어서 전화를 안 받았지.. 어디로 가면 돼? 우리 탈 수 있어?-

-몰라 가봐야 해 -


출국장을 나서기 전 오른편에 환승을 알리는 입구가 있고, 아무도 없이 먼저 나간 우리의 캐리어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아내는 급히 사정을 말했고, 이미 직원과 몇 차례 이야기가 오갔는지 우리가 왔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손목시계를 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Now we go, still cannot get on the plane.-


-예????-


비행기를 못 탄다고?
우리가?
비행기를 놓쳐??
우리가??


15년의 해외여행 경험동안 처음 겪는 일이다. 그래도 벌써 비행기만 탄 횟수로 치면 4-50번은 될 텐데, 단 한 번도 비행기를 놓친 적 없다. 아니 아슬아슬하게 탄 적도 없었다. 항상 여유롭게 기다림의 미학을 즐기며 비행기를 탔던 우리에게 첫 경험을 선사해 주었다.


-hey!! come here! come! Look at that green bus. it's yous hurry up!


시계를 보던 직원이 어디론가 통화를 하더니 다급히 우리를 불렀다. 저기 보이는 초록색 버스를 타란다.


-is it possible to get on the plane?

-i'm not sure. but try this, go 35 counter.


여섯 명의 가족이 각자 캐리어 하나씩을 들고, 동남아 공항을 질주했다. 아슬아슬하게 초록색 버스에 올라타니 시간은 3시 20분.


우리가 타면 바로 버스가 출발할 줄 알았더니, 버스는 요지부동이다. 아내가 드라이버에게 언제 출발하나 물으니 으쓱 턱으로 앞편의 시간표를 가리킨다. 3시 10분, 그리고 3시 30분. 출발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는 버스는 3시 30분 출발 예정이다. 가능할까? 여기서 국내선 터미널이 얼마 걸리지 않는 걸까? 그래도 체크인하고 화물 보내는 시간이 가능할까? 온갖 질문들이 머리에 가득한 채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그사이 버스는 하나 둘 사람들이 올라타기 시작했고, 어느새 버스는 만석이 되었다.


드디어 30분 버스는 정각에 출발했다. 공항을 한 바퀴 돌아 국제공항을 빠져나가는 순간 깨달았다.

아... 김포공항 가는구나...


그랬다. 호찌민에서 다낭으로 떠나는 국내선 항공은 같은 공항 터미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닌 국내선 공항으로 이동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인천공항으로 들어와 제주도를 가기 위해 김포 공항으로 이동하는 것 같은 방식이었다. 물론 우리나라는 인천공항에서도 제주도행 비행기가 있다. 공항 입구를 벗어나 베트남 호찌민 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오늘 예약한 숙소는 어쩌지?

'여기서 하루 머물러야 할까?

'새로운 항공편은 어떻게 구매해야 하나?

'비용은 얼마나 추가되는 거야? 비행기푯값에 숙소 비용은 이중으로 들어가고

'이 캐리어를 끌고 또 돌아다녀야 하나?


호찌민 시내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맨 뒷자리의 일본인 꼬마는 일본인 답지 않게 큰 소리로 도로에 질주하는 오토바이에 인사를 한다.


-곤니찌와~ 스고이~


속으로 외친다.

'우르사이'


그래도 입 밖으로 뱉어내지는 않았다.


내 속도 모르면서 버스는 느긋하게 제3터미널 국내선 공항에 들어섰다. 국내선이 국제선 공항보다 더 깔끔해 보였다. 우리는 우당탕탕 내려 캐리어를 끌고는 2층 35번 카운터로 달려갔다.


시간은 3시 45분


비행 출발 5분 전


카운터의 직원은 우리 이야기를 들었나 보다, 우리를 보자마자 여권을 달라고 손짓한다. 그리고는 하나하나 검사를 하고는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자리를 비웠다. 내속은 이미 숯이 되었다.


3시 50분.. 직원은 오지 않았다.


저기 활주로를 달리는 비행기가 내 비행기였으리라.


우리는 비행기를 놓쳤다. 의심할 여지없이


이런 비슷한 장면을 영화에서 봤었는데... 다음 내용은 어떻게 되는 거지? 내가 놓친 비행기가 공중에서 폭... 아니 그건 좀 그렇지... 또 머릿속에 온갖 잡생각이 휘몰아치려는데 떠났던 직원이 들어온다. 우리에게 받은 여권과 비행 티켓 중에 비행티켓만을 모은다.


