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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곰 Sep 04. 2023

추억을 레시피 삼아 요리한 이야기

수많은 추억 속 유독 기억나는 순간에 관해

요리를 주제로 글로 추억을 되새기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요리를 주제로 에세이 형식의 글을 써 보왔습니다. 처음 타자를 치고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와이프 덕분입니다. 연애를 시작하지 얼마 안 되어 떠났던 제주도 여행길. 서로에 대해서 수박 겉핡기 식의 표면적인 것 이상으로 알지 못했던 시절 우리는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고자 했습니다. 그렇게 두 손을 꼭 잡고 제주도 둘레길을 오랜 시간 천천히 걸으며 우리는 각자 자신에 대해서 얘기하고, 우리가 함께할 미래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평생을 현실적이고 다소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살아온 저와 달리 와이프는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꿈을 꾸는 사람이었습니다. 긍정적인 생각 속에서 꺼내놓는 밝고 다소는 무모해 보이기도 하는 미래의 청사진들이 싫게만 들리지 않았습니다. 왠지 실현 가능할 것 같은 부푼 마음을 안겨 주었습니다.


우리는 마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이 자신들의 꿈이 과학자라고 확신에 차서 다소 생각 없이 던져 보이듯이 이런저런 얘기들을 널어놓았습니다. 그중 제가 하나 던져 본 꿈이 있었습니다.


“나는 나중에 내 일대기를 자서전으로 써보고 싶어. 아무도 안 볼지 몰라도, 별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한번 기록해 보고 싶어.”


당시의 여자친구였던 와이프가 제주도 둘레길의 나무들을 바라보며 말했습니다.


“하면 되지. 잘할 거 같은데?”


“몇 번 시도해 봤는데 워드 첫 장을 넘기질 못하겠더라고. 어떻게 써 나가야 할지 몰라서. 그래서 번번이 시작만 하다가 말았어.”


“그럼, 우선 다른 글을 써봐. 요리 글은 어때? 우리 요리하는 거 좋아하니까 이걸 기록으로 남겨보는 거야.”


그렇게 처음 요리에 대한 기록을 SNS에 기록하는 것으로 저의 첫 글쓰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와이프는 추진력이 좋은 사람입니다. 어느덧 새로운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어 우리가 함께 만들었던 추억들을 하나씩 기록해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요리를 함께 하면 와이프가 사진을 찍고, 제가 글을 썼습니다. 그러다 점점 각자의 롤이 바뀌어 갔습니다. 제가 쓴 글의 형식이 친밀함을 보여야 하는 SNS의 성격과 맞지 않는 느낌이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와이프가 계정을 관리하다 보니 결국은 본인이 글을 계속 수정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저는 온라인 공간에서도 글 쓸 장소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브런치라는 공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이 공간에서도 저의 첫 글쓰기는 몇 번이나 시도했던 자서전과 같이 어디로 나가야 할지 방향을 읽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몇 개의 글들을 쓰기 시작해 보았지만 미처 완성하지 못하고 저장함에 쌓아 놓는 이야기들이 늘어갔습니다. 그러다 와이프가 처음 얘기 했던 제주도의 둘레길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우리가 함께 했던 요리 속에 담긴 내 인생의 추억을 한번 담아보자’ 우리가 함께 했던 수많은 요리 사진들을 들여다보며 떠올렸던 내 인생의 추억들을 글로 옮겨보기 시작했습니다.


잊었던 레시피를 꺼내 요리하듯 되새기는 추억

음식을 만들게 되면 두 가지의 추억이 생겨납니다. 하나는 지금 우리가 함께 이 음식을 요리해 가며 만들어 나가는 추억.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음식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사람 혹은 그에 얽힌 추억입니다. 부부가 함께 즐겁게 요리해 가면서 추억을 만들고, 또 추억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몇몇 음식들은 그에 관한 추억을 쥐어짜듯 떠올려 보기도 했습니다. 그러한 작업들이 아주 수월할 때도 있었고 때로는 그냥 생각을 적어 나갈 때 보다 고단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글을 계속 이어나가 보았습니다. 쓰고 수정하고, 다시 읽어 보고 고쳐보고. 글을 되새겨 보고 곱씹어 볼수록 고칠 부분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그냥 계속해 이어 갔습니다.


신기한 것은 계속해서 같은 글을 읽어 갈수록 더욱 선명하게 당시의 기억이 떠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어릴 적 먹던 계란 주먹밥을 와이프에게 해주고 싶어서 만들었을 때에 느꼈던 어릴 적 추억의 회상이, 이사 가던 날 가족끼리 다 같이 먹던 짜장면의 추억이, 자꾸 곱씹어 더듬을수록 마치 얼마 전의 일처럼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대부분의 기억들은 얼마 전까지 잊고 있었거나 아니면 잠시 스쳐 지나가던 순간이었을 뿐이었는데 이렇게 글로 적고 다시 돌려 볼수록 장면들이 선명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떠오른 기억들을 지금의 내가 다시금 들여다보며 또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할머니, 어머니들이 하던 음식들 속에 담겨 있던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안에 담긴 희생의 크기와 그에 비례하지 않는 나의 감사함 등에 대해서도 반성해 보았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돌아가신 아버지와의 희미한 기억들 역시 죽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져가고 싶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렇듯 음식에 담겨 있는 대부분의 기억들은 결국에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어릴 적의 기억으로 새겨져 있었으며 이후의 추억들은 그 위에 덧대어 가는 기억들이었습니다.


요리 관련 기억들을 기록해 보는 일은 저에게는 제법 의미 있는 일이었습니다. 지금의 가족인 와이프와 함께한 요리를, 옛 가족들과 함께 했던 추억 속에서 짚어 보면서 이 둘이 따로 떨어져 멀리 있는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의 순간들도 결국 나중에는 좋은 추억으로 자리 잡게 될 것입니다. 그때를 위해 오늘 하루도 정성을 다해 요리를 하고 하나의 추억을 그 위에 덧대어 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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