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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Jun 28. 2023

비효율적이지만 맛난, 감자전

최고의 식재료 감자로 만드는 쫄깃한 전요리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

감자는 아주 훌륭한 식자재입니다. 작은 감자가 풍부한 영양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적은 양을 먹어도 쉽게 포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게다가 맛도 좋습니다. 또한 추운 지방과 척박한 땅에서도 아주 잘 자랍니다. 게다가 쉽게 잘 자라기 때문에 적은 땅에서도 대량으로 생산하기 적합하여 전 세계적으로 재배되고 있는 구황작물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원도에서 아주 잘 자라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서민을 대표하는 음식이기도 합니다. 전쟁의 참상 속에서 음식을 배급을 받아 삶을 연명하는 피난민들의 이가 깨진 그릇 위에는 투명하게 멀건 국물에 감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습니다. 여름밤 대청마루에 누워 있으면 김이 올라오는 삶은 감자 서너 개가 들어있는 작은 바구니를 들고 오는 할머니를 맞이합니다. 영화 황해에서 하정우 배우가 연기한 산속에서 표류하던 도망자가 허겁지겁 감자를 먹는 장면은 아직도 먹방을 대표하는 씬으로 회자가 됩니다. 이렇듯 감자만큼 상징성이 높은 음식도 흔치 않습니다.


저에게도 감자는 친숙하고 반가운 음식입니다. 강원도가 출신인 와이프 역시 감자를 좋아하기에 우리는 감자 요리를 자주 해 먹고는 합니다. 한 손에는 감자를 이리저리 돌려가면서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감자칼로 능숙하게 껍질을 벗겨냅니다.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어 누릿기리한 속살을 드러낸 감자를 바라봅니다. 여기까지는 감자 요리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행하는 일이지만, 이후에는 어떤 요리를 할 건지에 따라 감자를 다루는 방법이 다양하게 변화합니다.


감자는 전 세계적으로 널리 재배되고 있어서 그 요리법 역시 아주 다양합니다. 튀기고, 지지고, 볶고, 끓이고, 말리고, 굽고.. 감자를 재배하고 있는 나라의 수만큼 다양한 고유의 요리법이 개발되어 왔습니다.  특히 감자가 존재하는 나라라면 모두가 동일하게 만드는 감자 요리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감자전입니다.


감자전의 형태는 국가별로 세세한 조리 방법과 들어가는 조미료 및 기타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강판에 갈았는지 혹은 채로 썰어서 부쳤는지에 따라 모양과 식감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이에 따른 차이를 보일 수가 있겠지만 세계 어딜 가던 감자전과 유사한 요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매우 비효율적인 요리, 감자전

감자전은 다른 감자 요리에 비하면 음식 자체는 상당히 비효율적인 요리라 할 수 있습니다. 앞서 감자는 아주 생산적인 식자재이고 작은 양으로도 높은 포만감을 유도할 수 있는 음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감자는 한두 개만 있어도 식사 대용으로 가능합니다. 이렇듯 최상의 효율성을 자랑하는 감자이지만 만드는 요리가 감자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감자전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지만 번거로운 작업들로 진행됩니다. 우선 껍질을 벗겨 잘 씻어낸 감자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강판 위에 갈아줍니다. 갈린 감자를 면포에 걸러 주어 건더기만 남기고 나머지 수분은 모두 짜서 빼줍니다. 그렇게 수분을 빼고 남겨진 재료들을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 위에서 펴서 중 약불에 전을 부칩니다. 이렇듯 심플한 과정이지만 은근 사람의 인력을 필요로 합니다. 우선 강판에 감자를 가는 작업 자체가 쉽지 않은 업무입니다. 적당한 힘으로 균형 있게 강판에 문대 주어야 골고루 잘 갈려질 수 있습니다. 급한 마음에 빠르게 강판을 사용하다 보면 실수로 손에 강판이 닿아 감자 대신 손이 갈려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럼 원치 않는 붉은 감자전을 맞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조심스렇게 갈아낸 감자를 면포에 넣고 힘껏 짜서 걸러내고 남은 속을 들여다보면, 한 줌 재로 사라지는 우리네 인생처럼 한껏 작아진 감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분명 커다란 감자를 갈아 넣었어도 손에 잡히는 양은 많지 않습니다. 감자는 수분 75%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여실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힘들게 준비한 감자를 기름을 두른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습니다. 큰 프라이팬 속에서 더욱더 작고 초라해진 감자전을 보며 허탈함을 느껴 봅니다.


‘아 내가 고작 이걸 만들려고 이 고생을 한 건가!’


감자전을 즐겨 봅니다.

창밖에 비가 내리는 주말을 맞이하면 와이프와 종종 감자전을 해 먹고는 합니다. 감자 본연의 맛과 향을 느끼는데 감자전 보다 훌륭한 음식은 없습니다. 거기다 비가 오는 날에 전보다 어울리는 음식도 많지 않습니다. 감자전은 다른 부침개들과는 다르게 쫀득한 식감이 일품입니다. 입안 가득 감자의 풍미를 쫄깃하게 느껴보고자 비가 오면 집안 가득 감자향 넘쳐나게 감자전을 부쳐 봅니다.


그리고 어떠한 주종과도 찰떡궁합을 자랑합니다. 파전하면 빠질 수가 없는 막걸리와 함께 즐기는 것은 매우 고전적인 방식입니다. 서민들의 음식과 애환을 함께 해온 소주나 맥주와도 당연히 훌륭한 조화를 이룹니다. 그리고 우아하게 즐기고 싶은 와인과도 어울리는, 그 어떤 주종과도 완벽한 패어링을 누릴 수 있습니다.


창밖의 부슬부슬 빗소리를 들으며 아무 생각 없이 강판에 감자를 갈아 봅니다. 어느덧 작아지는 감자의 크기만큼 세상을 향한 나의 고민도 잠시 내려놓습니다. 처음의 커다란 감자와 지금 손 안의 한 줌이 된 감자가 같은 존재인 것과 같이 세상에서 나를 괴롭히는 커다란 상념들 역시 알고 보면 작디작은 고민과 같을 수 있습니다. 많은 것을 영위하고 살아서 우리네 인생을 값지게 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것들을 내려놓아도 오히려 인생은 더 짙은 향을 품 길지도 모릅니다. 원래의 감자보다 갈아내 작아진 감자전이 더욱 깊은 본연의 향을 선사하듯이.


이렇게 머리를 비우고, 사랑하는 사람과 앉아 고유의 감자 향을 느끼며 오늘 하루가 주어짐을 감사히 여겨 봅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오늘 같기를 기도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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