'찍~'


경쾌한 소리와 함께 우리 비행 티켓이 찢긴다. 아.. 내 시간과 비용이 이렇게 산산조각이 나는구나.. 조금 자존심도 찢어지는 것 같다. 멍하고 황당한 표정을 직원도 느껴서일까? 싱긋 웃고는 말한다


- don't worry you can go to Dandng today

응? 그래? 그래??


직원은 찢은 티켓 대신 새로운 빳빳한 티켓 여섯 장을 건넸고, 시간을 확인하니 우리가 놓친 비행기보다 1시간 정도 뒤에 있는 비행 편이었다. 다행히 여섯 자리가 있어서였는지 항공사의 프로세스가 어떻게 되는지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렇게 바로 다음 편의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비록 여섯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곳곳에 심어졌지만, 한 시간의 비행이었고, 일단 같은 비행기 안이니까. 더 이상의 불평은 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추가요금이나, 패널티 없이 항공편을 변경해 줬으니까. 오히려 감사해야 했다.


예정 시간보다 두어 시간쯤 늦게 도착했다. 국내선으로 입국하면 남들은 다 보고 인증사진도 찍어온다는 "웰컴 투 다낭"의 노란 간판도 볼 수가 없다. 늦게 도착한 출국장에서도 픽업하러 왔던 기사분과 변경된 항공편의 연락이 수월치 않아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호이안으로 떠나는 16인승 밴에 탑승할 수 있었다. 노을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하고자 했던 여행의 첫 계획은 늦은 밤이 돼서야 숙소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달을 뜻하는 루나라는 이름의 매니저가 친절하게도 숙소와 호이안의 곳곳을 안내해 주었고, 우리는 마지막 기운을 짜내어 늦은 밤 호이안의 올드타운에서 식사를 마쳤다. 리스트에 올라와 있는 레스토랑을 몇 백 미터쯤 남겨두고서는 호이안의 습기와 더위에 에어컨이 빵빵해 보이는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애석하게도 에어컨은 빵빵하지 않았고, 모두 장거리 이동의 피곤으로 표정도, 입맛도, 식욕도 잃어버린 채 어쩌면 의무감에 한 끼를 치렀다.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들어오니 시간은 11시 50분 다시 자정에 가까워졌다.


한국 시간으로 이미 새벽 두 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었다.
각자 침대로 죽은 듯이 빨려 들어갔다.



우리는 다낭 입국할 때 패스트트랙을 이용하려 했다. 예전 필리핀 여행 중에 너무도 요긴하게 사용했었다. 정말 돈으로 시간도 살 수 있군 하고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항공권이 호찌민을 경유해 다낭으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발리 여행을 청도를 경유해 갔던 기억이 나름 재미있었던 터라 이번에도 조금 더 저렴하기도 하고, 시간적 여유도 있다고 생각해 경유 비행기를 선택했다. 문제는 호찌민에서 다낭의 국내선을 패스트트랙이 없다는 것이다. 판매자는 호찌민에서 패스트트랙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지만, 청도 경유만을 경험했던 나는 굳이 경유 편에 패스트트랙을 사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고 판매자를 의심했고, 신청하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호찌민에서 다낭으로의 국내선 경유는 우리나라 인천공항에서 김포공항으로 이동하는 것과 비슷했다. 패스트트랙이 필요한 경우다. 만약 우리가 호찌민에서 패스트트랙을 이용했다면, 비행기를 놓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경유의 경우도, 출입국심사를 거치고 짐을 다시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그러니 두 시간이 짧은 수밖에 없었다. 우리나라만큼 출입국 심사대가 널찍하고 잘 안내되어 있는 곳을 동남아에서는 보지 못했다. 모두 우리나라 같을 줄 알았던 것이다.


왜 판매자가 호찌민에서 패스트트랙을 구매하라고 제안했는지 이제는 알 것 같다. 경유 시간이 짧다면 필히 구매하는 것도 요령이다. 동남아의 공항은 시간도 살 수 있다. 특히나 어린이와 어른을 동반한 여행이라면 패스트트랙 고려해 볼만하다. 조금 과장하면 필수다.


잊지 말자 호찌민에서 다낭으로의 국내선으로 경유는 입국심사와 짐 찾는 것까지 모두 마친 후 새로운 공항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 다음번의 다낭은 기필코 직항으로 갈 거다. 몇 해쯤 지나, 오늘의 여행이 추억이 될 때쯤에 리벤지 매치를 하러 다시 오리라, 기다려라 다낭! 그때 못 본 너의 민낯을 속속들이 들쳐주고 오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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